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두발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8
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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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카렐 차페크 철학소설 3부작 중 하나인 <호르두발>. 실제 치정 사건을 바탕으로 한, 무척이나 장르적인 소설이다.

미국에서 8년 간 광부로 일하다 집으로 돌아온 호르두발은 가족들이 자신을 반겨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 폴리나의 마음을 다시 얻어보려 한다. 사람들은 아내의 부도덕함을 비난하지만, 호르두발은 끝끝내 부부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호르두발의 내적 독백으로 구성된 1부는 어쩐지 처연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반전되며 진정한 장르소설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호르두발이 살해당한 것! 아니, 주인공이 살해당하다니? 주인공 없는 소설을 읽어도 되나? 의아해하며 읽기 시작했다. 2부에서는 경찰의 시점에서 ‘호르두발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이 그려진다. 호르두발의 내적 고뇌는 완전히 지워지고 제 3자의 시선에서 진상이 짜맞춰진다. 특히 3부에서는 사건이 재판의 영역으로 넘어가며 또 한 번 진실이 재구성된다.

부록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한 가지 사건을 1,2,3부 세 번에 이르러 반복 서술했음을 고백한다. 즉, 1부에서는 주관적 진실을, 2부에서는 수사적 진실을, 3부에서는 법적 진실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진실은 더 깊고 무거우며 현실은 더 다면적이고 복잡하다”고, “인간의 내면과 그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타인을 알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쉽게 안다고 믿는가. 어쩌면 한 인간의 진실은 끝내 그 자신에게만 속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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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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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하루키 다운 소설이었다.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인공인 장편소설이라 나름 화제가 된 모양인데, 글쎄 굳이 여성이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싶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엘렉트라>의 하루키식 다시 쓰기 같다는 평을 읽었는데, 그렇게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쩔 도리 없이 납작해서 아쉽다고 말할 수 밖에는.

소설은 ˝솔직히 그쪽보다 못생긴 상대는 처음이군요.˝라는, 소개팅 자리에서 막말을 던지는 남자의 대사로 시작된다.(<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주 후킹하다. 이 소개팅남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주인공 가호는 개미핥기 부부과 흰개미여왕이 있는 비현실적인 세계 속으로 떨어진다. 진짜 현실과는 어딘가 다른 기묘한 곳으로 꿈인지 아닌지조차 분간이 어려운 세계다.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틀린 것, 사악한 것이라고 단호히 거부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전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일로 묵살하고 망각해버려야 할까? 진실에 몇 가지 측면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름에도 몇 가지 측면이 있다. 무엇을 택해도 정답이 되고, 무엇을 택해도 오답이 된다.˝(212p)

답이 보이지 않는 세계다. 답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가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너무나 하루키적인 세계, 하루키적인 인물들, 하루키적인 문장들이다. 나는 분명 비슷한 이야기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만난 적이 있다. <가호>에서도 역시 상실, 내면의 고백, 이세계로의 진입이라는 장치가 반복된다. 확실히 짧고 읽기 쉽지만, 이전작과 반복되는 부분들이 많고(이건 사람에 따라 장점일수도) 상징은 모호하다.

하루키 소설들 중에서도 <해변의 카프카>나 <1Q84>처럼 장대한 서사적 체험이 가능한 소설이 취향인 나에게는, 아쉽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가호>를 한 여성의 정신적 역사로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던데, 그럼에도 나는 굳이 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어야만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모녀 서사의 복잡다단함을 다루기에는 하루키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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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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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어떠한 죄도 짓지 않은 채 어린 시절과 결별하고 어른이 된다는 게 가능할까?” 8년 만에 다시 읽는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가장 좋아하는 박지리 작가의 소설이다. 8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장편소설이지만 읽다 보면 체감이 안 될 정도로 흡인력이 어마어마하다. 이 책은 sf판타지 소설이며 성장 소설, 그리고 범죄 소설로, 사건 전개와 인물들 간의 연결이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어진다. 처음에는 선과 악이 명징하게 나뉘는 것 같지만, 점점 더 그 둘이 혼재되면서 마지막에는 어마어마한 여운을 선사한다.

