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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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같지 않아 홀린듯이 집중하며 읽었다. 가뜩이나 누구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청년 빈곤은 코 앞에 닥친 현실이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하루 아침에 홈리스가 된 스물 여섯의 주인공 미즈코시 아이의 이야기다. 만화카페에서 잠을 자고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하루를 사는 그녀. 의지할 곳도 사람도 없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눈에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엇이 이들을 길바닥으로 내쫓은 것일까?



주인공이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홈리스가 된 것은 그녀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녀는 도쿄 소재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경력도 있다. 다만 작은 문구회사에 들어가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믿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였다. 실업수당은 진작에 끝났고, 재혼한 아버지와는 남남처럼 지낸지 오래이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조차 어렵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통장 잔고는 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 본인이 10여년동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냈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담담한 어조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소설 말미에 이르러 결국 저자가 꼬집어내는 것은 제도의 문제다. 생활 보호 제도가 존재하지만 대중에게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제도가 있는 이상 돈을 받는 건 정당한 권리(287p)‘임에도 말이다. 빈곤의 굴레에 떨어진 이들이 혼자만의 힘으로 일어서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이들을 지원해줄 제대로 된 제도가 필요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당 조건에 걸맞는 사람이라면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길 위의 여성들은 ‘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 신은 그녀들이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신이 되어줄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이 연대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빈곤은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박힌다. 홀로 설 수 없는 상황인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좀먹는 길을 선택한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의지해야만 할 때는 의지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받은 사람은 받은 만큼 베푸는 사람이 될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니까.



청년 세대, 취직, 빈곤, 주거, 여성 문제를 비롯해 복지와 연대까지. 재미있게 읽히지만 이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고민을 던져주는 보물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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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기쁨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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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의 아름다운 수채화들과 그녀가 직접 꼽은 문장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



숲 속에서 동식물들과 뛰어노는 아이들(아마도 타샤의 손주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꽃들이 오밀조밀 다채로워서 한 송이 한 송이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다. 구성이나 색채의 사용도 놀랍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함이 아닌, 추억 속 기쁨의 말을 담고자 했다는 타샤의 말처럼 편안하게 음미할 수 있어 좋았다.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따스한 책이다. 책의 뒷편에 문장들의 원문이 실려있는 것도 포인트.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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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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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삶을 살아냈던 25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박경리를 비롯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담겨있다.



무엇보다 책의 ‘쓰다-싸우다-살아남다‘의 3부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온갖 제약들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노력했던 여성들의 삶을 나타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표현이다. 또한 ‘글 쓰는 여자는 결국 이긴다‘를 비롯한 선언적인 문장이 한 명 한 명의 여성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이 문장들은 글 한 편의 소제목과 마지막 문장으로 쓰이는데 ‘A는 B다‘라는 단순한 문장 구조가 가진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림없는 확고함.



적지 않은 수의 여성을 소개하다보니 한 개인의 복잡다단한 삶의 맥락보다는 ‘여성, 글쓰기, 삶‘이라는 주제에 맞춘 저자만의 시각이 돋보인다. 이는 이 책만의 강점이기도 하고 읽는 이에 따라서는 아쉬운 점이기도 할테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고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는 꿋꿋하고 강인한 투쟁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문장을 자주 떠올렸다.



이 책이야 말로 롤모델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훌륭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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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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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198p)



좋아하는 것에 바치는 순정같은 소설 <GV 빌런 고태경>. 전작 흥행에 실패한 영화감독 조혜나가 GV빌런 고태경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초반에는 생계 유지는 물론 다음 작품 제작에도 난관을 겪고 있는 주인공 혜나의 시니컬함에 살짝 당황했지만 곧 영화 업계에 대한 촘촘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전개에 푹 빠져 읽었다.



일단 행사 참가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인 GV빌런을 조명한다는 소설의 설정 자체가 재미있다. GV 빌런은 GV(Guest Visit)행사에 등장하여 분위기를 흐리는 빌런을 뜻하는 용어다. 가장 새로웠던 점은 시선의 방향을 틀어 이들에게 구체적인 서사와 존엄을 부여한 데에 있다. ‘그들의 얼굴이 화끈해지도록 일침을 가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혜나 또한 고태경을 따라다니며 그의 사연과 생각을 접하며 변화한다. 결국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혜나가 확인하게되는 것은 고태경과 그녀의 접점, 영화를 향한 사랑이다.



영화. 이 소설도 영화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차있다. ‘시네필끼리 연애하다 헤어지면 영상자료원이나 아트시네마에서 마주치게 된다.‘는 문장을 읽고 한참 웃었다. 이 외에도 소설 속에는 영화 지망생이나 시네필 뿐만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제법 흥미로울 구절들이 가득하다. 특히 전작의 실패에도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 조혜나, 20년째 입봉을 준비하고 있는 GV빌런 고태경, 유튜버로 전향한 윤미 등 영화와 연결된 이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조명하며 현실과 꿈의 균형을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GV빌런 고태경>은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또한, 이 책을 빌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꿈이 있든 없든 ‘모든 영화는 완결되어야‘ 하며 여기서 영화는 곧 삶이며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말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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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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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굉장한 보물을 얻은 기분이다. 소설 속에서 세심하고 다정한 문장들로 그려지는 김금희의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니. 이 책은 저자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정말 무조건! 저자가 마음 속에 자리한 기억들을 꺼내어 보듬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독자들에게 건네기까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나는 이 산문집을 읽고 나서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산문집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것들은 다음과 같다. 차분하고 섬세하고 예민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저자의 시선.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거나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빙 돌아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 발자국.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자의 유년 시절, 작가로서 소설을 쓰면서 받은 영감과 문학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는 태도 또한 엿볼 수 있다. 차분하고 진지하며 따뜻하고 다정하다.



사람, 마음, 연결, 사랑. 나는 이 네 가지 중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고 종종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저자의 산문을 읽고 나니 왠지 그것들을 믿어 보고 싶어진다. 사랑을 믿게 된 나 자신은 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 어쩐지 슬프고 두렵고 가냘프고 불안정한 대화만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해피 엔딩‘일 것이므로.



주말 내내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한 편씩 꼭꼭 읽었지만 어쩐지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밑줄 그은 구절들을 되짚으며 읽어나가야지. (덧. 표지와 띠지의 구성 및 색감 정말 어여쁘다. 동네 서점판도 구하고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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