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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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 <소란>이 난다 출판사에서 새 옷을 입고 나왔다. 같은 글들이지만 북노마드에서 나왔던 버전과는 다르게 묶였고, 책의 판형과 활자, 표지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글들인데도 처음 읽는 것 같았다. 물론, 좋았다.



<소란>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도 슬픔도 외로움도 넘친다. 조금은 날카롭고 방어적인 것도 같다. 그렇지만 비장함 또한 느껴진다. 다 사랑하고 나서, 다 울고 나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소란>의 저자가 몇 권의 책을 지나 <모월모일>에 당도했다고 생각하면 좀 멋지다.)



몇 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의 태도도 전부 변했다.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 그런가?) 같은 책을 여러번 읽을 때의 묘미는 과거의 자신 또한 겹쳐보인다는 것. 당시 나는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바보 이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글을 특히 아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때는 알고서도 외면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아끼는 글들 중 하나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소란>이 ‘어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밝힌다. 또한 당시 글을 쓰면서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아 자유로웠노라고. 당신이 생의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든 ‘어림’을 사랑하는 이라면 단번에 이 책을 아끼게 될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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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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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에 이은 정희진의 글쓰기 두번째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이 책에는 전작에 이어 저자가 한겨례에 연재했던 ‘정희진의 어떤메모‘ 칼럼 63편이 실려있다. 저자는 각각의 글마다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적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일종의 서평집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서문에 적힌대로 ‘나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면, 저자는 단순히 쓰는 일을 넘어 읽고, 성찰하고,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그는 ‘살아내는 대로‘ 쓰는 사람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쓴 글 속에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안다. 글만큼 글쓴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적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글쓴이가 문장 앞에 얼마나 솔직했느냐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치열하게 사유하고 그것들을 숨김없이 풀어냈다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으리라. 또한 ‘내가 쓴 글은 (그 당시의) 나 자신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좋아하는 책들이 자주 등장해 기뻤다. <침묵의 세계>, <늙어감에 대하여>, <캐롤> 그리고 <헝거>외 몇 권 더. 하지만 정작 나를 아연실색케(?)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었다. : ‘˝나는 전혜린˝이며 예술가는 모두 백혈병으로 죽는 줄 알았던 감상적인 문학 소녀‘(95p), ‘독서의 문장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해서다.‘(121p). 더 많지만 여기까지만 적겠다. 나를 들킨 것 같아서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된 것들도 많았다. 동화가 ‘아동에게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당연하게도 현실에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없다. 아,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한 여성 혐오적인 판타지는 동화로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이번 책에서는 삶과 죽음, 외로움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다시금 이 책을 바쁘게 들춰보며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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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 헤매기 -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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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의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런던 거리 헤매기>. 버지니아 울프가 쓴 열 여섯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짧은 호흡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저자의 세밀하고도 긴 문장이 어려웠던 이들이라면 이 책으로 그녀를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단연 독서가에 대한 글인 ‘서재에서의 시간‘과 마지막에 실린 ‘여성의 직업‘이다. 먼저 ‘서재에서의 시간‘. 이 글에서 저자는 ‘참된 독서가는 본질적으로 젊은 사람‘이라고 칭하며, ‘젊음 상실의 징후‘로서 고전 독서에서 동시대 작품 독서로의 이행을 다루고 있다. 동시대의 글을 읽을 때는 고전을 읽으며 갈고 닦은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고전이 오랜시간 살아남은 수작이라는 점에서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고전이 고전으로 살아남기까지는 당대의 시대 문화적 요소가 개입되었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예술가들에게서 얻는 기쁨이 가장 최고의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여성의 직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으며 여성으로서 글을쓰기까지 ‘집안의 천사‘을 죽이고 ‘인습과 관습이라는 유령‘과 싸워야 했음을 고백한다. 전자는 무조건적으로 수용적인 여성상이고 후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자아발견의 어려움을 뜻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분열적일 수밖에 없고 진짜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굴곡을 넘어야 한다. 더디지만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나에게 있어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는 가장 큰 기쁨은 문장들의 유려하고 섬세한 표현에 있다. (번역된 문장으로도 느껴질 정도이니 원문으로 읽으면 더 좋겠지. 귀찮음을 극복한다면 언젠가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새삼 그녀의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에 감탄했다.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 그것들을 빌미로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낮추지 않는 사람. 과연 훌륭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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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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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는 태어났다.˝



<출신>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났지만 내전을 피해 독일로 이주한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소설이다. 자필 이력서를 쓰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한 저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비셰그라드에서부터, 처음부터 독일어를 배워야했던 14살, 그리고 추방당한 부모님을 뒤로하고 혼자 살아내야했던 시간들까지.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책 소개에 적힌 작가 이력을 충분히 숙지하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현재 시점의 작가와 어린 시절의 작가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다가, 그가 겪었던 두 나라에서의 삶 자체가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팽팽하게 교차하듯 저자의 문장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과거를 헤집어 풀어놓기란, 분절된 역사를 기억해내기란, 현실 속에서 죽어가는 할머니와 마주하기란 그리고 그것을 글로써 풀어내는 것이란 역시 쉽지 않은 일.



출신, 이라는 말이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출신이라는 말은 어쩐지 낙인같다.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한민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에 대한 내 심경은 복잡하다. 그러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정감을 준다. 무엇이든 대답할 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출신을 묻지 않는 날이 올까? 인종과 계급과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냥 한 개인을 한 개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모르겠다. 요즘같은 시대엔 더더욱 모든 것이 모호하기만 하다.







(* 서포터즈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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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멈출 수 없다 - 여성의 삶이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멜린다 게이츠 지음, 강혜정 옮김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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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이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멀린다 게이츠가 쓴 첫번째 에세이. ‘이 책에는 어떻게 하면 세상이 더 나은 쪽으로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멀린다의 치열한 고민과 해결책, 이를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기득권층일수록 스스로가 가진 특권을 인지하란 쉽지 않은 일인데, 멀린다는 이를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는 세계 반대편에서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공감‘한다. 아, 나도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멀린다가 주목한 것은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면 국가를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면 교육 수준, 고용률, 경제 성장률을 비롯한 건강한 사회의 지표들이 올라간다. ‘배제되어 있던 집단을 포함시킬 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그래서 멀린다는 가족 계획(피임약), 조혼 금지, 여성 교육 등 여성을 위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유의미한 결과로 나타났다. 실제로 현장에서 그녀가 직접 부딪히고 겪은 내용들이 각 챕터마다 생생하게 수록되어 있다. 멀린다와 재단이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상황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더 나은 대안책을 찾아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여성을 도와야한다. 여성의 지위를 높여야한다. 가부장제는 그 누구에게도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와 당신과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 시킬 수 있다는데,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는데, 이래도 모른척하겠는가! 필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함께 읽는다면 금상첨화겠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게이츠‘를 보면서 빌과 멀린다의 재단 사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빌 게이츠만을 조명하고 있어 재단 사업에서 멀린다가 맡은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되고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는데, <누구도 멈출 수 없다>를 통해 멀린다의 목소리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이 책을 이 시기에 만나게 된 것 또한 내게는 큰 행운이다.



책의 초반에 멀린다는 자신을 ‘열렬한 페미니스트‘라 인정하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취약함과 실수를 드러내는데도 주저함이 없는 용감한 모습!) 아, 과연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만 한다. 이 기회를 빌어 적는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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