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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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안에서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가 오초 동안 졸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내 인생이 끝장날 수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 이유로 나 때문에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인정사정없는 이 세계의 룰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불행이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무섭고, 슬프고, 억울했다.

그럼 우리 언니들도 모두 현모양처가 되었나? 두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복순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게 쉬운 게 아냐. 일단 좋은 집에 시집을 가야 돼. 그리고 꼭 아들을 낳아야 돼. 안 먹어도 배부르고 마른 땅에서도 곡식을 뽑아낼 줄 알아야 해. 절대 큰소리를 내어선 안 돼. 울고 싶으면 부엌에서 불 피울 때나 혼자 몰래 울어야 돼. 세상이 망해도 가족들 밥상은 삼시세끼 차려낼 줄 알아야하고. 복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자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게 어디 사람이나. 무당을 불러내 때려잡아야 할 귀신이지. 우리 언니들은 절대 그거 되면 안 되겠다.

나라에선 전쟁으로 줄어든 국민 수를 다시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산을 종용했지만, 아이들의 먹을거리나 입을 거리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부모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열녀와 효부와 절부에 대한 칭송. 강요되는 희생과 인내,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강하고,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자식과 남편을 위해 무슨짓이든 할 수 있으며, 자식은 많이 낳아야 하지만 성욕 따윈 몰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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