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니 하루에 한개씩 진도를 나간다.  어젠 잘 친다고 6번,7번을 쳤다. 진도가 빨리 나가니 좋긴 한데. 조금은 미심쩍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10분이 채 안되는 선생님과의 대면시간.. 차라리 어렸을때 이건 몇번씩 치고 저건 몇번씩 치라고 얘기해주던 그때의 방식이 더 성의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도대체 셈여림은 왜 신경을 안 써주는 걸까...

요즘 느끼는건데 오른손의 빠르기에 왼손의 손놀림이 턱없이 못 따라간다. 체르니랑 소나티네랑 둘다 무지 잽싸게 쳐야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트릴같은거 나와도 내가 봐도 너무 웃긴 왼손과 오른손의 부조화..선생님한테 얘기했더니 자꾸 하다보면 된단다..나름 열의를 가지고 왼손연습 체르니교본을 샀는데.. 조금씩 연습해봐야겠다..   어제 학원에서 왠 어린친구가 아주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길래 스리슬쩍 옆에가서 이것저것 신상에 대해 물었다. 14살이고 체르니40번 13번 친단다. 바하인벤션인가 ..나를 유혹한 곡이었다(좀전에 알라딘 검색해보니 나오긴한데 설명이 너무 부족해서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된다...).  그 친군 6살때부터 피아노 쳤다던데... 그 장대한 세월의 결과가 조금은 놀라웠다. 사실은 "겨우 거기까지밖에??"..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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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보았지요



언젠가 산길을 걷다가
바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 그 자체로서 그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길섶에 우뚝 선 나뭇잎이 살랑대거나
목이 긴 원추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통해 비로소 바람을
보았던 것이지요. 땀으로 젖은 내 살갗에 바람이
닿았을 때 이윽고 그가 바람이 되었듯이 사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이외의 또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그제야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겠지요.


- 이지누의《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중에서-


* 사람도 바람입니다.
때론 솜털처럼, 때론 태풍처럼 불어와
살갗을 건들고 마음을 흔드는 당신이 나의 바람입니다.
당신을 통해 사랑을 배웠고 아픔과 그리움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불어와 비로소 내가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무시로 나를 흔들어 떨게 하는
모진 마력의 바람입니다.

묵은 메일을 정리하다  예전에 그림이 너무 좋아 안 지우고 보관하고 있던 고도원의 편지를 보았다.

파란 하늘과 끝간데없이 우뚝 솟아있는 나무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있는 파랗다 못해 시퍼런 그림..

작년 5월6일 .. 문득 아련해지는 그때 당시의 그 느낌과 내가 처해있던 상황들이 떠오른다.

1년이 훌쩍지난 2006년 8월23일 오늘은.... 처서란다..

 

올해 여름은 왜 이다지도 길게만 느껴졌는지..

여름이 이렇게 힘겹게 느껴지는것도 첨 일이었던것 같다..

서늘한 가을 바람을 타고 내 마음도 다시 초연해졌음 하는 소망 하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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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에는 등산장비를 손질하고 갈무리해야 다음 산행에서 장비가 본래 기능을 다해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산행 후에 배낭을 완전히 뒤집는 습관을 기르면 좋다. 배낭에 넣어갔던 장비를 모두 꺼내라는 말인데, 그래야 장비들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고 배낭 자체도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 다음 산행 때 필요 없는 장비를 가져가는 일도 없어지게 된다. 상한 비상식량을 몇 달째 그대로 메고 다니거나 철지난 여벌옷을 사시사철 거머쥐고 다니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배낭의 점검에서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멜빵끈의 박음질 상태다. 산행 중에 끈이 떨어지면 낭패이므로 조그만 이상이 발견되더라도 구둣방에서 수선해야 한다. 흙 등으로 더러워진 부분은 마른 다음 솔로 털고, 그래도 닦이지 않으면 물을 묻혀 솔질을 한다.



등산화는 빨수록 방수 성능이 나빠진다. 가죽으로 만든 등산화뿐만 아니라 천으로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산행 후에 창과 고무 부분은 물걸레나 솔로 닦고 가죽은 마른걸레나 솔로 문지른다. 깔창은 자주 빨고 어느 정도 지나면 새 것으로 바꾼다.



