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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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이라는 문구에 혹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둠의 눈>은 40년 전에 출간된 딘 쿤츠의 소설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를 찾기 위해 나선 크리스티나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서스펜스, 미스테리, 로맨스, 첩보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져있어 속도감있게 읽힌다.



가장 독특했던 부분은 초자연적인 힘의 등장이다. 개인적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소설에서도 쉽게 수긍가는 설정은 아니었다. 다만 이 설정이야말로 크리스티나가 아들을 찾아 떠날 수 있는 동력이자 감동적인 마무리의 키포인트가 되어주기 때문에 소설 전개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미스테리의 짜임이나 예측가능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플롯의 전개나 인간미 넘치는 인물 설정은 인상적이었다. 고전적인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내게는 크리스티나와 엘리엇의 만남이야말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다. 운명적인 이끌림, 서로에 대한 신뢰, 함께 고난을 겪으며 더욱 돈독해지는 사랑. 뻔한 이야기같아도 제대로 잘 쓰여지기만 한다면!



작금의 사태로 전세계적인 재조명을 받고 있는 소설이라고. 스티븐 킹과 함께 서스펜스 소설의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작가라는데 <어둠의 눈>이 초기작이라니 조금 더 무르익은 시기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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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띵 시리즈 1
이다혜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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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주제로 책 한 권을 쓰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인만큼 기대하고 읽었다. 역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조식을 주제로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다니.



책을 읽으며 나의 조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사실 나에게 아침으로는 간단한 과일과 요거트 정도가 적당하다. 그마저도 평일엔 건너뛰는 편이 많고 주말에도 아침 겸 점심으로 때우는 편이다. 그래도 여행 중 호텔의 조식은 좋아한다. 무엇을 먹든 먹지 않든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게 여행이니 당연한 소리일까.



그런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꿀팁은 오트밀 조리법이었다(!) 아침식사로 오트밀만한게 없다는 말에 홀려 쟁여두었었는데 영 종이 씹는 맛이라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1) 전날 밤에 요구르트 부어놓기 (2) 전자렌지에 돌려 먹기 두 가지 모두 꼭 시도해봐야지.



이 외에도 오지은 작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를 읽고 보내는 편지, 아침밥 차리기와 여성들의 수난사(?), 냉장고 파먹기와 열흘 내내 만두 먹기 등등. 이 책으로 오랜만에 에세이 읽는 기쁨을 온전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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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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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인지 삭막한 집을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중 첫번째로 생각난 것이 반려식물 기르기였다. 이는 최근 집 근처에 꽃집이 여러군데가 생긴 것과도 관련이 있다. 열흘에 한 번쯤 절화를 사면서 흘끔흘끔 화분에 담긴 초록이들을 쳐다보곤 하니 말이다. (몬스테라 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울었다.)



디어클라우드의 이랑, 이 책에서는 식물 에세이스트 임이랑. <아무튼, 식물>에 이은 저자의 두번째 식물 에세이다 :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나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괴로우니 식물을 엄청 많이 들여야 하는게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의 이 책에는 반려식물과의 일화와 식물원 탐방기등 다정하고 섬세한 글들이 잔뜩 실려있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식물을 통해 삶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구절이었다. 특히 ‘모든 동식물은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존중을 받으며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상대를 존중할 것. 그 존중은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동식물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한 자리에서 고스란히 견디며 살아가는 식물을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식물 애호가 뿐만이 아니더라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나는 식물처럼 사람도 그러하리라는 깨달음, 우울한 날이면 도시 식물 산책을 통해 힘을 얻기 등등 삶에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파릇파릇한 초록을 무성히 늘어뜨리며 가끔은 화려한 꽃과 열매를 보여주기도 하는 식물, 그리고 그런 식물을 사랑하는 이가 쓴 글. 조곤조곤한 저자의 글들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의 집에는 반려식물이 생겨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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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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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 않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매일 같은 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보라색 치마’라고 부른다. 화자인 ‘나’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겠다는 목표를 가진 인물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구인란이 ‘보라색 치마’의 눈에 띄도록 두기까지 한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공을 들인 덕분인지 ‘보라색 치마’는 ‘나’가 일하는 호텔에 일자리를 얻는다.



기묘한 소설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말년의 마츠코(<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를 연상케했던 ‘보라색 치마’는 점점 ‘정상인’이 되어가고, 그녀를 따라다니는 ‘나’는 스토커에 가까워진다. 도대체 왜 ‘나’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걸까? 왜 ‘나‘는 당당히 말을 걸지 않고 끊임없이 겉돌며 관찰만 하는걸까? 이 소설은 의문점 투성이다.



거듭 생각할수록 이 소설의 장르는 스릴러같다. 독특한 인물이었던 ‘보라색 치마‘가 점점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가면서 비교적으로 선명해지는 ‘나‘의 집요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어째서 ‘나’는 생활의 모든 초점을 ‘보라색 치마’에게 맞추고 있는가? 독자는 끝까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보라색 치마‘를 쫓아다니는데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쌓아지는걸까? 소설 속에서 ‘나‘는 호텔에 취직한 사람들이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문득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줄 모르는 현대인들이 떠오른다. 젊은 세대일수록 사무실에 걸려오는 낯선 전화를 받기 어려워한다는 뉴스 기사를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다. ‘나‘가 자꾸 ‘보라색 치마‘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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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의 끝
에두아르 루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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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생 에두아르 루이가 22살에 출간한 자전적 소설 <에디의 끝>. 프랑스 북부 산업도시에서 나고 자란 에디는 남성이지만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따돌림을 당한다. 가난, 폭력, 무지가 끊임없이 대물림되는 작은 마을에서 에디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물리적인 탈출 뿐이다. 이 소설은 에디가 마침내 마을에서 벗어나기까지의 성장사를 담고 있다. (트렌스젠더 인권 활동가 Paris Lees와 엠마 왓슨의 인터뷰 영상(British Vogue) 말미에 이 책이 언급되는 것을 본 뒤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책 속의 폭력 묘사가 너무나 생생하고 잔인하여 출간 직후 기자들이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저자의 고향 마을을 찾기도 했다고. 에디의 친구들은 상습적으로 그에게 침을 뱉고 구타를 가한다. 마을 사람들은 에디를 무시하고 조롱하며 부모는 그런 아들을 부끄러워한다. 에디는 필사적으로 ‘남성성‘을 어필하기 위해 애쓴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보고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디가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점점 확고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왜 ‘남성성‘에 천착하는가? 왜 ‘남성성‘의 규범에서 벗어난 에디를 괴롭히는가? 저자는 이를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에디가 나고 자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공장 노동자이고 경제적, 문화적인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다. 가난과 폭력, 무지가 계속되는 이유다. 계급의 문제다. 그게 전부인가? 우리는 소설의 말미에 에디가 가까스로 마을을 탈출했을 때, 소위 부르주아들이 에디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호모 새끼‘. 공장 노동자들이나 부르주아들이나 작은 마을에서나 도시에서나 동성애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사회 구조적인 억압 속에서 에디가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차별과 혐오, 배제는 유해하다.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재생산하는 가부장제도 유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에디의 이야기가 비단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나는 당신들이 끊임없이 불편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기억하자. 계속해서 배우고, 공감하고, 변화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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