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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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다가 ‘올해의 발견’이라는 평을 봤다. 여기저기서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정도란 말이야? 좋고싫음은 주관적이지만 대체로 많은 이들이 좋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시와 산책> 이야기다.



책 곳곳에 고요한 별빛같은 문장들이 있다. 특히 행복과 꿈결, 침잠에 대한 글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산책하는 사람은 느리게 걷는 사람이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고 풀과 나무와 꽃과 고양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이 문장으로 빚어진다면, 글이 된다면, 책이 된다면.



그리고 시. 이 책에는 에밀리 디킨슨, 실비아 플라스, 페르난도 페소아, 파울 첼란, 릴케 등 사랑하는 시인들의 시들이 등장한다. 나는 좋아하는 시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나에게 시는 지나치게 내밀하게 느껴져서),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 시 이야기를 하면 곧장 주의를 기울이곤 한다. 남몰래 그 사람의 내면을 엿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더욱이 산책하는 이가 고른 시라면.



근래 마음이 소진되어 읽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과 긴 산책으로 조금은 위안이 된 것 같다. 오늘은 자기 전에 로베르트 발저와 에밀리 디킨슨을 읽어야겠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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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작은 아씨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이야기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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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과 꼭 함께 읽어야할 책. <작은 아씨들>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매들 이야기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네 자매의 실제 삶은 어땠을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조’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루이자 메이 올컷은 어떤 사람일까?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루이자의 이야기를 평전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에서 만날 수 있다.



루이자는 가난과 역경으로 가득했던 길고 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녀가 꿈과 희망과 다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간의 믿음과 화목함 덕분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견뎌나간다’(72p)고 믿는 루이자는 특유의 강인함으로 가족을 책임지겠다고 결심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썼던 사람. 그녀가 삶으로 보여준 그 굳은 신념에 여러번 감탄했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는 루이자의 삶을 한 편의 소설처럼 유려하게 표현하면서도 자서전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꼼꼼하고 세밀하다. <작은 아씨들>의 팬이라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갔던 한 여성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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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빛
백수린 지음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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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서도 계속해서 읽기를 미뤄온 것은 왜일까. 아마도 저자의 전작(<폴링 인 폴>과 <참담한 빛>)이 나에게 먹먹함을, 빛이 바래다 못해 응고된 감정들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편 ‘시간의 궤적’을 각별하게 읽었던 기억과 이번 책을 먼저 만나본 이들의 호평에 기대어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백수린 소설가의 <여름의 빌라>.

한 문장 안에 얽힌 표현들이 아름다워 한참을 머무르다보니 다 읽기까지 몇 주나 걸렸다. 어떤 작품을 읽다가는 오랫동안 숨을 고르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을 읽다가는 ‘와 정말 좋다!’ 하는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따뜻한 햇볕이 스며드는 오후에 공기 중에 천천히 내려앉는 먼지들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소설집이었다. 아주 느린 곡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발레리나를 오랫동안 바라본 것도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시간의 궤적’,’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흑설탕 캔디’다. 특히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거대한 체념’이라는 표현 앞에서 도저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그 표현 덕분에 가끔 이 단편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허물어진 주택의 골조 사이사이를 거닐던 그녀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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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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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을 읽고 나서 그녀의 다른 책을 갈급하게 찾아봤던 날이 선연하다. 한 권의 책을 읽고나서 그 책이 너무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나머지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게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드문 작가들 중 한 명이 바로 캐럴라인 냅. 그녀의 유고 산문집 <명랑한 은둔자>가 출간되었다. 명랑한 은둔자라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표현이 사실은 너무나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는다는 것을 아는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한참동안 기분이 좋았다. 나 자신 또한 또 한 명의 명랑한 은둔자이기 때문이다.



냅의 글은 솔직하다. 그의 글에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사람만의 솔직함이 있다. 도입부에서는 조금 느슨하게, 그냥 가볍게 공을 툭 던져보는 식이지만 이내 투명하고 정확하게 다음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이야기의 흐름에 정신없이 빠져들다보면 마치 냅이 옆집에 사는 가장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허공에 대고 맞장구를 치고 싶어진다. ‘맞아. 나도 그래!‘ 자기 자신에 대해서 포장 없이 담백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의 글에는 자의식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항상 놀랍다. 이렇게 다 써도 되는거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냅은 명랑하게 어깨를 으쓱하고 다음 글을 써내려갈 것만 같다.



총 다섯 챕터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열렬히 읽은 챕터는 맨 앞에 실린 ‘홀로‘다. 고독과 고립의 차이, 외로움과 수줍음, 자신의 일상을 홀로 온전히 꾸려나가는 기쁨에 대한 글들이 모여있다.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고독을 사랑하지만 고립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으로서, 마음과는 달리 항상 쭈뼛거리는 수줍은 사람으로서 정말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지적이고 유려한‘ 캐럴라인 냅의 글을 나는 앞으로도 몇번이고 계속해서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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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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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좋아하는 것이 같다던지. 하물며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호주 멜버른에는 셜리들이 모인 ‘더 셜리 클럽‘이 있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모인 셜리들은 서로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년의 호주 여성으로 구성된 이 모임에 임시-명예-회원이 새로 가입하게 되었으니,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설희다. (그녀의 영어식 이름이 셜리) 호주의 셜리들은 피부색과 나이가 다른 새로운 설희(셜리)를 기꺼이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한 장의 음반을 듣는 것 같은 구성이 인상적이다. 설희가 만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총천연색으로 표현되는 것도 재미있다. 호주라는 낯선 나라에 덩그러니 놓인 설희이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매일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인다. 급기야는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S를 향한 사랑이 솟아나기까지한다. 달콤한 풍선껌같은 그런 사랑. 그래, 결국에는 사랑이다. 설희의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연결이나 우정과 같은 단어들을 지나 결국 사랑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사랑을 믿고 싶어진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다면. 네임차트 사이트에 내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집계된 것만 해도 약 6000명. 과연 이름이 같은 6000명의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더 셜리 클럽‘을 만나고 나니 안될 것도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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