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받아서 반사하기만 하는 달빛, 하지만 어두운 밤하늘에 홀로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달빛. 제목에서 대비적으로 암시되듯, 소설은 두 인물형을 대비시키며 진행된다. 이성, 과학, 성공 등의 밝음의 코드를 상징하는 고유진이라는 인물과, 그 인물과의 대조에 의해 더욱 찬연한 빛을 발하는 어둠 속의 인물 고웅진. 이 둘은 뼈대있는 경상도 양반가문의 종형제 지간이지만 수재 소리를 들으며 자라 미국에서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고유진에 비해, 같은 집안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으로 인생의 실패자요 망나니 취급이나 받는 고웅진. 하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면 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고 마는 것은 왜일까.

하나를 가지고 열을 어림하여 알아내는, 빼어나고 독특한 세계 인식을 하는 인물이자, 주위 사람들을 헤아리고 남몰래 보듬어줄 수 있는 웅숭깊은 심성을 지닌 '큰그릇' 웅진. 그가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며 빠지는 깊은 상처의 수렁, 마침내 긴 터널의 끝을 빠져나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 그 뒤 초야에 묻혀 무심히,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은은한 빛을 종용히 비추며 살아가는 모습은 며칠 동안 지울 수 없는 향기로 나를 지배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한 체험을 하리라 생각된다.

책의 강렬한 마력에서 약간은 빠져나와 생각해 보니 웅진의 모습은 바로 신화학에서의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지은이는 신화학에 조예가 깊은 바로 이윤기 선생이 아니던가. 출생에 얽힌 비밀(웅진의 생부는 건국 초기의 고위 장교로 제시된다), 빼어난 능력으로 비범함을 발휘하는 어린 시절, 운명적으로 맞이하는 시련과 고난의 세월, 마침내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 약간의 예외가 있다면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는 상궤를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과, 그리고 모진 운명과 화해하는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정도. 더구나 그 고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전설'(전설은 바로 영웅의 것이다)이 되어 버린 일화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가며 그 전설들의 실체를 한꺼풀 한꺼풀 벗겨나가는 형식도 형식이거니와 그러한 작업을 수행해 나아가는 작중 화자의 모습은 신화 속의 영웅의 실체를 찾아가는 신화학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2002-0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