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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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순간을 찾는 것일지 모른다.

Keep it simple, Mike.
Keep it, Simple Mike.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어요. 내게 소리 지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한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한 말은 내게 머물면서 날 속상하게 하고 그 고성은 계속될 거예요. 고함이 멈춘 뒤에도요. 그래서 대신 대다수 사람들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아무도 모르게 완벽한 수업을 한 선생님. 코딱지를 파 먹는 아이.
지인에게 자기 모자를 준 화가. 가끔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목사. 이 사람들, 이 조용한사람들의 말이 훨씬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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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세 여자 2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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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그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농부는 자기 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평등해야 존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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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세 여자 1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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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나 가라고 결사반대할 줄 알았던 어머니가 뜻밖에 쉽게 응낙했다. 오히려 딸을 응원하는 목소리에 왕년의 기백이 되살아났다.

"세죽아, 나도 니 나이라면 부엌에서 아궁이 속이나 들여다보면서 살지는 않을 게다. 니는 좋은 세상 만난 기다. 여자 몸으로 공부한다고 외국엘 다 나가고. 옛적에는 탐관오리 지독하다 했더니 이 왜놈의 세상은 아주 하나부터 열까지 몸서리나는구나. 니가 무슨 대단한 독립운동 했다고 헌병보조원 놈들이 심심하면 들이닥쳐서 솥댕이 걷어차고 집 안을 뒤집어놓고 가니 이제는 멀리서 호루래기 소리만 들려도 기함을 하겠다. 따그닥 따그닥 게다짝 끄는 소리만 들어도 어제 먹은 밥이 올라온다."

며칠 잠 못 자고 구타와 심문으로 피폐해 있던 세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적어도 그 순간 그 아담한 체구의 캐나다 여성은 세죽에게 외국인도 선교사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었다.

그들의 스물은 비장하고도 상쾌했다. 그들 부모는 왕조시대의 부모들이었지만 자신들은 근대인이며 개화세대라는 자부심에 들떠 있었다. 그들은 부모를 부인하고, 자신이 태어난 시대를 부인하고, 아직은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의 이미지로 세상을 리셋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오른쪽 가슴엔 이상을, 왼쪽 가슴엔 연정을 품은 채 푸르른 젊음을 통과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꿈이 얼마나 푸르르든, 명백한 것은 그들이 파산한 나라, 폭격 맞은 나라에서 파편처럼 튕겨 나간 서글픈 디아스포라의 젊음들이라는 점이었다. 또 하나, 이들의 임시캠프인 상해와 중국 역시 맹수 이빨 사이에 끼어 있기는 조선과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혁명이란 처음처럼 마무리까지 정의롭고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혁명은 함께하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지만 권력은 나눠 갖지 못한다는 게 혁명세대 정치인의 아이러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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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도서관 - 도서관에서 보내는 일주일 날마다 시리즈
강원임 지음 / 싱긋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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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에게 다가오는 하루 는 귀하다. 홀로 배우는 사람은 고독을 즐길 줄 안다. 다 가오는 늙음과 고독이 두렵지 않다. 도서관에 다니며 책 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삶의 틈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행 복한 노후를 이미 예약한 사람이다.

어떤 생각들의 접속과 일탈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나와 달라졌음을 느껴야만 한다. 이 무료하고 진부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본능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바뀌지 않는 외부 상황에서 내안의 내부적인 사고와 마음조차 동일하다면 우리는 문이 열리지 않는 공간의 공기를 매일 마시고 있는 것과 같다. 신선한 새 공기를 들이 마실 수 있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창문을 여는 일은 낯섦과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사실 삶은 끊임없는 연결과 단절이 반복되며 쉴새없 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이 동일하다고 느끼는 것일 까? 우리는 진정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조차 나 자신에게 질려버릴 정도로 끔찍하게 동일한 존재라 느껴질 때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와 그들은 이곳에서 대화를 나눈다. 수많은 종류의 대화가 있을 텐데, 우리는 도서관에서 독서 대화를 나눈다. 가장 은밀하고 내밀하고 명상적이었던 개인 독서시간을 끝내고 소리내어 발화한다. 내말조차 어 디로 뻗어나갈지 모른 채. 종착지 없는 곳으로 계속 내달리는 기차를 탄 것처럼 모험이지만 안전하다. 현실 세계 에서 낯선 이들과 가장 안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이니까. 공간은 이만큼이나 중요하다. 도서관이라 는 공간이 내 삶의 맥락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점에서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 또한 중요해진다. 그렇기에 그 사람들과 나눈 에너지와 대화 역시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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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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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은 안치실에서 무서운 건 시신이 아니라 "장례지도사 혼 자 있을 때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고인을 대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사라지면 그보다 무서운 일이 없다는 말.

동네잔치라. 이런 기능을 옛날 옛적에는 환갑이나 칠순 잔치가 대신 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순 살만 되어도 장수했다고 하던 시절 이다. 잔치의 주인공들이 어찌 마냥 만수무강만 빌었을까. 자신에게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하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잔치가 열리는 마당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 시절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존재가 가족과 자손이었겠지. 그러니 손주에 증손주까지 불러 모아 자신이 이룬 것을 돌아본다. 핏줄로 자신을 증명하는 게 당연하지 않게 된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거나 인정할 시간을 얻지 못한 채 죽음으로 직행한다.
생전장례식은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이, 이대로 간다고? 잠시만.‘ 사는 대로 사는 나를 멈춰 세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생전장례 식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우리는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 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한다.
나만의 것이 아닌 최초와 최후. 그 사이에 놓인 삶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생전장례식을 치르겠다는 결심을 하진 못하였으나, 타인의 장례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도 사회가 나를 잊지 않고 장례를 치러줄 거라는 믿음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연대감이죠. 위패 하나 드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내는 거죠. 당신의 장례를 함께 책 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 혼자가 아니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끊임없이 내는 거예요. 그 인기척이 저에겐 위패를 드는 거고요.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북망산천으로 나는 가네
만당 같은 내 집 두고 문전옥답 다 버리고
만첩 청산에 들어가니 구척광중 길이라고
칠성으로 요를 삼고 떼장으로 이불 삼아
살은 썩어 물이 되고 뼈는 썩어 진토 되니
삼혼 칠백 흩어지니 어느 친구가 날 찾으랴
창해 유수 흐른 물은 다시 오기 어려워라

천년만년 살 거라고 먹고픈 것 아니 먹고
가고픈 곳 아니 가고 입고픈 것 아니 입고
쓰고픈 것 아니 쓰며 동전 한 닢 아껴 쓰며
아등바등 살았건만 인생이란 일장춘몽

삼천갑자 동방석도 한번 죽음 못 면하고
말 잘하고 말 잘하던 소진장도 결국 한을 달랬더냐
만리장성 진시황도 장생불사 찾았더냐
돈이 없어 죽었던가 기운 없어 죽었던가

어엄창 장사한 태조도 장생불사 못 하였고
이곳 불과 제왕초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삼국 사명 조자룡도 장생불사 못 하였고
사명 축돌 초패왕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우느냐니 우는 줄 아나
가느냐 가는 줄 아나
어허어허 넘차 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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