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행복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은기분이 들지 않는 것. 어쩌면 스위스의 지금 상황은 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쉽게 해주는 것이라서 행복해지기도 더 쉬운것 같다."
마지막 나무가 잘릴 때, 마지막 강이 비워질 때, 마지막 물고기가 잡힐 때, 그제야 비로소 인간은 돈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리라.
"카르마 씨, 행복하십니까?" "제 삶을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좀 이상한 말 같다. 미국에서는 높은 기대치가 엔진이자 연료 역할을 한다. 우리의 꿈을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 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도 힘이 되는 것이다. "제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가 말한다. "전 그렇게 기어올라야 할 산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삶 그 자체가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았다면, 하루를 잘 살아냈다면, 저녁에 저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괜찮았어." "좋지 않은 날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냈다 해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머릿속에서 공연되는 연극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은 아주 중요한 일을해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의 삶도 바꿔놓지 못했으니까요."
제러드는 땅에서 지열이 만들어낸 황금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커피나 마시러오라며 남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한 화제가 없는데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애정 담긴 목소리로 자기 나라를 ‘얼음 덩어리‘라고 부르는 모습도 좋아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국회의원 세 명의 이름을 금방 외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상쾌한 겨울날 발밑에 밟히는 눈이 천국에서만든 스티로폼처럼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아한다. 12월에 시내 중심부의 쇼핑가에 늘어서는 성가대도 좋아한다. 강하고 눈부신그들의 목소리가 밤을 돌려놓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새까만에둠 속에서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도 안전하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의 마술 같고 초자연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차가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됐을때 항상 누군가 차를 멈추고 도와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비행기가케플라비크의 국제공항에 내려앉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그저집에 돌아온 게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하늘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어둠도 좋아한다. 그는 어둠을 그냥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
현대의 사회과학은 햇볕에 탄 펭귄의 말이 옳다는 걸 확인해준다. 심리학자 노먼 브래드번은 《심리적 복지의 구조라는 책에서 행복과 불행이 우리 생각과는 달리 반대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과불행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아예 다른 동전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행복한 사람이 가끔 발작처럼 불행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고불행한 사람이 커다란 기쁨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곳 아이슬란드에서는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조차 가능한 것 같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유전적 요인이니 공동체적 유대감이니 상대적 소득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빼버리면, 행복도 선택이 된다. 쉬운선택도 아니고, 항상 바람직한 선택도 아니지만 선택인 건 맞다. 잔혹한 기후와 철저한 고립 앞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절망 때문에 술독에 빠져 사는 삶을 쉽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랬다. 하지만 이 바이킹의 강인한 아들딸들은 정오의 하늘에서꿈쩍도 하지 않는 검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며 다른 삶을 선택했다. 행복하게 술독에 빠지는 삶. 내가 보기에 그건 현명한 선택이다. 사실 어둠 속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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