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rror, the horror!

 

흔히 이 책은 실제로 기선의 선장으로 아프리카 콩고 강 유역을 거슬러 올라간 콘라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탈과 착취를 일삼고 있던 19세기 당시의 제국주의를 비판한 책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수용되고 있다. 뭐 발표되었을 당시에야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의 눈으로는 그다지 대단한 제국주의 비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에야 자신의 작품이 저항문학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대로 이해될 수 있었다는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말을 조심스레 참조하며, 일단 모든 형태의 단정을 피한 채로 이 작품을 해석하자.



소재의 면에서 이 작품은 말로가 상류의 주재소까지 배를 몰고 가 그곳의 커츠라는 사람을 찾아가고,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로는 어릴 때부터 알지 못할 매력을 느껴왔던 오지에 가보고자 그곳에서 무역업을 하는 상사에 선장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주재소에 도착한 그는 상류로 올라가면 빼어난 상아 수집 실적을 자랑하는 커츠라는 인물을 만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배가 상류의 주재소에 다가갈수록, 말로는 주재소나 상아와 같은 목적보다 커츠만이 자신의 항해의 목적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주재소에서도 그는 커츠가 죽기 직전 며칠간만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뿐이다. 수많은 기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만난 신화적 존재가, 주인공과의 짧은 해후만을 한 채 죽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 말로는 물론이거니와 커츠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소설을 읽어가던 독자에게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평상시에 말도 안 통하는 흑인 부족들도 따르게 하고 그 족장들마저 그 앞에서 설설 기게 만들었던 커츠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평소 천둥이나 번개처럼 원주민들의 위에 군림하며 상아를 긁어 모아왔던 커츠마저도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이지 않았을까. 커츠 자신은 심지어 원주민들의 사교(邪敎)의식에 참여하여 자신의 영혼을 맡기면서까지 모종의 것을 추구한다. 커츠가 추구했던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뭇 사람들을 휘어잡던 위대한 인간인 그 자신마저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로가 커츠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그 유명한 장면, 이 소설의 마지막 절정을 이루는 장면을 잠시 보자 : “마치 베일이 찢어지면서 어떤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The horror! the horror!>”



말로는 자신은 말할 수 없던 삶의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커츠의 모습, 그의 마지막 순간의 눈초리에서 모종의 깨달음, 곧 삶은 죽음과의 질 수 밖에 없는 다툼이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사실에 대한 정직한 직시를 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 말로에게 더 이상 세상은 이전에 보던 세상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일 어찌 될지도 모르는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면서 “서로의 돈을 훔치거나, 그 맛없기로 악명높은 음식을 삼키거나, 건강에 해로운 맥주를 꿀꺽꿀꺽 삼키거나” 하며 삶의 진정성을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그냥 낭비할 뿐이다. 이렇게 커츠의 죽음을 지켜본 말로에게 세상 사람들의 덧없고 의미없는 삶은 더욱 부각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마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검은 대륙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가면서 정신의 고양을 이끌어주는 한 인간을 만나고, 그의 죽음이란 절대적 사건을 겪으며 생의 비의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이기에, 마지막에 “명상에 잠긴 부처의 모습”으로 앉아 있는, 말로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이렇게, 마지막에 묘사된, 커츠가 본 ‘무서움’의 실체와, 그것을 겪은 말로의 모종의 깨달음에 무게 중심을 옮기면 『암흑의 핵심』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장님처럼 모순에 가득찬 존재인 인간이 그 자신의 무의식을 탐구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의식의 고양을 그리며, 그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묘사한 작품으로 파악하게 된다.

 

200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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