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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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눈이 반짝거린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장들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저자의 눈을 본 것도 같다. 바로 이채훈 음악칼럼니스트의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다.



이 책은 총 7악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클래식 음악의 대표 작곡가들이 속속들이 등장한다. 비발디, 바흐, 헨델에서부터 모차르트와 베토벤, 리스트, 쇼팽을 지나 메시앙과 윤이상까지! 원한다면 클래식 음악의 400년 역사를 간략하게 훑을 수도 있다. 중간중간에 QR코드가 삽입되어 있어 책을 읽으며 손쉽게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가장 좋았던 부분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음악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작곡가의 어떤 면이 특별하게 다가왔는지, 특히 어떤 작품이 인상적이었는지 풀어놓고있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또한 악장 사이사이에 실린 에세이에서는 저자가 처음 클래식 음악과 사랑에 빠졌던 순간, 무작정 연주회에 찾아갔던 일화, 음악 동호회의 첫 오프라인 만남 등 조금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접어야했던 저자가 PD가 되어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순간을 회고하는 글을 읽으면서는 뭉클함이 일기도 했다.



저자는 ‘음악이 주는 감동은 지식과 상관없이 다가온다‘고 말한다. 벼락에 맞은 것처럼 음악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고. 사람은 정말 무언가와 대책없이 사랑에 빠져버리면 매 순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음악을 향한 저자의 사랑 고백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진실하면서도 깊이있다. 아마 이 책을 읽다보면 ‘대체 어떤 음악이길래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하며 QR코드를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나처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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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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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 러시아 현대문학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특히나 러시아 여성 작가의 작품은 더더욱. 잔 출판사에서 나온 이번 책은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중단편 다섯 편이 실린 선집이다. 모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각 작품의 배경은 극도로 사실적인데, 가부장제의 관습과 고정된 성역할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여성들은 꼿꼿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이들은 페미니즘이 태동하기 이전이지만 이미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강인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이들이다. (책을 읽는 내내 체호프와 박완서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가난과 배신을 비롯한 온갖 삶의 풍파가 몰아닥칠 때 그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고 비틀거릴지언정 끝내 버티어 서는 사람이 있다면 토카레바의 작품들 속 여성들은 후자다. ‘티끌 같은 나‘에서의 안젤라는 가수의 꿈을 안고 모스크바로 향하지만 인맥과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그녀에게는 스폰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젤라는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며 끝까지 투쟁하는 사람이다. ‘이유‘에서의 마리나 또한 남편과 애인의 배신을 비롯해 온갖 고난을 겪지만 살아남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지독하지만 이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사랑. 사랑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특히 ‘진정한 사랑은 뇌리속에 영원히 남는 법‘ 혹은 ‘잘 갈아놓은 밭같은 마음이야말로 사랑‘ 같은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들이 삶을 버티어내는 동력일지도 모르겠다.



담대한 여성 주인공들을 따라가며 벅찬 마음으로 읽었다. 이런 소설들이라면 몇 번이고 계속해서 읽고 싶다. 찾아보니 토카레바의 작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던데 언제쯤 또 만나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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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도르래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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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지만 자금난으로 미스테리 전문 서점에서 3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주인공 하무라 아키라. <녹슨 도르래>는 40대의 여성이자 탐정인 하무라가 노부인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시작된다. 언제나 그랬듯 착수금 때문에 조사에 응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복잡한 가족사에 휘말려버린 그녀. 하무라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꼼짝없이 사건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장편 미스테리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초반에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던 사건이 점차 하나씩 해결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노부인을 조사하던 탐정 하무라는 의도치않게 그녀의 대변인을 맡게 되고, 몇 달 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히로토와 그의 할머니 마쓰에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 가족에게는 복잡한 가정사가 숨겨져 있었고, 하무라가 이를 파악해내려는 찰나 집에 불이 난다. 이후 히로토 가족을 둘러싼 겹겹의 미스테리가 점차 밝혀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프로페셔널한 탐정 하무라의 모습이다. 하무라 탐정 시리즈는 일상 속 미스테리를 다루는 ‘코지 미스터리‘지만, <녹슨 도르래>에서만큼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하드보일드‘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하무라는 히로토 가족에게 들이닥친 비극들을 가까이에서 함께 겪으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친 몸을 이끌면서도 혼자서 묵묵히 사건을 해결하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집주인에게 쫓겨나 서점 2층에서 잠들게 되더라도 탐정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었다.



