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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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다는 말을 이 회고록을 읽으며 실감했다.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일지 <꽃은 알고 있다>. 25년간 범죄현장을 누비며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저자 퍼트리샤 윌트셔는 바로 ‘화분학자‘다. 화분이란 꽃가루. 그러니까 저자는 꽃가루를 분석해 범인을 밝혀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분석해내는 것은 시체를 비롯해 온갖 증거물들에 묻은 미세 입자들을 전부 포함하지만.) 과연 ‘미스 마플‘의 실사판이다.



꽃가루로 범인을 밝혀낸다니. 이렇게 쓰고나니 마법 가루를 뿌리면 범인이 짠 밝혀지는 장면이 연상되지만 실상 저자가 하는 일은 치밀하고 정교한 과학적 분석이다. 저자는 어떤 참혹한 범죄 현장이라도 직접 누비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증거는 용의자의 옷에 묻은 입자에서, 시체의 머리카락에서, 그 외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것들로부터 나온다. 저자는 언제나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증명해낸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의 눈속임 따위는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이 책을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저자가 해결한 범죄 사건들의 흥미진진함이고 둘째는 유능한 전문가로서 저자가 보여주는 태도다. 나에게는 후자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책의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과 그를 회고하는 방식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무심했던 어머니, 식물학에 빠져들었던 젊은 시절,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다가 자연스럽게 연이 닿게 된 법의학. 자신의 삶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저자는 특유의 굳건함을 잃지 않는다. 이는 한평생을 자연을 연구하는데 바친 학자로서 가지게 된 환원주의적 태도의 영향같기도 하다. 온갖 것들에 영향을 받는 요즘의 내 모습에 싫증이 있는대로 난 터라 책 속 저자의 모습이 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또 한 명의 멋지고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알게되어 기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나 또한 저자처럼 충실하고 굳건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범죄 수사, 법의학, 식물을 비롯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멋진 여성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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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_일을 쓰는 여자 - 우리는 어떻게 더 인정받고, 전보다 덜 흔들리면서, 마음껏 성장할 수 있을까?
마셜 골드스미스.샐리 헬게슨 지음, 정태희.윤혜리 옮김 / 에이트포인트(EightPoint)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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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밑줄을 많이 그은 책이 아닐까.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꼭 필요할 책, <내_일을 쓰는 여자>. 또한 지금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도약하여 리더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그리고 여성들과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싶은 남성 리더들에게 큰 도움이 될 책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습관‘들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여성의 커리어 확장에 있어서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를 비롯한 외적인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습관과 행동, 태도를 돌아보고 바꾸는 것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 부분에 집중하여, 성장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버려야 할 습관들과 구체적인 사례, 실천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세 가지 조언은 ‘자기 비판을 그만 둬야 한다는 것‘,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것‘ 이었다.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 같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읽으니 실제 상황 속에서는 혼자 깨닫기 어려운 문제들이라는 점이 깊게 다가왔다. 또한 여성들이 이 문제들로부터 조금만 방향을 틀어 태도를 바꾸면 더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고, 리더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구체적인 사례들로 책 속에서 거듭 입증되었기에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실용적임을 알 수 있었다. 위의 조언들 이외에도 책 속에 구체적인 실행 방법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이 ‘나의 변화와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무리에서는 결국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세번째 챕터에서는 나쁜 습관들을 버리기 위한 실천방법으로 동료와의 상호 피드백 등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나의 성장이 동료의 성장이고 우리의 성장임을 말하고 있다. 숨 고를 새 없이 바쁜 일상, 피부로 다가오는 차별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리더가 되어, 더 많은 이들을 이끌게 된다면 어떨까! 이 책은 그 변화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해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이 있었다면 올해는 <내_일을 쓰는 여자>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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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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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있어서 주말을 견딜 수 있었다.



