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동양 문명권에서, 문자로 남겨진 저작물 중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고,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은 수백, 수천, 심지어 수만번을, 외우다시피 했을 책이 아닐까. 

 

그런만큼 여러 학자들의 주석들이 남겨져 있고, 지금도 중량감 있는 전문서에서부터 가벼운 에세이까지, 관련서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논어의 경우 특히나, 이천오백여 년 전 중국 산동지방의 입말과 현대의 괴리에서 비롯된 구문상의 모호함으로 인해 해석상의 논란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 간혹은 본인이야말로 기존 학계의 오류를 광정하고 논어 해석의 새 지평을 열었노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저자가 있다.

 

이런 분들은 대개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고 재야에 은둔한 이인달사이거나 학자 중에서도 관련 전공이 아닌 경우로, 고리타분한 학계의 관행을 한바탕 성토한 뒤, 따라서(?) 관련 전공자는 아니지만(혹은 아니기에) 그간 이 분야를 고고히 정진한 자신이야말로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였노라는 레파토리를 읊어대는 분들이시다. 제목과 표지에서 뭔가 강력한 포스를 풍겨주시는 것은 필수. 때로는 죽이니 살리니 하는 살벌한 제목을 갖다 붙이시기도 하고.

 

그러면 또 이야깃거리만 찾아다니는 얄팍한 기자들은 이런 부류들은 꼭 빠지지 않고 기사화해주시고, 어리숙한 독자들은 대단한 신문에 기사로도 나오셨으니 뭔가 있나 보다 하고 사보고... (독자들의 인터넷 서평 문화가 발달하고 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든 요즘에는 이런 일이 많이 줄었지만.)

 

 

 

사실 처음에 [새번역 논어]라는 책을 보았을 때, 이 책도 그런 재야파인가 싶어서 슬쩍 훑어보고는 서재 한 켠에 밀쳐 놨었다. 주석이 상세한 것도 아니고, 해석도 내세우는 것처럼 딱히 새로운 면도 없는 것 같고... 최근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는데, 별 거 없으려니 하고 무심히 펼쳐 보았다가 책장을 덮을 때는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기존 해석과 자신의 해석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몇몇 단편의 해석이 상당히 참신한 면이 있었다. 계속 읽어나가니 그 참신함은 폭넓은 연구자료의 섭렵에 근거를 두고, 공자의 정신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 격조있는 참신함이었다. 우리의 성현께서도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 말씀하신 바 있지만, 저자는 폭넓은 학식과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罔'과 '殆'의 위험을 뛰어넘어 매우 독특한 색깔을 가지는 역작을 펴냈다. [논어의 발견]은 이런 옹골찬 논어 번역에 바탕을 둔 해설서이니만큼 어떤 논의가 펼쳐질지 기대된다(아직 안 읽어봤다).  

 

 

 

 

  

 

 

 

 

 

 

(양장본으로 구성된 번역서와 해설서가 버거울까 봐 휴대용도 나왔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번역서에서는 이런 심도있는 논의까지 다 커버하게 마련인데, 발간 당시 무명이었던(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저자가 굳이 번역서 따로, 해설서 따로 펴냈어야 했나 하는 점이다. 사실 이 책은 참신한 번역에 비해 그에 대한 보충설명이 너무 소략하다. 친절하게도 [논어의 발견]의 해당 섹션을 찾아보라는 안내는 있지만, 어지간한 애독자층이 아니고서는 해설서까지 사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만약 독자들이 한 권의 번역서에서 참신한 번역과, 여기에 대한 심도있는 해설까지 함께 접할 수 있었다면 독서 시장의 판도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999년도에 초판, 이후 십년만인 2009년에 개정판이 발행되었다가 현재 출판사의 사정으로 구하기 힘든 처지가 된 책이니 아마 다음번에는 출판사를 갈아타서 나오지 싶은데, 이런 부분도 고려해 주시길.

 

(그간 절판되어 아쉬웠는데 드디서 새로 개정판이 나왔다.

[논어의 발견]에 이어 [공자의 발견]이라는 신간까지 ...

[논어의 발견]은 그대로 두고, 새로 신간을 내는 쪽으로 했나보다.)

 

 

 

 

 

 

 

 

 

 

 

 

 

 

 

 

 

아무튼,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통쾌한 번역서 이후 오랜만에 보는 "진취적"인 저작이었다.

(참, 저자는 우리가 흔히 좋은 뜻으로 쓰는 '進取'라는 논어에서 유래된 단어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미야자키 선생도 그렇고, 이수태 선생도 그렇고, 역시 비전공자의 시각이 더 참신해버리는 이 사태를 어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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