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저도 그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것보다 더한 것도 보았을 테지만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달려든다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겠지만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죽어라 농담이라며 우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따끔한 지적을 할 수 있는 생각과 시선을 기르도록 해야겠습니다.
작가님의 말처럼 눈부신 추억은 없지만 각자의 오래된 깡통상자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주인공들이 구슬처럼 윤슬처럼 빛납니다. 특히 마지막 모든 가족들이 웃으며 끝날 수 있어 위로가 되었습니다.
101동 1601호, 그 집에는 피아노가 있어요. 피아노를 보는데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여동생이 생각났어요.교통사고가 나서 죽었거든요. 뺑소니였어요. 나는 오른손을 들어 청년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아팠겠네.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그후로 뭔가가 사라졌어요.성공하고 싶은 마음, 뭐 그런 것들이요. 사람들한테는 고시 공부중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해요.청년이 말했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거라고, 딸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딸이 방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서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땡을 해주지않았다는 거였다. 얼음땡 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혼자 얼음이 되었다고, 그후로 나는딸과 얼음땡 놀이를 자주 했다. 아침에 딸을 깨울 때도 그랬다. 딸이 얼음이라고 외치면 내가 땡 하고 말하며 딸의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단편집을 그다지 즐겨읽는 편은 아닌데 최근 보기시작한 ‘너를 닮은 사람‘이라는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어서도대체 어떤 원작인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결론은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그 외의 소설들도무척이나 좋았습니다.대부분의 작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주인공이 확실하지도 않은 증거를 찾는 과정에서 불편한 사람과 함께 지내고, 원치 않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거나 찾은 대상으로부터 외면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가족처럼지내온 사람들이었지요.모든 결말이 마치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매끄럽지 않은 방향으로 끝나지만 그러한 방식이 오히려 소설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유지해 주었습니다.단편이지만 모두 긴 시간을 거치고 있는 이야기라 장편소설이 된다면 흥미로울 듯 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정말로 같을까? 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진실한 대화일까? 너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어떤사람은 수요일에서 바닐라 냄새를 맡고, 또 어떤 사람은 남들이 결코 구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빨간색을 구분하지. 우리는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관점을 상상하지 못하겠지. 자신의수천 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동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진드기의 관점을 헤아려볼 수도 없겠지.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지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소은은 말문이 막혔다."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이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 온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지요.그날 밤 지하실로 저를 찾으러 온 사제는 바닥에 쓰러진 저와흩어진 기재들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장 알아차렸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일들을 목격했을 테니까요."그러니까, 사제님. 오브들이·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오브들이 우리에게 시간을 나누어 준 거였어요. 그들이 잠든거예요. 스스로 멈추기를 선택한 거예요. 우리에게 삶을 주기 위해서요.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죠? 제 말은, 고작 이런 우리를 위해서……."사제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 같았어요. 하지만 침묵 끝에 사제는 제 어깨에조용히 손을 올렸습니다."그래, 너도 보았구나."사제가 말했습니다."신도 금기도 없지. 오직 약속만이 있단다."저는 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여전히 그 공간을 떠돌고 있는 목소리의 잔해를 들었습니다. 제가 평생을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어떤 결정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먼 우주에서 온 작은 존재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떼어 주기로 결정하는 마음이, 이 잠든 행성 벨라타 전체에 깃들어 있었어요. 저는 눈을 감고 그들을생각했습니다.우리 대부분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오래된 협약을, 수백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