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 반상 위의 전략으로 삶의 불확실성을 돌파하다
이세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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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의 책이 나왔다.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그의 바둑 인생을 톺아보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여러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의 인생관을 자세히 알 수 있어 무척 흥미롭고 좋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되려 바둑의 아름다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이세돌이라는 사람의 발자취와 인생의 선택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세돌과 바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얼마 전 AI의 도입 이후 바둑계를 다룬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를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는 그 연장선상에서 함께 읽어봄직한 책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긴 바로 그 대국만으로 바둑을 기억하지만, 바둑은 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성격을 보여주는 예술이며 수련의 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러한 바둑의 매력을 두루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승부만을 위한 수’가 어째서 아름답지 않은지, 왜 바둑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필수적인지, 일인자도 열 판 중 두 판은 지는 바둑 세계에서 어떻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지. 바둑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일화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아름다운 것이구나, 바둑은.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물론 알파고와의 대국 기록도 무척 흥미진진했지만), 슬럼프는 자신만의 기준선이 무너질 때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오직 스스로만이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슬럼프를 넘어가려면 다시 꾸준함을 쌓아올려야 하고, 물론 운도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묵묵히 그 시기를 지나가려면 실패는 실패 자체로 받아들이고 점검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깔끔함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책을 읽고 본 이동진의 피이아키아 유튜브 인터뷰 영상(역시 추천한다)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 이후 바둑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AI의 도입은 마냥 바둑계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바둑을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고도. 이기기 위한 바둑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인간적인, 추상 전략을 익힐 수 있는 종합 게임인 바둑.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이세돌 9단이 얼마나 바둑을 사랑하는지 느껴졌고, 바둑이 궁금해졌다. (한편, 인공지능이 이미 바둑을 가장 ’잘‘ 둔다면 인간이 바둑을 두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무력감도 스쳐지나간다. 이것 또한 이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자기계발서로 읽어도 좋고, 이세돌 9단과 바둑 팬으로서 읽어도 좋은 책. 밑줄 그은 부분은 여러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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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들 마티니클럽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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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게리첸 마티니 클럽 시리즈 2권 <여름 손님들>. 1권 <스파이 코스트>를 재미있게 읽어서 출간 소식 듣고 바로 읽어봤다. 은퇴한 노년의 CIA요원들이 도란도란 모여서 사건을 해결한다니 너무 흥미롭잖아! 실제로 저자가 나이를 들어가는 것에 대한 본인의 감정을 담았다고. 노년의 여성도 여전히 명석하고 유능하다. 소설 속 주인공 매기 버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은퇴한 CIA 동료들의 모임인 ‘마티니 클럽’ 멤버들의 활약도 흥미롭지만(경찰서장이 무안하지 않도록 참 따뜻하게 사건의 진상을 알려준다), 소설 속 미스터리 사건도 그 자체로 흥미롭다. 여름에만 휴가차 방문하는 몇몇 가족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족의 손녀가 실종된 것. 그런데 그 손녀는 혈육이 아니라 며느리의 전남편 소생이고, 조사 중 호수 밑에서 웬 유골이 발견되기까지 한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도 각각의 성격과 역할이 뚜렷해 헷갈리지 않는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1권 <스파이 코스트>를 읽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1권이 주인공 매기의 CIA시절 과거와 연결된 스토리라 이후 2권은 어떤 이야기가 나오려나 싶었는데 전혀 색다른 이야기였고, 오히려 좋았다. 노년 여성이 등장하면 소설의 힘이 떨어질거라는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작품. 다음권도 어서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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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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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 에세이 같기도 하고, 회고록처럼 읽히다가도 날카로운 정치 비평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야드 악타르의 <홈랜드 엘레지>.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해부하는 거대한 서사로 확장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아야드’, 그리고 그의 아버지다. 미국을 믿었던 아버지는 트럼프에 열광하지만, 결국 이 나라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난 아야드는 자라면서 ‘완전한 미국인’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이민자의 삶, 인종, 계급,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까지. 미국 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소설이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이민자란 무엇이고, 미국인이란 무엇인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읽다 보면 마치 저자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하다. 현 시대 미국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조금은 답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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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기쁨과 슬픔 - 인간이 꿈꾼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
올리비아 랭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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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의 <정원의 기쁨과 슬픔>. 전작 <이상한 날씨>, <강으로>, <에브리-바디>를 무척 즐겁게 읽었기에 기대하고 있었던 신작이다. 사실 주된 주거공간이 아파트인 한국에서는 나만의 정원을 가지기란 상당히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언젠가 정원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읽어보았다.

이 책은 정원을 가꾸는 행위를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탐색하는 책이다. 저자가 영국 시골에서 직접 정원을 돌보며 사유한 것들을 글로 담았다. 그녀는 정원을 성장과 소멸,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정원이란 결국 시간의 흔적이 쌓이는 곳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과 남아 있는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거라고.

특히 좋았던 건 이 책이 단순한 원예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책 속에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맞닿는 부분들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기후 변화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원이 단순한 안식처가 아니라 변화를 품고 있는 공간이며, 결국 삶 자체라는 것을.

저자에 따르면 정원을 돌본다는 건 단순히 돌보고 가꾸는 일을 넘어, 변화에 대한 받아들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 그리고 여전히 자라나는 것들에 대한 희망까지 포함한 일이다. 읽고 나면 금방이라도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어 두근거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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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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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비비언 고닉의 글. 이번 책은 글항아리 비비언 고닉 선집의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된 <끝나지 않은 일>이다. 노년의 비비언 고닉이 젊은 시절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문학을 다시 읽고 쓴 일종의 독서 에세이. 고닉의 글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지만, 특히 이번 책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처음 읽고 느꼈던 감동과 맞먹을 정도로 좋았다.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가? 우리는 문학으로부터 무엇을 발견하는가? 작가는 왜 문학을 집필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결국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로 수렴될 수 있으리라. 작가는 꼭 자기 자신만큼만 쓸 수 있고 독자는 꼭 자기 자신만큼만 읽을 수 있다. 고닉은 다시 읽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그로부터 훌쩍 성숙해진 시선으로 한층 더 깊게 작품을 읽어낸다.

문학을 읽을 때 독자는 행간에 무엇이 드러나있는지 무엇이 숨겨져있는지 감각적으로 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저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입장을 취하고있는지까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즉 문학 읽기는 저자와 등장인물과 독자의 일인삼각과도 같다. 고닉은 이 지점을 아주 기민하게 짚어낸다. 관련하여 고닉이 뒤라스의 <연인>에 대해 쓴 글들이 특히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 역시 뒤라스와 똑같은 집착에 구속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건 그가 성애의 망각에 평생을 바치고도 자유를 얻지 못했듯이 어른이 된 나의 앎도 나르시시스트적 상처에서 나를 해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닉 글의 매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듯하다. 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곧 타인과 세상을 향한 이해로까지 확장될테니. 그리고 문장마다 느껴지는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는 부분.

‘문학작품에는 일관성을 갈구하는 열망과 어설프고 미숙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비상한 시도가 각인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서 평화와 흥분, 안온과 위로를 얻는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르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11p)’

*판형, 표지 및 본문 디자인(폰트, 정렬, 여백), 번역 퀄리티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웠다. 글항아리에서 비비언 고닉 책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비비언 고닉 선생님 책 많이 써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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