비에 등산화가 흠뻑 젖었을 때는 뒷손질을 잘해야 하는데, 일단 젖었으므로 이때가 빨 기회이기도 하다.

젖은 등산화는 그늘에서 말려야 창이 휘지 않는다. 손질이 끝난 등산화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한다.



장비를 정리하기 위해서 방 한쪽 벽에 장비걸이를 만들면 좋다. 등산장비점에서 장비를 진열하는 데 쓰는 것 같은 장비걸이라면 아주 좋다. 걸이마다 장비의 이름을 붙여두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등산장비의 소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장비걸이를 만들 여건이 안되면 조그만 장비함을 마련해도 된다. 이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손질이 끝난 배낭에 방풍비옷, 머리전등, 물통 등의 필수장비를 넣은 채로 보관한다.



산행 중에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장비가 있다면 수리해야 한다.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을 산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자신에게 알맞은 장비를 하나씩 늘려 가는 일은 등산인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장비 손질과 함께 산행 후에 꼭 해야 할 일은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등산인들은 이에 대해서 너무 인색한 것 같다. “그 산을 이미 다녀왔어!” 하고 자랑삼아 말하면서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없기 때문에 다음에 정보로써 활용하지 못한다.



기록을 남기는 게 산행의 감흥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이고 그 산을 다시 찾을 때는 큰 도움이 됨을 기억하기 바란다. 산행기를 써서 등산잡지의 독자투고란에 기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산행은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독특한 체험이자 훌륭한 글감이므로 느낀 그대로 쓰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



산행수필을 쓰는 게 어려운 사람은 일정한 양식의 산행보고서를 작성하면 된다. 보고서에 포함해야 할 내용은 날짜, 날씨, 산 이름 및 코스, 등산로의 상태, 함께 간 사람, 구간별 산행시간, 교통편, 특이한 동식물이나 경관, 물을 구할 수 있는 곳, 그밖에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일 등이다. 산행 때 찍은 사진과 자료들을 함께 보관하면 더욱 좋다. 이런 일을 오래 하면 여러 산에 대한 정보가 쌓이게 되고 글 쓰는 데도 자연스레 자신이 생긴다.



주제가 있는 산행을 한 후에는 할 일이 더욱 많다. 장비를 정리하고 일반적인 산행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외에도 주제와 관련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꽃산행을 다녀온 사람을 예로 든다면 산에서 보았던 식물들을 식물도감을 뒤져서 다시 한번 익혀야 하고 식물을 보았던 장소와 이름들을 기록해 둬야 한다. 또 단풍촬영 산행을 다녀온 이들은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에 장소와 날짜를 바르게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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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학원 다닌지 오늘로써 5일째.. 이제 하루일과의 마지막은 피아노학원 다녀오기가 되었다..10살때, 11살때 다녔던 피아노학원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돌아가니. 거의 20여년이 다 되었다. 새롭게 만난 피아노 선생님은 59년생,피아노 학원을 경영한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59년생이면 쉰살쯤 되었나..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피아노도 가르치고 바이올린. 플룻도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 열정이 있는 분이신것 같다. 늦깍이 학생인 나는 요즘 체르니 30번, 하농. 소나티네, 소곡집 이렇게 배우고 있다.  아직 시작인데 욕심이 앞선 나머지 빨리 체르니 30번 다 쳤으면 좋겠단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근데 먼 옛날을 생각해봐도 체르니30번이 만만한게 아니었기 때문에 .. 숱한 고비를 넘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지겹고 아득한 시간들.. 으~...너무 많은 올림, 내림표에 어떻게 적응한담... 어렸을때는 멋 모르고 엄마 손에 이끌려 갔으니 그렇타치고 이번엔 내발로 걸어갔으니 한번 잘 해봐야 할터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겐 피아노 치기가 지겨워지면 위안 받을수 있는게 있다..어렸을떈 없었지만...지금은 있는것............바로바로  피아노의 숲과 노다메 칸타빌레.. 피아노 치기가 싫어지면  피아노는 잠시 접어두고 그들을 만나러 가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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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꽃 2006-08-2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사시나무야...열정을 가진 니가 부럽구나...
 