3-4년쯤 전에 한국문학은 못 읽겠다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못 읽겠다고 말하던 시기가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쓰인 글들이 소설집으로 묶여 나오던 시기였다. 곪은 상처에 소독약을 들이붓는 것 같았다. 그때 못 읽겠다고 덮어버린 책들은 요즘도 잘 펼쳐보지 못한다. 그랬던 내가 왕성하게 한국문학을 찾아 읽게 된 것은, 그중에서도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글을 특히나 열렬히 기다리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직 멀었다는 말>은 권여선 작가가 <안녕 주정뱅이> 이후 4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다. 인터뷰에서 저자는 ‘슬픔의 마에스트로가 아닌 슬픔의 피에로‘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는 어쩐지 ‘슬픔의 마에스트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너덜너덜해진 페이지들을 지나 중간쯤에 있을 법한 주인공들이 이번 소설집에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황혼 녘을 고요히 등지고 선 이들 같다. 고난을 묵묵히 받아내거나 의아해하거나 승화시키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겪어내는 이들같다. 그래, 무력감. 소설 속에서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력감이다. 그러나 해설에서 백지은 문학평론가가 주지하듯 이 무력감은, 이들이 겪는 고통은 ‘그들 개인에게 귀속되는 불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할 부당함, 불공정, 불평등‘이다. 그래서 독자인 내가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도 ‘이건 아니잖아‘ 싶은 의아함, 뒤이어 ‘이래서는 안되잖아‘ 하는 분노다.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작품은 ‘모르는 영역‘과 ‘너머‘,‘송추의 가을‘,‘전갱이의 맛‘이다. (수록작의 절반이나 되잖아?) 앞의 세 작품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개인적인 상황을 이입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고 마지막 ‘전갱이의 맛‘은 ‘기억되거나 발견되는 나만의 말‘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로서의 말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만을 위한 말. 이 이야기가 이혼을 거친 두 사람 사이에서 전해지는 형식의 소설이라 더욱 좋았다.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떤 쓸쓸함이 감돌고 있어서 좋았다.



문학은 소설은 분명히 힘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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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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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만에 펼쳐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을 ‘설득의 기술‘이라 파악하며 세세한 방법론을 적어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리스어 원전 번역이라는 말에 선뜻 읽고 싶었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고.



일단 굉장히 체계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1권에서는 수사학의 정의에서부터 유형, 범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2권에서는 설득에 필요한 요소들로서의 감정, 부 등을 다루고, 드디어 3장에서 직유, 운율 등의 세세한 방법에 대해 논한다. 물론 21세기인 오늘날과 광장에서의 연설이 잦았던 고대 아테네의 상황은 다르지만 2권에서 감정에 대한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랐다. 역시 인간 본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권과 2권에 종종 언급되는 친구와 우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의를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데, 이에 더없이 공감했다. 내가 무언가 얻을 것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서 베푸는 마음이야말로 제대로 된 우의, 즉 우정이다. 이렇게 정의내리면 간단한 것들이 실생활에서는 그토록 복잡하게 느껴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 방식이나, 그들이 갈고 닦은 인간에 대한 지혜, 연설과 설득의 방법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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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서양철학 #소피스트 #그리스철학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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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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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으로 샅샅이 파헤쳐 쓴 가정 스릴러‘라는 소개 때문에 궁금했던 소설이다. 일단 <조용한 아내>라는 제목과 걸맞는 표지 이미지와 색상, 세로 띠지, 판형까지 실물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아들러 학파의 심리상담사인 조디와 건축 사업가 토드는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20년째 함께 사는 커플이다. 조디는 일상의 루틴을 지키며 거리감을 두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여자다. 토드와의 관계에서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생활의 틀이 있고, 조디는 토드의 바람기를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그들의 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는 심리상담사인 조디가 토드에 대해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물쇠를 채우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모두의 예상대로 사건은 토드의 외도로부터 시작된다. 조디와 토드의 시점이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보여지기 때문에 두 사람의 차이가 돋보여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토드가 쓰레기다. 토드는 자기가 하는 행동들과 그에 대한 결과를 제대로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디와의 관계도 날려버린다. 자, 그래서 조디와 토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누군가와 함께 삶을 꾸릴 때 비혼주의라는 신념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장단점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중은 제 머리를 못깎는다‘는 것. 조디와 토드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을수록 그들이 자기 자신에 있어서만큼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심리학과 결합해 풀어낸 점이 재미있는데 특히 심리상담사인 조디가 자신의 헤묵은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예상하겠지만, 그녀의 침묵이 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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