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국문학자인 저자가 주역을 읽으면서 서른 개의 괘에 대해 쓴 수상록. 이 분야 관련서들이 기존 주석서를 풀이하거나 괘와 효의 뜻을 풀이하는 책들이 보통인데, 국문학자의 시선으로 읽다보니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문학작품의 예화들이 등장하여 이채로웠다.

이를테면 저는 『주역』이라는 거울을 제 출구 찾기의 한 작은 도구로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다. 답답하거나 무료할 때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읽고 제 일상을 반추해보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육효에 대한 각각의 해석을 읽어나가면서 특별히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부여잡고 은근하게 음미합니다. ‘은근하다‘라는 말은 ‘기분에 지지 않고 음미한다‘라는 뜻입니다. 육효의 형상적 연관성이나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게슈탈트(전체 형상이 환기하는 직관적 의미나 정서)를 잡아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그 일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 안의 움직임들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텍스트에서 자극받아 환기되는 내 안의 움직임들 전체 속에서 하나를 찾고, 그 하나를 다시 전체로 확대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어떤 ‘서사적 통일성‘을 찾습니다. 그 서사적 통일성이 거하는 맥락은 물론 스스로 처한 입장이며 물정과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모두 버립니다. 논리로 구하지 않고 직관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아야 합니다. 만약 통일성을 외면하고 ‘한 줄‘이나 ‘한 자‘가 계속 자기를 주장하면 마지막에 그 ‘한 줄‘과 ‘한 자‘로 돌아갑니다. 그것만 거울에 비춥니다. 하나에 거합니다.

다만 ‘하나에 거할 때‘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점을 망각하면 모든 것이 ‘꽝‘입니다. 어떻든 그 ‘한 줄‘이 나의 (허튼 망상이나 욕심으로 『주역』을 펼치는) 욕심과 기대와 희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까닭에 교훈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그것을 뒤집어야 합니다. 가령 ‘수뢰둔‘에서 ‘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이 끼고 천둥은 치지만 비는 아직 안 온다)‘만 눈에 들어오면 그것을 "나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온 다"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조만간에 큰비가(천둥 치고 번개 친 만큼) 올 터이니 단단히 대비하라"로 읽어야 합니다. 기대와 희망을 버리는 것, 바로 그것이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는 『주역』 해석의 ‘요결(要訣)‘입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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