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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허윤희기자]

겨울 히말라야의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져 선배의 자일에 매달려 목숨을 구했던 산사나이. 5일간의 조난 끝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대가로 손가락 9개와 발가락 10개를 잃어 2급 장애인이 된 대학생.

작년 1월 히말라야의 ‘촐라체봉’에서 기적의 생환기를 쓴 최강식(26·경상대 체육교육과 4년)씨〈본지 2005년 2월 17일 A1·3면 보도〉가 두 번째 인생 등정(登頂)에 성공했다. 최씨는 지난 16일 치러진 제23대 경상대 총학생회선거에서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운동권인 상대 후보를 무려 2200여 표차로 거뜬히 제쳤다.

“아, 예~ 학교가 이대로는 안 되겠더라고예. 대학에 낭만이 없어서 말이야. 방황하는 후배들을 위해 뭐라도 남겨주고 싶어서 결정했심더.”

17일 최씨의 전화는 내내 통화중이었다. 어렵게 성공한 통화,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그가 쾌활하게 내뱉는다. “지금까지 총학들은 다 못 쓰겠더라고예. 만날 시사 문제나 신경 쓰고, 사회운동만 했잖아요. 학생회가 너무 정치색을 띠니까 학우들이 점점 등을 돌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가 이끈 선거본부의 이름은 ‘꿈을 드림’. 선거 유세도 랩으로 했다. “아, 인기 좋았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린! 기호! 2번!입니다!’ 뭐 이렇게 했어요. 하하.”

최씨는 98년 경상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2001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전역한 뒤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 인도 가르왈히말 탐사대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지리산 등산학교 강사를 하며 산악인의 꿈을 키웠다. 2003년 체육교육과로 전과한 후 경상대 산악회 회장을 역임하고 2004년 로체(8516m)와 가셔브롬(8035m) 남동릉을 잇달아 등정했다.



그의 인생은 2005년 1월 바뀌었다. 선배 산악인 박정헌(35)씨와 함께 히말라야 촐라체(해발 6440m) 북벽을 정복하고 하산하던 중이었다. 촐라체봉 정상을 떠난 지 4시간30분 만에 발을 헛디뎌 크레바스에 빠졌고 20m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자일로 최씨와 연결돼 있던 박씨도 낭떠러지까지 빠른 속도로 끌려갔다. 온몸을 조여 오는 자일에 박씨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박씨는 끝까지 자일을 놓지 않았고 둘은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다. 최씨는 등강기(올라갈 때 이용하는 등반 장비)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수렁에서 빠져나왔고, 둘은 5시간 만에 아무도 없는 산속 오두막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흘간 강추위를 참아내며 버티다 현지인들에게 발견돼 극적으로 구조됐다. 치명적인 동상으로 최씨는 왼손 엄지손가락을 빼곤 19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었고, 박씨는 10개의 발가락과 8개의 손가락을 잃었다.



산에 미친 산악인에게 바위를 움켜잡는 손마디는 얼마나 중요한가. 그 손마디를 잃고, 발가락을 잃어 걷는 게 힘든 데 그는 “사고 이후에 인생이 해피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농담 아니라니까예. 죽지 않고 살았다는 그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재밌게 삽니다. 진짜로 절망이 아니고 해피로 바뀌었다니까요. 악몽 한번 꾼 적이 없심다.” 다만 축구 못하고, 배구 못하는 게 좀 불편할 뿐이란다.

호리병 같은 크레바스에 빠져 올려다본 하늘은 그의 인생관도 바꿔 놓았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자.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더 이상 전문 산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산을 사랑한다. 예전보다는 빨리 피로해지고 자주 쉬어야 하지만, “편안하니까” 산을 계속 찾는다. “산에 오르면 신경 쓸 일이 없고 재밌어요. 요즘에도 배낭 쌀 때마다 행복합니다.”

한 손가락의 사나이는 남은 왼손 엄지에 감사한다. “못하는 게 없어요. 문자도 보내고 젓가락질도 할 수 있고,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도 할 수 있어요. 특히 소주잔과 맥주잔도 들 수 있어 사람들과 술 한잔 하는 것도 문제 없죠.”

그의 총학생회장 선거는 쉽지 않았다. “발가락이 없어 많이 걷지를 못하니까 하루에 수십 곳의 강의실을 돌고 나면 녹초가 됐지요.” 주변에서도 반대했다. “몸도 성치 않은 놈이 뭐하러 그런 일 하려고 하느냐”는 부모님과 여자친구를 “그래도 할랍니다”라고 고집을 부려 설득했다.

