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의 도전>을 처음 읽었던 날을 기억한다. 도서관에서 너덜너덜해진 책을 빌려 읽었는데 서문을 읽자마자 가지고 있던 노트를 펼쳐 이후 거의 대부분을 필사하며 읽었다. 개정판이 나왔을 때 기쁘게 구매했지만 필사했던 노트도 아직 가지고 있다. 그 때만큼 책에 깊이 몰입해서 읽고 옮겨 적었던 날은 아직까지 없었던 것 같다. 서문의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문장을 머릿속에 새기며 이후 정희진의 글을 열심히 따라읽었다. 페미니즘 공부의 시작이기도 했고.

그리고 2020년에 만난 정희진의 글쓰기 첫번째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이 책을 한 번 읽은 것으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열심히 밑줄긋고 메모하며 읽었지만 영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계속 펼쳐보며 곱씹어야 할 것 같다. 배움, 깨달음, 인식의 확장.

이 책에는 한겨례에 연재되었던 서평글이 실려있는데, 전반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아우르며 근 몇 년간의 한국 정치, 세월호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글들이 가득하다. 저자의 글을 읽는 첫번째 이유가 그 사유의 폭을 뒤따라가며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함이라면 두번째 이유는 솔직함 때문이다. ‘나도 늘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르침대로 쓰지 못하고 성질대로 쓰다가 길을 잃는다‘(89p), ‘나는 한심하게도 특정한 종류의 인간형을 경멸하는데 열정을 쏟는 ‘뒤끝의 끝판왕‘이다.‘(145p)와 같은 ‘모르겠고 그냥 말해버리자 에잇‘류의 자기고백을 읽을 때면 쿡쿡 웃다가도 표현의 가식없음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벼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글들이라는 뜻이다. 아주 좋은 의미에서.

한 개인은 소수자성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수자성에 예민한만큼 특권에도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식인도 성인(聖人)도 아닌 일개 범인(凡人)에 불과하지만, 더 많이 배우고싶고 더 노력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정희진의 글을 읽으면 이 다짐을 계속 환기하게 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럴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정희진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의 글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렇게 노력했으면 좋겠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배웠으면 좋겠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포 약간)



2권도 정신없이 읽어치웠다.



모두의 예상대로 캐머런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기독교 캠프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약속‘은 동성애 매력 장애를 교정하기 위한 단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모두의 예상대로 캐머런은 이미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저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그저 저라고 생각할 뿐인걸요.˝) 성정체성이 교정하고 말고 교정되고 말고의 무제가 아니라는 것 또한.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숨기는 일에 너무 지쳤기 때문이고, ‘선의‘로 무장한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강제한 행동이었기 때문이고, 10대 소녀로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곳에서 캐머런은 제인과 애덤을 만난다. 그들과 헛간에서 몰래 대마초를 피우는 시간들 덕분에 캐머런은 지워져가는 자신을 붙잡는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하게 만드는‘(202p) 캠프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낸다. 제인과 애덤, 캐머런은 서로를 규정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관계다. 어쩌면 이들이 자기혐오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캐머런이 의구심을 가질지언정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는 인물인 것이 정말 좋았다. 사랑하는 이들이 나에게 죄를 지었다고, 악마가 씌였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캐머런이 부모님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것들은 그녀에게 크게 상흔을 입힐 만큼 영향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냉소로 무장하곤 하는 캐머런이지만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일 뿐임을 알고 있는 그 모습은 강인하고 아름답다.



캐머런의 반짝이는 10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녀의 여름. ˝네가 지금 누구든, 그냥 있는 그대로 와.˝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 첫번째 권을 끝냈다. ​

클로이 모레츠 주연의 영화 ‘캐머런의 잘못된 교육‘의 원작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 (개인적으로는 번역된 제목이 더 마음에 들지만, 이미 원서와 영화의 제목이 ‘캐머런의 잘못된 교육‘으로 통일되어있는데 굳이 제목을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 콜필드의 여자 버전이 등장하는 소설이라기에, 표지의 그림이 너무나 취향저격이라(1권 2권 미묘한 색차이 둔 것 정말 신의 한 수.. 다산책방 선생님들 최고) 출간하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을 이제야 구매해 허겁지겁 읽는 중이다. ​

배경은 1990년대 미국. 캐머런이 자신의 성적 지향에 눈을 뜨는 바로 그 날, 그녀의 부모님이 사고를 당한다. 캐머런은 인과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 두 사건을 뭉뚱그려 받아들인다. 밀려오는 죄책감. 한동안 그녀는 수영과 영화에 파묻혀 시간을 죽인다. 그러나 한 번 알게된 것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일. 1권에서는 캐머런이 자기 의심과 죄책감을 넘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의 전반부가 그려진다. ​