<녹슨 도르래>는 시리즈 중 한 권이기는 하지만 책 초반에 주요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어 단독으로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한 권의 잘 짜여진 미스테리 소설. 앞서 읽었던 <조용한 무더위>와는 사뭇 다른 결의 작품이라 연달아 읽었는데도 새롭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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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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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다독임>. 다독임이라는 말에 한참을 멈춰있었다. 표지에 실린 사진 속 곰인형을 보고는 사촌동생의 동그라미 인형 솜사탕이 생각났다. 사촌동생과 나는 기운이 빠질 때마다 ‘솜사탕 파워‘가 필요하다며 저녁 내내 솜사탕을 꼭 껴안고 있고는 했다. 내가 평소보다 힘들어하는 날에는 사촌동생이 나에게 살금살금 다가와 솜사탕을 안겨주기도 했다. 포근함, 어린아이, 인형, 천진함, 다정함, 그리고 <다독임>.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의 다정함에 큰 위로를 받았다. 이는 바로 문장의 결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었는데, 실상 문장은 쓰는 이의 마음을 드러내므로 나는 시인의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셈이다. 글의 주요 소재는 시인이 일상속에서 귀기울여 관찰한 것들과 경험한 것들로, 그는 자신의 깨달음과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예술작품을 멋들어지게 열거하거나, 온갖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시인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쓰여진 글들이라 더욱 좋았다. ‘말‘짓기와 ‘태도‘짓기에 집중한 글들이라서 더더욱!



나는 122페이지의 여백에 ‘이 책은 따뜻한 봄날의 오후 2시의 햇살같다‘고 적었다. ‘무뎌지지 않는 새로운 일상, 오은의 글‘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아주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 것,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놓는 것, 그리하여 세상만사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 -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이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독임과 다정함이 필요한 이들, 햇살의 따뜻함이 필요한 이들, 일상 속 새로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독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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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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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 미스터리. 미스터리의 서브 장르 중 하나로 ‘폭력 행위가 비교적 적으며, 끝 맛도 깔끔한 미스터리‘다. 스릴러나 하드보일드와는 다르게 일상적이고 낙관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 작품을 연달아 만나게 되어 피곤하던 중, 정신적 피로도 없이 즐겁게 읽었던 코지 미스터리 한 권. 와카타케 나나미의 <조용한 무더위>.



미스터리 전문 서점인 ‘살인곰 서점‘의 파트타이머인 하무라 아키라의 원래 직업은 탐정이다. <조용한 무더위>는 7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하무라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맡아 조사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일단 하무라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인데, 탐정 일로 의뢰가 들어오면 심드렁하다가도 수사금에 눈을 번쩍 뜨며 착수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폼생폼사 하지 않는, 정말 일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랄까. 툴툴거리면서도 서점 일이든 탐정 일이든 막상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멋있고!



일단 간결하게 나누어진 여섯 챕터 아래 여섯 사건이 어떻게든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라 속시원했다. 복잡하게 꼬여서 예측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물도 좋지만 일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이 하나씩 마무리되는 과정을 읽는 것도 통쾌하다.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은 ‘10월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였다. 낡은 집을 구매해 직접 거주하며 리모델링을 한 뒤 다시 판매하는 직업이 등장하는 것도 신기했고 사건의 해결 방식도 천연덕스러워 기억에 남는다.



찾아보니 지금까지 출간된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는 총 8권. 그중 3권만이 번역되어 있다. (초기작 두 편은 번역되었으나 절판.) 시리즈는 한 번에 달려야 하는데!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은 책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번역 출간된 <녹슨 도르래>도 바로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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