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과 일본어판입니다. 한국어판 표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상한론이라는 행서 폰트는 원서 표지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는 시도로군요. 전반적으로 약간 성의 없어 보이는 원서보다 오히려 한국어판 표지가 더 고급스럽습니다.)

 

일본 남산당에서 나온 모리 요시오 선생의 [상한론] 입문서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아, 물론 2011년 10월에 나왔으니 벌써 한참 되었지만, 요새 촉이 마이 무뎌져서 ...

 

책을 펼치자마자, 역자소개 난이 멋들어지게, 위풍당당하게 펼쳐집니다.

(보통은 책 제일 뒤에 다소곳하니 숨어있기 마련이죠.) 

유서 깊은 한의과대학의 원전학교실 교수님 세 분의 이름이 나란히 보입니다.

먼저 드는 생각은, 아니 이런 분들이 왜 이런 책을? 정도가 되겠는데 ...

이런 제 의구심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훌륭하신 교수님들의 이름 뒤로 한국 최고학부 및 대학원 등등을 나오시고 다시 의대를 졸업하신 뒤 한의학을 전공하고 계신 분의 성함이 나옵니다. 앞으로 한의계에서 주목해야 할 이름 석 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이 분께서 본서의 번역에 중책(?)을 맡지 않으셨나 짐작해 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각 조문에 대한 원문과 대략적인 번역, 그리고 해설 등이 있습니다. [상한론]의 입문적 해설서라면 결국 얼마나 조문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주느냐가 중요할텐데요, 이 해설 부분이 대부분의 경우 번역문을 그냥 다시 조금 더 풀어쓰는 수준입니다. 해설로서의 구실을 썩 잘 하지 못하는 감질맛 나는 해설입니다.

 

(아마도 일본어판 원서에는 한문 원문을 일본식 훈독으로 대체했었는데 한국어판에서 원문을 집어넣으면서, 일본식 훈독으로 처리한 원문을 한 번 더 번역하는 셈이 되어 원서에서 번역의 역할을 했을 해설 부분과 중복이 일어났을 겁니다.

일본어판 :  일본 전통식 훈독 - 해설

한국어판 :  원문(삽입) - 번역 - 해설

일본 서적의 번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죠.) 

 

뭐, 간혹 중요한 조문에서는 다른 의가들의 주석을 끌어와서 설명해주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많지는 않습니다. 깊이도 얕고요.

 

이 책의 특색이랄 수 있는 것이 증례 및 명의의 논설 부분일텐데, 각 조문 및 처방에 대한 일본 의가들의 관련 학설들 일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황한의학], [한방처방해설], [도설] 등등 비슷한 내용을 비슷한 형식으로, 더 자세하고 방대하게 소개한 책들이 이미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군데군데 보이는 그림들과 도표 등일텐데 ... 이런 부분이 썩 많지도 않고, 이것만 가지고 책을 사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이 책을 훑어보면서 두어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1. [상한론]이 한의과대학 정규수업 및 국가고시 과목에까지 포함되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몇 종의 교재와 수많은 자료물이 유통되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 어중간한 책의 포지션은 어떻게 될까? 교재를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굳이 교재를 놔두고 따로 입문서가 필요하다는 수요가 많지도 않겠지만,) 입문서 역할을 하기에도 솔직히 말해서 조금 부족합니다. 출판사는 저자 원고료와 기라성 같은 중진 교수 3인 및 복수전공자 1인을 포함한 엄청난 번역진에 대한 번역료, 제반 인쇄 비용 등을 투자하기 전에 본서에 대한 시장조사를 ... 설마 안 했나?

 

 

 

 

 

 

 

 

 

 

 

 

 

 

 

 

 

 

(과거에 많이 쓰이던 대표적인 교재 두 종과 국시 대비 교재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입문서, 해설서, 강론서들이 출판되어 나와 있습니다.

출판되지 않고 유통되는 자료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2. 출판사는 한의계 사정을 전혀 몰라서 그렇다 치고, 번역진들은 ... 

 

3.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얄팍한 분량의 현대 일본어로 된 저술의 번역에 뜬금없이 논문 쓰시랴, 비중 있는 원전 번역하시랴 눈코 뜰새없이 바쁘실 원전학 전공 교수님들께서 세 분 씩이나 ...

상한학계에서 원전학 교실이 활약하실 분야가 참 많은데, 말입니다. 20세기에 새로 발견된 굵직한 판본들의 분석, 기존 판본간의 비교 교감, [상한론문헌통고] 같이 문헌학적인 부분을 파고든 저술들도 있는데 ... 요새 말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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