그는 인간미가 묻어나는 학생회장이 되겠다고 했다. 대학 내 열린음악회 개최, 체육시설 확충, 대학 인근 거리 물가 낮추기, 장애우시설 확충, 도우미운영과 학점인정, 취업박람회 개최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하나씩 실천할 계획이다. 쾌활한 음성 뒤에 문득 깊은 슬픔이 배어있지 않나 의심하는 기자에게 그가 한마디 더 했다. “산악인 꿈은 포기했지만, 장애인 산악인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인생에 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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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의 발행인 겸 편집인인 안건모 씨가 버스운전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냈다. 안건모 씨는 20년동안 버스를 운전했던 베테랑 기사. 책 제목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이다.

그는 이책을 내기 전까지 <시내버스 정년까지>라는 글을 써 1997년 전태일문학상 생활글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며, 1998년부터는 버스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서 '버스일터'라는 소식지를 내기도 했다. 그 뒤부터 그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버스 운전하는 안건모 편집장 ⓒ민중의소리



안건모 씨는 초등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의 전부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또래 친구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고입 검정고시를 치루고 공고에 입학했지만, 극심한 생활고로 2학년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신문배달, 공사장 인부, 미장공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 버스 기사로 취직해 20년동안 아스팔트를 누볐다. 그리고 현재 그는 노동현장을 벗어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쓰며 월간 작은책을 발행하고 있다.

저자 안건모 씨는 "살아온 이야기와 일터 이야기를 쓰면서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면서 "어렵게 살아 왔던 지난 이야기들을 풀어냈고 일하면서, 사업주와 관리자들이 탄압하는 그 유치한 행태를 마음껏 비꼬면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안 씨는 "그 동안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주눅들고 억눌렸는데, 그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 노동자가 이 세상 주인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면서 "이 책이 우리 버스 기사들의 일터 이야기만 보여 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일하는 현장을 올바르게 배우고, 일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주인이라는 걸 깨닫는 그런 책이 된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안 씨는 "이 책을 읽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을 얻어 쉬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살리면서 글을 많이 쓰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고 당부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씨는 "안건모 씨의 글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은 개인적인 도량의 크기 때문이라기보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숨쉬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조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그이가 쓴 글은 때로는 정감 어린 수다로, 때로는 농담 섞인 푸념으로 우리들의 옆구리를 지그시 찌를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안건모 씨와 친분이 있는 일본 도쿄 시내버스 운전자 미야우치 마사요시도 "안건모 씨의 글은 직장에서 보게 되는 일들을 단순히 묘사하고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자신들, 곧 노동자라는 신념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일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와 사람을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책에는 1996년부터 안건모 씨가 썼던 글과 함께 미발표작 생활글들이 수록돼 있다.

구입문의 : 보리출판사 (031)955-3535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의 발행인 겸 편집인인 안건모 씨가 버스운전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냈다. 안건모 씨는 20년동안 버스를 운전했던 베테랑 기사. 책 제목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이다.

그는 이책을 내기 전까지 <시내버스 정년까지>라는 글을 써 1997년 전태일문학상 생활글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며, 1998년부터는 버스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서 '버스일터'라는 소식지를 내기도 했다. 그 뒤부터 그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버스 운전하는 안건모 편집장 ⓒ민중의소리



안건모 씨는 초등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의 전부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또래 친구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고입 검정고시를 치루고 공고에 입학했지만, 극심한 생활고로 2학년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신문배달, 공사장 인부, 미장공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 버스 기사로 취직해 20년동안 아스팔트를 누볐다. 그리고 현재 그는 노동현장을 벗어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쓰며 월간 작은책을 발행하고 있다.

저자 안건모 씨는 "살아온 이야기와 일터 이야기를 쓰면서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면서 "어렵게 살아 왔던 지난 이야기들을 풀어냈고 일하면서, 사업주와 관리자들이 탄압하는 그 유치한 행태를 마음껏 비꼬면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안 씨는 "그 동안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주눅들고 억눌렸는데, 그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 노동자가 이 세상 주인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면서 "이 책이 우리 버스 기사들의 일터 이야기만 보여 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일하는 현장을 올바르게 배우고, 일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주인이라는 걸 깨닫는 그런 책이 된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안 씨는 "이 책을 읽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을 얻어 쉬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살리면서 글을 많이 쓰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고 당부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씨는 "안건모 씨의 글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은 개인적인 도량의 크기 때문이라기보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숨쉬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조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그이가 쓴 글은 때로는 정감 어린 수다로, 때로는 농담 섞인 푸념으로 우리들의 옆구리를 지그시 찌를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안건모 씨와 친분이 있는 일본 도쿄 시내버스 운전자 미야우치 마사요시도 "안건모 씨의 글은 직장에서 보게 되는 일들을 단순히 묘사하고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자신들, 곧 노동자라는 신념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일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와 사람을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책에는 1996년부터 안건모 씨가 썼던 글과 함께 미발표작 생활글들이 수록돼 있다.
 
