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
후안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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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물고기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막의 동물은 갈증을잘 참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내가 처한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업무 환경이조금씩 나를 바꾸고 있음을, 더 조급하고 쉽게 욱하고 무책임하게 바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껏 지켜왔던 기준을 지킬 수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졌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곤란하지. 고객이 왕이라는 말도 모르나?"
나는 멈칫했다가 본능적으로 변명했다.
"하지만 왕이 한 명이라야 말이지요. 저는 매일 엄청 많은왕을 섬겨야 하는걸요."

이제 나는 젊었을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려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도 않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오해를 살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잘보이려는 충동은 맹목적이고 헛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누구나 자기 기준에 따라 남을 판단하므로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함을 믿게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진실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비천한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때 권력에 반항해 봐야 힘만들기 때문에 다른 비천한 사람을 괴롭힌다.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때는 동물을 학대한다. 흔히 사랑을 맹목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랑은 맹목이나 공리와 동떨어진, 본심에 충실한 감정이다. 맹목적인 것은 오히려 증오다.

일이든 사업이든 감정이든 내 삶에는 좌절과 고통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끊임없이 실망하고 실패했다. 물론 실패를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나도 남들한테 인정받으려 그렇게 애쓸 필요가없었다. 글쓰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내 정신세계는 현실 세계가 척박해지는 만큼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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