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보급판 문고본, 양장본, 2001년에 나왔던 구판. 저렴하고 휴대하기 편한 문고본을 사도 무방하겠다.)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 선생의 [공자 노자 석가]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뭐 그렇고 그런 입문서려니"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넘어갔다. 한 학자의 TV 동양고전 강의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후끈 달아오른 시류를 타고 쏟아져 나온 책들 중의 한 권이겠지 한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이번 동아시아 출판사 이전에 [공자 노자 석가 한 자리에 하시다](민족사, 1991), [공자 노자 석가 삼성회담](늘푸른나무, 1991)이라는 제목으로 두 출판사에서 번역된 바 있다.) 하지만 꽤나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는 이 책의 저력을 보고는 약간의 압박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구한 이 책은 과연 잘 짜인 구성으로 세 성인의 회담장소를 정하는 문제에서부터 그들의 일생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세 성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독자를 빨아들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도 세 성인의 대표적인 사상을, 소크라테스 이래 가장 오래된 철학책 글쓰기였던 문답법을 사용하여 나 자신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 있게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책이 명저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다른 서평들에서도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 여기서는 약간의 불만사항만을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공자 노자 석가]란 책, 별거 아니쟎아?"라고 생각하시지는 말도록.

먼저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형식에서는 피할수 없는 문제일수도 있을 것인데, 대조적인 사상들의 비교에 치우쳐 정작 각 사상가에게 중요한 근본 사상에 대한 소개에 약간 미흡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즉, 석존에서는 공(空)을 이야기하고 공자에서는 천(天)을 이야기했으니 노자는 무(無)를 이야기하자, 는 식인데, 이런 무리한 대조를 하다보니 마치 천(天)이나 무(無)가 공자와 노자의 사상적 근간인 듯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자에서 무(無)를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낡은 노자관이 아닌가.

또 하나, 저자도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불교 사상에 대한 전반적 미흡함이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을 커버하고자 반야심경을 통채로 해석해주고 있지만, 과연 한 장을 따로 떼어내서 반야심경 해설만 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같진 않아 보인다. 비록 반야심경에 불교사상의 많은 부분이 녹아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게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것은 어찌 보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화사전]을 지은 모로하시 선생도 약한 부분이 있구나, 하는 후학으로서의 안심 내지 도전의식 같은 것 말이다. 하기야 흠 하나 없이 유불도를 다 소화한 책을 펴내었다면 얼마나 인간미가 떨어졌을 것이며, 후학들은 뭐하고 먹고 살겠는가.

그리고 간혹 질문 중에는 '꼭 이런 문제까지 걸고 넘어져야 되나'싶은 것들이나 진행에서의 매끄럽지 못함이 눈에 뜨인다. 예컨데 248쪽의 관중론에 대한 질문은, 물론 수천년간 많은 논란이 되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이 책에서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는 듯 하다.

끝으로 번역본을 낸 출판사에 바라고 싶은 것은, 글 속에 나오는 각 사상가의 글에 대해 단순히 출전만 밝히지 말고 원문도 옆날개에 병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어떻게 출전까지 밝히면서 원문을 안 적어 놓았을까. 조금만 더 신경쓰면 될 걸...

어찌되었건 동양의 3대 사상가들의 정수를 쉽게 추려놓은 이 책은 백수의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초학자에게는 너무나 좋은 길라잡이가 될, 전문가에게는 사상의 대중화에 전범이 될 자상한 눈높이 입문서이다. 서가 한 귀퉁이의 [대한화사전]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상깊은구절]
배움에만 열중한 나머지 '생각'을 소홀히 하게 되면 사물에 대한 투철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에만 열중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식견이 좁아져서 자칫하면 터무니 없는 과오에 빠지기 쉽습니다.그러므로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난폭해지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가르치치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001-07-08
 

 

사족 1. 동양학계에 길이 남을 기념비인 [대한화사전]을 제외하고, 저자의 작품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책 중의 하나가 [중국 고전 명언 사전]이겠다. 정식 판본 이전에 국내에서 (물론 정식 판권계약을 거치지 않은 해적판으로) 무시히 많이 나온 고사성어 사전류의 원작이 되는 작품이다. 근자의 국내 드라마를 보면 고사성어나 속담 등을 꼭 한두 글자씩 틀리게 말하는 것으로 주인공의 무식함을 드러내곤 하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웃어야 할 순간에 웃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면 한 번쯤 통독할 만 하다. 국내에서 나온 책으로는 김원중 선생의 책이 미더우면서도 가격 또한 [중국 고전 명언 사전]의 1/3에 불과하다는 미덕이 있고, 임종욱 선생의 책은 [중국 고전 명언 사전]과 맞먹는 포스를 뿜어낸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하다. 

  

 

 

 

  

 

 

 

사족 2. 노자와 함께 도가의 양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출간되었다. (이 책 역시나, [오리다리가 짧다고 이어줄 수는 없다: 장자이야기](문지사, 1991)라는 제목으로 기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십이지 이야기]가 되겠고. 이번에는 또 얼마나 구수한 입담을 풀어놓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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