 전출처 : 기인 > [퍼온글] 무라카미 하루키

 

[조선인터뷰] "당신이 진정 구원 받으려면 홀로 어

둠의 끝까지 가 봐야"

아무도 모르게 한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젊음 비결은 넥타이·출퇴근·회의·상사없는것
일본적인 것? 그게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 조선일보와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쓰고 있는 하루키씨.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57)씨는 도쿄 중심 미나토구에 사무실을 갖고 있다. 26일 오전 11시, 덴마크하우스란 빌딩의 꼭대기층(6층)에 올라가니 가로 세로 1m쯤 되는 심플한 나무책상이 있었고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맞았다. TV 출연·신문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해온 그였다. 미국·유럽·아시아를 넘나들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소탈한 차림이었다. 그는 1979년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후 수십 권의 작품들이 31개국에 번역돼 있다. 국내에는 90년대 장편 ‘상실의 시대’로 이른바 하루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2006년 ‘도쿄기담집’에 이르기까지 80권의 책(중복출간 포함)이 나왔다. 다음달에는 장편 ‘국경의 남쪽’, 그리고 음악 에세이집 ‘의미가 없으면 스윙도 없다’가 출간될 예정이다.

―독자들은 왜 당신 작품을 좋아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난 쓰고 싶은 내용을 쓰고 싶은 대로 쓸 뿐이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 각지 독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중독’이라고 한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당신은 일본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당신은 일본적인 세계관에 근거한 작품을 쓴 적이 별로 없다.

“‘일본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그 이상 어떻게 하면 ‘일본적’이 되는 것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

―일본을 느끼게 한다기보다 보편적인, 국적 없는 현대인을 느끼게 한다고 할까.

“지난 월드컵을 보자. 한국·일본·브라질 같은 각 팀은 전략·스타일이 다 달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골을 넣는 것이다. 나에게 골은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的)’, ‘~적(的)’ 하는 것은 의미 없다.”

―한국의 최대 인터넷 서점인 ‘예스 24’가 금년 여름 휴가를 앞두고 설문조사를 했다. ‘여름휴가 때 추천하고 싶은 책’ 1위로 당신의 ‘해변의 카프카’가 꼽혔다. 당신 작품들은 감성에 바탕을 둔 인생담론과 서정이 넘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레이먼드 챈들러, 혹은 폴 오스터 같은 다소 하드보일드한 리얼리즘 쪽 작가를 칭찬한다. 이 격차는 왜 생기는가.

“독서는 독서고, 집필은 집필이다. 두 가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배워왔다.”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당신은 소외된 현대의 군상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고독과 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테마로 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혹시 비관적 허무주의가 문학적 형상화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다. ‘허무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척 놀라곤 한다. 내 소설의 주인공 대부분은 혼란이나 고독, 상실을 헤쳐가고 있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그들이 구원받는 광경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이루는 광경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홀로 어둠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게임의 룰이다.”

―당신은 이번 인터뷰에 응하면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조건을 달았다. 왜 그랬는가.

“조건이 아니라 희망이었다.(웃음) 사실은 옛날에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이 곤란한 문제가 됐다. 물론 나는 정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생목소리를 내기보다 소설 속에 넣어서 쓰고자 한다.”

―당신은 정치적으로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나는 리버럴리스트다. 진보주의를 신봉한다.”

―왜 그런가.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왔다. 정치뿐 아니라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의 사회현상이 우익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때로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보수다 진보다 갈등이 있지 않은가?”

―보수 대 진보, 그리고 자유를 현실 정치에서 인식하는 상황이 일본과는 많이 다르지만, 물론 갈등은 있다.

“일본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고, 내가 비판의 표적이 됐던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가능하면 물러서 있다.”

―당신 작품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술 냄새가 피어오른다. 비법을 조금만 공개해달라.