 
이 기사를 보고 월간 "작은책"  홈피를 찾아가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단돈 2500원 이다. 2500원이면 스타벅스 커피 한잔도 사 먹지 못하는 아주 작은 돈이지만,
예전에 작은책 읽으면서 느꼈던 소소한 기쁨들은 그 돈에 비길바가 아닌것 같다.
정기물 한권 보고 싶었었는데 왜 작은책을 기억해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한때 참 열심히 봤었는데.. 그러고 보니 한때 내가 열광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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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기자단]"뱃 속 아기가 저의 진정성을 말해줍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거주하는 최선(33) 씨는 임신 8개월째에 접어든 임산부이다. 다른 이들은 한창 태교에만 신경 쓸 시기지만 그에게 있어 여유로운 태교는 꿈만 같은 이야기.

최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명함을 돌린다. 때로는 사람들을 향해 확성기를 부여잡고 일장 연설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이번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구 의원(민주노동당, 강북구 다선거구) 후보다.

지난 20일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선거사무실을 찾아 산모복을 입고 유세 활동에 바쁜 최 후보를 만났다.

임신 중 출마한 이유를 묻는 첫 질문에 그는 대뜸 “정면 돌파를 위해서”라고 답한다. 작년 9월 수유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명 ‘꿀꿀이죽 사건’ 이 터진 후부터 '보육조례 개정운동'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출산을 장려하는 국가가 정작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얼마나 무관심 한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최 후보가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한 것도 이 무렵. 그러나 작년 말 첫 아이를 갖게 되자 고민에 빠진다. “임신 전 운동에 참여 할 때는 관찰자의 입장이었지만 아이를 갖게 되자 문제의식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통해 저의 주장에 진실성이 실리게 된 상황에서 출마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면 돌파한다는 심정이었죠.”

산모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마선언에 대해 가족의 반대는 없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친구였던 남편은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고 시부모님의 경우도 선거 출마를 ‘직업의 하나’로 인정해 주었다. 친정어머니는 학창시절부터 언제나 든든한 그의 후원자였다. "현재 유세차량으로 쓰고 있는 트럭도 시아버지께서 빌려주신 것”이라고 그가 귀뜸 한다.

“유권자 한명 한명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유세활동을 위해 하루 6시간의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산모의 몸으로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갈수록 몸이 무거워져 매일같이 나가던 새벽 유세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줄였다고 한다.“힘들다고 느껴지면 주변 미용실 등을 찾아가 무조건 앉습니다. 물 한잔 얻어 마시고 나면 또 힘이 나지요.”

만삭의 몸으로 유세현장을 누비는 그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아기나 잘 키울 것이지’라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는 반면 또래 여성들은 ‘용감하다’며 많은 격려를 보내준다. “여성 총리도 탄생했지만 사람들은 가까운 생활 속에서의 여성 정치인은 본적이 없었죠. 여성들은 임신이라는 똑같은 경험을 겪은 선배로서 저의 말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줍니다.”

'천 기저귀 무상 대여, 세탁, 배달 제도’는 임산부 후보인 그가 자신 있게 제시하는 공약 중 하나. 원하는 부모에게 천 기저귀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노인 및 저소득 층을 고용해 세탁 및 배달을 맡김으로써 유아건강, 보육지원, 환경보호,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동시에 달성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후보자에게 당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선 후일 터. 당선 될 경우 의정 활동 중 출산으로 인해 찾아 올 공백기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의정 활동에 있어서 단순히 ‘오랜 시간을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예산을 얼마나 꼼꼼하게 쓸 것인가’에 대한 마인드입니다. 당당히 유급휴가를 요구할 겁니다. 제가 주장하는 모성보호의 기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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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신기한 듯 한참을 들여다보던 참이다.

