학창시절에 학기가 바뀔 때나 매달 1일이 되었을 때, 좀더 변덕스러운 시기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친구들에게 ˝얘들아 나 이제 new OO이라고 불러줘. 새롭게 살아야 겠어˝라는 말을 수시로 해댔습니다. 그래봤자 친구들은 서너번 부르고 말 뿐이고 제 마음가짐도 금새 흐트러져 이전과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곤 했지요. 가끔 식당의 웨이팅리스트에 다른 이름을 적으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만 요즘엔 어딘가에 들어가려면 신상을 다 밝혀야만 가능해졌습니다. 현재의 나에게 불만스러운 부분을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기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처음보는사람과는 쉽지 않을 까요? 그렇게 거짓으로나마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결국에는 나 자신도 속게 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에이바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실라 이모가 기억하고 있는지알 수 없었다. 10대 시절 에이바는 이모가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둘은 끊임없이 싸웠다. 실라 이모는 하나뿐인 여자아이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웠고 에이바는 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딱 한 번, 숀은 배링 크로스 갱단과 함께 돌아다니던 20대때 실라 이모에게 에이바가 어쩌면 한정자에게서 우유를 훔칠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에이바가 그러지 않을 성격은 아니며 그럴 만큼 열 받은 상태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에이바가완벽한 아이인 척하는 게 지겨워졌다. 완벽한 아이여야만 세상이 에이바를 애도하는 것이 싫었다.
"바로 그거야. 생각해 봐, 그레이스, 네가 그런 소릴 한 까닭은 이해하지만, 너도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거 잘 알잖아. 에이바 매슈스가 엄마보다 키가 컸던 건 상관없어. 걔 아이였다고.엄마는 애 뒤통수에 총을 쐈어. 넌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달리 말하면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너자신을 일그러뜨려야 해. 그리고 그런 식으로 너무 구부러지다보면, 넌 다른 사람이 될 거야. 더 나쁜 사람"
이 시대의 여성과 비정규직 고용인의 문제를 유쾌하게 읽었다는 점이 민망하기는 하지만 녹즙처럼 밝고 무해한 강정민양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결말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읽는 내내 강정민으로 분한 박보영 배우나 혜리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모범택시’보다는 현실적일 텐데 말이지요.
최근 가장 인기 좋은 에세이스트 둘의 서간문을 웹진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연재를 기다리며 몇 번 읽기를 시작했지만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자책에 익숙하지 못한 눈이라 그런가 싶어 기다리던 종이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이슬아-남궁인 작가님의 글은 좋았습니다만 왠지 허전했습니다. 동시에 발행된 ‘괄호가 많은 편지‘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편지가 훨씬 마음에 와닿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랑-슬릭의 편지는 ‘우리‘의 이야기인 듯 읽혔지만 이슬아 남궁인의 편지는 ‘그들‘의 이야기로 느껴졌거든요.평소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하고 있는 건지 ˝나좀 봐. 엄청나지?˝하고 재주부리기를 하는 건지 알 수 가 없어서지요. 대신 조곤조곤 가만가만 노래하며 가사와 멜로디를 쏙쏙 꽂아 주는 가수를 좋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솔직하고 심쿵한 글로 유명한 이슬아작가님과 남궁인 작가님을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하지만이번 서간문은 지난 글들과는 달리 ˝내가 이렇게 언어유희에 능하다˝ 라는 걸 뽐내는 느낌이랄까요? 말장난은 많지만 기대했던 감흥은 시들해버렸습니다. 그동안의 에세이와는다른 형식의 서간문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요.하지만 멋진 작가님들의 ‘총총시리즈‘를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삶’으로 돌리고자노력한 사람입니다. 제 성姓이 남들과 ‘다르지만 실제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누구도 아프거나 죽지 않은 것처럼, 성별이 여성이거나 다수와 ‘다른‘ 성적 지향이 있어도, 그때문에 어떤 차별도 없고 누구도 아프거나 죽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믿는 단 하나의 가치 때문에 저는 그렇게 주장합니다. 제가 주어진 성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사람들은 많은 것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약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안위가 위협받아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의 삶을 바라는 위치에서,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