캐머런을 생각하면 넷플릭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나 <데리 걸스>의 소녀들이 떠오른다. 캐머런은 냉소적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불안과 걱정을 일삼는 면도 있지만 대체로 표현은 덤덤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의 소수자성이 시험당할 때는 무너질듯 하다가도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를 대입하지 않기가 너무 힘들었다. 10대, 여성, 고아, 퀴어로서 캐머런이 겪는 그 모든 고통과 혼란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나 또한 10대를 지나왔으니까. 아마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잘못된 교육‘이라는게 시작되려는 참이다. 그러나 여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캐머런이 순응하고 굴복당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2권을 앞두고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캐머런이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어 그녀를 거부하는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것..! 그리고 혼자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 주체적인 10대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중간 리뷰는 여기까지 적고 어서 읽어보기로! ​ (그나저나 얼른 책 읽고 영화도 보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여성의 날에 읽게 되어 더욱 뜻깊은 책.



만약 여성들이 모든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어떨까? 만약 여성이 남성보다 물리적으로 더 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오미 엘더만의 <파워>에서는 전기를 내보내는 능력을 가지게 된 십대 소녀들이 등장한다. 점차 모든 여성들이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나고, 곧 여성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소설 속에는 ‘파워‘를 가지게 된 마고, 앨리, 록시 세 여성과 남성 기자 툰데가 번갈아 등장한다.



일단 진짜 재미있다. <이갈리아의 딸들>이 능청스럽게 반전된 성 역할을 전제로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파워>는 권력 구도의 점진적인 변화부터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상황을 함께 추적해나가는 짜릿함이 있다. 누가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 그 권력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동안 사회에 너무나 만연하게 퍼져있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 불평등을 자각하고 부수는 통쾌함도 물론. 오히려 통쾌함을 넘어선 극단적인 장면들 또한 서슴없이 등장한다. 아, 권력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이 소설의 가장 놀라운 점은 결말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파워‘는, 권력은 무자비하다. 또한 끝이 없다. 나는 이를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속성에 관한 문제로 읽었다. 하여튼 이 책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과 짜릿함이 끊이지 않았다. 끝까지 밀고나가는 정공법을 택한 작가가 존경스러울 정도다. 아마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낸 독자만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전부 소설 속 소설이다! <파워>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소설 속 소설로부터 몇 천년이 지난 시기 ‘남류 작가‘ 닐이 집필한 이 역사 소설을 두고 나오미와 나누는 서신이 <파워>의 처음과 끝에 들어가있다. 나오미가 닐에게 ‘혹시 이 책을 여성 작가의 이름으로 낼 생각은 없나요?‘하고 묻는 마지막 문장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당신이 1977년(원서 기준)에 출간된 <이갈리아의 딸>을 읽을 계획이라면 2016년에 출간된 이 책, <파워>도 꼭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 오직 ‘나’다운 답들이 쌓여 있는 곳, 그 유일한 공간을 찾아서
앤디 퍼디컴 지음, 안진환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들어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아침 일기, 명상, 따뜻한 차 마시기. 슬프게도 매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가장 잘 하고 있는 것은 이침 일기이고 가장 못하고 있는 것은 명상이다. 명상 어플의 양대산맥인 ‘Calm‘과 ‘Headspace‘ 두 가지를 모두 이용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목소리가 나오는 코치형 명상보다는 자유명상을 하는 편이다. 어쨌든 명상 초보자로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가웠던 책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파란 눈의 스님이자 Headspace의 대표인 앤디 퍼디컴의 책이다.



저자는 바쁜 일상에 치여 삶의 곳곳이 무너지기 시작한 현대인들에게 명상을 그 해결책으로 권하고 있다. 명상이라고 하면 불교 수행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명상은 그 종류도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다만 지향점은 모두 같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저자는 ‘Headspace 헤드 스페이스‘라는 개념을 소개하는데, 이는 ‘지금 이 순간 어떤 감정이 일든 흔드리지 않는 확고한 만족감이나 충족감, 즉 마음의 근원적인 평온과 평화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는 ‘하루 10분 명상법‘과 ‘마음챙김‘ 두 가지가 책 속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사실 명상이라는게 직접 부딪히고 실행하고 반복해야 하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준다고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다수의 절에서 수련하며 고군분투했던 실제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명상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법들이 있고, 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어 점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저자 또한 명상은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초심자에게 시작을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명상에 실패할 때마다 스승을 찾아가서 구했던 조언들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가끔 펼쳐보게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