1구역에서 9구역으로 나뉘어 살아가는 가상의 국가. 주인공 다윈 영은 1구역에서도 극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수재다. 그의 아버지 니스 영은 문교부 차관으로 차기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다. 소설은 어린 나이에 살해당한 니스 영의 친구 제이의 추모식에서 시작된다. 다윈은 이곳에서 제이의 조카 루미를 만나고, 둘은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제이의 살해 용의자를 함께 추적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오래된 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 소설이 아니라, 십대 아이들이 어떻게 제각기 ‘알을 깨고 나아가는지’, 그들 각각과 부모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결국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순수하고 정직한 다윈, 그리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니스. 당당하고 진취적인 루미, 그리고 그런 그녀를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 조이. 그리고 아버지에게만 엄격하고 냉정한 니스, 그런 아들을 한없이 따뜻하게 바라보는 러너. 이렇듯 다양한 부모-자식간의 관계와 어떻게 자녀들이 각자의 부모들을 극복하고 성장하는지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가 하면, 1구역에서 9구역으로 철저히 계급적으로 나눠진 소설의 배경도 무척 상징적이다. 사실상 중심지는 1구역이고 그 외에는 주변부에 머무르며 특히 9구역은 온갖 범죄의 근거지로 지목될 뿐 사실상 폐허나 다름 없는 곳이다. 1구역 중에서도 엘리트 학교 프라임스쿨 학생들은 매우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데, 주인공 다윈이 이곳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프라임스쿨 홍보 잡지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바르고 ‘선한’ 엘리트 학생의 대표격이었던 다윈이 제이 아저씨의 죽음을 추적하며 어떻게 본인 내부의 ‘악’을 발견하게 되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플롯이 너무 잘 짜여져 있는 탓에 어느 정도 읽으면 이야기의 결말을 알 것 같다고 방심하게 되는 순간이 올 텐데, 그 부분을 넘어서 진짜 마지막까지 닿아야 비로소 이 소설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마지막 20여페이지 정도가 이 책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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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기울이는 법
롭 워커 지음, 이혜진 옮김 / 마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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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특히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 대부분의 현대인은 깨어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일하는 데 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하릴없이 릴스나 SNS피드를 넘나들며 보내기 일쑤다. 우리의 주의력은 명백히 낭비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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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주의를 어디에 기울이느냐가 우리 삶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당신 삶을 구성하는 아주 결정적인 자원인 주의력이 낭비되고 있으니 당장 각성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부드러운 방식으로, 아주 사소한 일들로 창조적 영감을 일깨우듯이, 일상 속에서 주의를 다른 곳에 기울여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깨어있는 명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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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기울이는 다양한 방법들을 하나씩 열거하는 방식으로 꾸려진 책이다보니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무방하고 전부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무뎌진 지루한 일상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해보고 싶을 때 가볍게 펼쳐들 만한 책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주의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워진다니, 꽤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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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거나 손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 또한 일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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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수련 - 내게 없는 것으로 삶과 맞서는 법
이예지 지음 / 세미콜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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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질투 수련. 책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다. 질투를 수련한다니. 그게 수련이 되나? 하지만 굳이 들키고 싶지 않은 질투라는 감정을 전면에 끌어내다니 무척 용감하다. 그리고 그 옹졸한 감정을 인정하고 내보이는 순간, 더 이상 질투의 대상인 타인 앞에서 작아지지 않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질투하는 서른 명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레타 거윅의 인생 셈법, 임윤찬이 오직 피아노와 독대하는 순간, 김애란이 바라보는 한 걸음 옆의 세상. 저자가 질투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재능이나 성공이 아니라, 그들이 일궈낸 삶의 방식, 그중에서도 저자에게 없는 것이다.

내가 질투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인정하노라면, 곧 나의 결핍(혹은 내가 결핍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전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재료가 된다. 나 역시 가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꾸준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질투하는데, 아마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도 그 확신과 실행력일 것이다.

타인의 삶을 너무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부러워하도록 부추김당하는 시대다. 당장 인스타 피드를 슥슥 몇 번 내려봐도 질투할 거리들이 널려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질투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질투하는지 분별할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 그런 의미라면 질투도 제법 쓸모 있는 수련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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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6-10-08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전 좀 섬뜩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