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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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은 안치실에서 무서운 건 시신이 아니라 "장례지도사 혼 자 있을 때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고인을 대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사라지면 그보다 무서운 일이 없다는 말.

동네잔치라. 이런 기능을 옛날 옛적에는 환갑이나 칠순 잔치가 대신 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순 살만 되어도 장수했다고 하던 시절 이다. 잔치의 주인공들이 어찌 마냥 만수무강만 빌었을까. 자신에게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하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잔치가 열리는 마당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 시절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존재가 가족과 자손이었겠지. 그러니 손주에 증손주까지 불러 모아 자신이 이룬 것을 돌아본다. 핏줄로 자신을 증명하는 게 당연하지 않게 된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거나 인정할 시간을 얻지 못한 채 죽음으로 직행한다.
생전장례식은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이, 이대로 간다고? 잠시만.‘ 사는 대로 사는 나를 멈춰 세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생전장례 식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우리는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 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한다.
나만의 것이 아닌 최초와 최후. 그 사이에 놓인 삶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생전장례식을 치르겠다는 결심을 하진 못하였으나, 타인의 장례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도 사회가 나를 잊지 않고 장례를 치러줄 거라는 믿음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연대감이죠. 위패 하나 드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내는 거죠. 당신의 장례를 함께 책 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 혼자가 아니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끊임없이 내는 거예요. 그 인기척이 저에겐 위패를 드는 거고요.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북망산천으로 나는 가네
만당 같은 내 집 두고 문전옥답 다 버리고
만첩 청산에 들어가니 구척광중 길이라고
칠성으로 요를 삼고 떼장으로 이불 삼아
살은 썩어 물이 되고 뼈는 썩어 진토 되니
삼혼 칠백 흩어지니 어느 친구가 날 찾으랴
창해 유수 흐른 물은 다시 오기 어려워라

천년만년 살 거라고 먹고픈 것 아니 먹고
가고픈 곳 아니 가고 입고픈 것 아니 입고
쓰고픈 것 아니 쓰며 동전 한 닢 아껴 쓰며
아등바등 살았건만 인생이란 일장춘몽

삼천갑자 동방석도 한번 죽음 못 면하고
말 잘하고 말 잘하던 소진장도 결국 한을 달랬더냐
만리장성 진시황도 장생불사 찾았더냐
돈이 없어 죽었던가 기운 없어 죽었던가

어엄창 장사한 태조도 장생불사 못 하였고
이곳 불과 제왕초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삼국 사명 조자룡도 장생불사 못 하였고
사명 축돌 초패왕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우느냐니 우는 줄 아나
가느냐 가는 줄 아나
어허어허 넘차 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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