나이는 12세이지만 기훈이의 정신연령은 6세이다.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데다 간질 증세도 있어 병원에 실려갈 때도 있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의 이 아이는 수업을 따라가기는커녕 정상적으로 교실에 앉아 있기도 어렵다. 하지만 올해 기훈이는 달라졌다. 난생 처음 학급회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30명을 이끄는 것도 그의 몫이다. 친구들은 “표를 얼마나 많이 얻었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잘해요”라며 기훈이를 치켜세운다.

담임인 정송자(鄭松子·45) 교사는 당시를 돌이키며 “장애아를 회장으로 뽑기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장난을 하는 건가, 제가 기훈이를 많이 챙기니까 괜히 반항하는 건가 싶었죠. 아이들이 ‘우리가 잘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정 교사가 기훈이를 맡게 된 올 3월. 첫 시간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이론과 실제사례 등을 엮은 장애통합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가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친구를 때리는 기훈이의 행동에 놀라는 학생들이 이해심을 갖도록 수시로 다독였다. 장애를 가졌던 위인(偉人)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토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정 교사 스스로는 ‘학기 시작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발작도 잦아진다’는 기훈이 부모의 말을 듣고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 학교로 데려오는 일을 한 달간 했다. 수업시간에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바로 옆에 앉혀놓고 손을 놓지 않으며 강의를 했다. 기훈이만 덧셈·뺄셈·문장 베껴쓰기 정도의 단순 특수학습을 시키는 것은 물론, 음악·미술·체육시간에도 특별한 프로그램을 필요로 했다.

가끔 과격한 행동을 할 때는 껴안고 달래느라 녹초가 되기도 했다. 며칠 만에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작전’을 짠 것이다.



기훈이의 발작은 3월에 네 번, 4월에 두 번으로 줄었다. 5월에는 한 번도 없었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정 교사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다. “특수학생만 가르치는 것보다 일반 학생들과 함께 가르치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자칫 다른 아이들을 ‘들러리’로 만들 수가 있거든요. 누가 다른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공존(共存)할 수 있게 하려면, 모두에게 더 신경을 써줘야죠. 이젠 부모님들도 우리 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세요.”

교직 경력 25년인 정 교사는 지난 2000년 야간대학원에 2년 반을 다니며 특수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바 있다. 정 교사는 “장애아가 부모를 가려 태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사들도 수많은 단계의 장애아를 만나게 된다”며 “제대로 공부해야 장애아와 비장애아 모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하는 데 편하다’며 거의 매일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하는 정송자 교사는 “요즘 똑똑한 젊은이들이 교직을 많이 택한다는데 교사를 ‘안정적으로 월급 받는 직장인’쯤으로 생각한다는 게 섭섭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지식을 가르치는 일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아이들에 대한 절대적 애정과 헌신 같은 게 없다면, 해나갈 수 없는 일이죠.” 정 교사는 “나는 장애아를 돌보고 가르치느라 고생하는 세상의 수많은 선생님 중 하나일 뿐”이라며 “그 분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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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희귀병 어린이들의 소망이 적힌 희망깃발을 품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했던 박영석 대장이 우리 시간으로 오늘(11일) 낮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저희 SBS는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의 모습을 인터넷 중계로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 >이 강 기자입니다.

> ><기자> 박영석 대장이 마침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희망 깃발을 펼쳤습니다.

>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오늘 낮 2시 50분. > >박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지난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희귀병 어린이 24명의 소원이 담긴 깃발을 간직한 채 정상을 향한 지 엿새만입니다.

> >북극과 남극 원정을 함께 했던 오희준 대원과 이형모 대원, 셰르파 4명이 박 대장의 희망 원정길을 함께 했습니다.

> >이들은 정상 부근에서 끊임없이 몰아치는 초속 20m 이상의 눈폭풍을 뚫고 매일 10시간 넘게 강행군을 계속했습니다.

> >[박영성/희망원정대장 : 네팔 시간 아침 9시에 출발해서 10시간 걸렸습니다.

지금 들어가서 (할 일이 많아) 아마 한잠도 못 잘 거예요.] 약속대로 희귀병 어린이들의 소망을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곳에 올려놓은 박영석 대장. > >하지만 박 대장의 가장 큰 도전은 이제부터입니다.

> >[박영성/희망원정대장 : (네팔 쪽으로 횡단을 감행하시겠습니까?) 네, 어려움이 있어도 가겠습니다.

] 최소한 이틀 이상은 해발 8000m를 넘는 정상 부근에서 비박을 해야 하는 위험한 하산길입니다.

> >박 대장의 횡단이 끝나는 예상 시점은 앞으로 일주일 뒤. > >성공하면 단일팀으로는 세계 최초로 성공하는 대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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