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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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안에서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가 오초 동안 졸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내 인생이 끝장날 수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 이유로 나 때문에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인정사정없는 이 세계의 룰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불행이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무섭고, 슬프고, 억울했다.

그럼 우리 언니들도 모두 현모양처가 되었나? 두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복순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게 쉬운 게 아냐. 일단 좋은 집에 시집을 가야 돼. 그리고 꼭 아들을 낳아야 돼. 안 먹어도 배부르고 마른 땅에서도 곡식을 뽑아낼 줄 알아야 해. 절대 큰소리를 내어선 안 돼. 울고 싶으면 부엌에서 불 피울 때나 혼자 몰래 울어야 돼. 세상이 망해도 가족들 밥상은 삼시세끼 차려낼 줄 알아야하고. 복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자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게 어디 사람이나. 무당을 불러내 때려잡아야 할 귀신이지. 우리 언니들은 절대 그거 되면 안 되겠다.

나라에선 전쟁으로 줄어든 국민 수를 다시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산을 종용했지만, 아이들의 먹을거리나 입을 거리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부모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열녀와 효부와 절부에 대한 칭송. 강요되는 희생과 인내,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강하고,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자식과 남편을 위해 무슨짓이든 할 수 있으며, 자식은 많이 낳아야 하지만 성욕 따윈 몰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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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와 규율은 무심코 내뱉는 언어의 질서,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관습적 행동 등 기호나 취향 등을 통해 식민지인들에게 스며들었다. 이 를 고려하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 혹은 조선인들이 일본인 의 피식민자가 되었던 것은 강점이 이루어졌을 때가 아니라 그것을 일상 으로 내면화했을 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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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얼마전 읽은 구병모작가의 소설집을 통해 ‘최영숙’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1926년에 홀로 스웨덴유학을 떠나 경제학 공부를 하였으나 고국에 돌아온 후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콩나물 장사를 하다가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인. 이렇게 짧은 일대기만으로도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그려졌으나 남아 있는 자료는 그녀의 인생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너무 많다.
읽다가 나혜석의 일생이 떠올라 찾아보니 둘이 같은 시기를 살았고 잠깐은 유럽에서 동시에(다른 나라일지라도말이다) 머물던 적이 있었을 듯 하다. 둘이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녀들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부드러웠다면 어땠을까? 자꾸 말해봤자 소용없는 ‘만약에’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

최영숙의 목표는 분명했다. 장차 고국에 돌아가 경제 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치겠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은 다시 노동 여성으로 좁혀진다. 목표가 분명했기에 이국적인 모습에 반한 스웨덴 청년들의 구애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S군아, 네 사랑 아무리 뜨겁다 한데도 이 몸 은 당당한 대한의 여자라. 몸 바쳐 나라에 사용될 몸이라, 네 사랑 받기에 허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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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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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너무 단순한 사람이어서 자신이 언제 겸손함을 배웠는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참다운 자부심이 덜해지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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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내보내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날아라, 오딘),약자에 대한 배려를 호의라고 착각하는 오만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누더기 얼굴), 고정관념과 편견에 한방 먹이는 이야기(지당하고도 그럴듯 한) 들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소감을 쓰고 있는 이곳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인데 지금 내 옆에는 백발의 여성이 독서대에 오래된 책을 두고 읽으며 옆에 있는 노트북에 수시로 무언가를 써내려 가고 있다. 그녀의 가방틈으로 보이는 책은 오규원 작가의 ‘이 땅위에 쓰어지는 서정시‘(서정시는 한문으로 표기된 초판본-1981년-이다) 그녀는 동네 노년의 여성들이 즐겨 입는 보라색 누빔점퍼에 일바지를 입고 있으며 2시간동안 자리를 뜨지않고 열심히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며 그녀를 흘낏 보고는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지당하고도 그럴듯 한’을 읽고 난 지금 나의 편협함에 얼마나 부끄러운가? 동시에 나도 그녀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 네가 앞으로 어 떤 세상에서 누구와 싸우더라도, 아빠의 마음이 항상 너와 함께 한다는 걸 잊지 말아주렴. 죽음을 자초 하지 말고, 자신이 지나치게 비겁해지지 않는 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모욕을 주는 자들을 섣불리 용서 지 않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진심 없는 화해에 서둘러 응하지도 않기를 빈다.그 모든 과정에서 세상은 너를 무너뜨리거나 해코지하기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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