“노하우는 없다. 다만 내가 맥주를 묘사할 때, 나는 독자들이 ‘아, 맥주 마시고 싶어’라고 생각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뿐이다.”

―와세다 대학을 1968년에 졸업한 후 당신은 재즈 바 ‘피터 캣’을 경영했다. 문학과 재즈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 〈조선일보와 독자 여러분을 위하여〉
한국의 독자 여러분이 제 책을 열심히 읽어 주시는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설을 즐겁게 기다려 주십시오.

(무라카미 하루키. 2006년 7월 26일)
“나는 레코드를 1만 장 정도 샀고 현재 6천 장쯤 가지고 있다. 나는 소설 쓰는 법의 상당 부분을 재즈에서 배웠다. 리듬, 하모니, 즉흥성에서 공통점이 많다.”

―한국의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가 월간 ‘현대문학’ 6월호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쓰여진, 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고….

“그 소설이 ‘읽기 쉽게 쓰여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저 ‘읽기 쉽게 쓰여 있는’ 것을 혐오하는 비평가는 세상에 많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읽기도 쉽고, 내용도 깊이 있는 소설’이다. 반대로 가장 싫은 것은 ‘읽기도 어렵고 내용도 빈약한 소설’이다.”

―당신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글도 많은가.

“일본에서는 그런 비평은 산처럼 쌓여 있다. 몇 년 전 독일 TV에는 독자토론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국경의 남쪽’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중 너무 뜨거워져 싸움이 났고,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웃음)”

―당신은 남성들에게 주부로 살아보는 경험을 옹호하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왜 그런가.

“나도 실제로 가정주부처럼 지낸 적이 있다. 꽤 좋은 공부가 됐다. 요리·청소·빨래 같은 현실 생활에서 자립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라톤 대회에 왜 자주 나가는가.

“나는 풀 코스 마라톤을 26번 완주했다. 보스턴 마라톤에만 7번 나갔다. 100킬로미터 마라톤에도 참가했으며, 철인3종 경기에도 몇 번 나갔다. 모두 신체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래야 집중력과 지속력을 높일 수 있고, 보다 우수하고 장대한 소설을 쓸 수 있다. 물론 경기 후에 마시는 한잔 맥주가 맛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심플한 차림인가.

“보통은 반바지를 입는 때도 많다. 오늘은 중요한 인터뷰가 있기 때문에 긴바지를 입었다. 내가 넥타이를 매는 건 1년에 2번 정도다. 내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4가지 말할 수 있다. 넥타이를 안 매는 것, 출퇴근이 없는 것, 회의(會議)가 없는 것, 상사가 없는 것.”

▲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도쿄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사진 찍는 일은 언제나 쑥스럽고 어색하다고 했다. /도쿄=김광일기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레코드 6000장… 한때 재즈바도 운영해

마라톤 26회 완주… 1년중 넉달 해외여행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인터뷰 요청에 쉽게 대답 못했습니다.”

응접실에 들어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단단하면서도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그는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오늘날 세계인이 공감하는 보편성과 감성을 가진 작가가 되고자 미리 작정이라도 하듯 젊은 날을 살아왔다. 효고현에서 출생한 그는 중학교 때 러시아 문학과 재즈에 심취했고, 고등학교 때는 미국 소설 원서를 끼고 살았으며, 와세대 대학에는 연극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피터 캣’이라는 재즈 바를 운영하며 음악과 사람 보는 법을 공부했다.

그는 마라톤과 재즈에서 프로 뺨치는 수준이고, 위스키와 요리에 대해서도 책을 낸 바 있다. 틈이 나면 미국 현대문학에 대한 번역도 열심이다. 1년 중 3분의 1 정도는 해외 여행을 다닌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집필을 멈추지 않고 전방위적 장르에 왕성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에 대한 번역과 비평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하버드대의 제이 루빈 교수는 하루키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버렸을 정도다. 아사히 신문은 새 밀레니엄을 맞으며 지난 천년 동안 가장 탁월한 문인을 묻는 여론조사를 했는데, 하루키씨는 살아 있는 작가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35년 전 대학 때 만난 현 부인과 결혼했다. 아이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꼭 가보고 싶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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