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는 동양학, 좁게는 중국학이라 불리는 분야에 뜻을 품었던 시절, 여기도 좀 읽어볼만한 자료들은 죄다 서구권에서 만들어낸 성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홀로 사숙하던 교수님부터가 미국에서 학위를 딴 분이어서 그랬는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도 제임스 레그나 조셉 니담의 SCC 같은 책들은 떠받들다시피하며 봤고, 마스페로, 그라네, 그레이엄 등의 저서들을 보며 정치한 방법론과 고전 한문의 완벽한 분석능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국내에 소개된 마스페로와 그라네의 저서들)























데이비드 허니가 지은 [위대한 중국학자]는 중국이라는 선진 문명과 조우했던 16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발자취부터, 중국어와 고전학의 연마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샤반, 쥘리엥, 펠리오, 마스페로, 레그, 웨일리 등의 연대기를 서술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만으로 머나먼 나라에 가서 전혀 다른 언어를 밑바닥부터 배우기도 하고, 몽고 티벳 돈황 등의 오지를 직접 답사하며 자료를 모으고 각 지역의 언어를 배워가며 중국과 아시아 일대의 문화를 서구에 소개하는데 앞장섰던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더더욱 대단하다. (물론 그들의 자료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대전기나 냉전기에 정보요원 양성에 쓰이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수천년 동안 중국과 이웃하며 교류하고 살았고, 조선시대의 지배층들은 어려서부터 한문과 고전학, 중국사를 달달 외우다시피하며 과거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중국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연구하여 우리 자신의 언어로 바꿔 수용하지 못했다. 해서 결국 중국학에서는 변두리 신세인데, 여기에 특별히 문제의식을 느껴서 인재와 자원을 투입할 의지 같은 건 딱히 안보이니 앞으로도 수백년이라는 비교적 단기간(?)에 쌓아온 서구의 성과를 넘어서긴 힘들겠지 싶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안재원 선생과 합동 번역까지 해서, 원서의 오류를 세세히 정정해가며 탄탄한 학술번역을 선보인 최정섭 선생께 경외감을 느꼈다. 중국학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잘 찾아보지 않을 법한 책을 출간하는 용단을 내려주신 글항아리 경영진 및 편집진에도 감사를. 


참, 요새 마침 프랑스 동양학계의 거두 마스페로와 그래네의 성과를 국내에 소개해주셨던 김태완 선생께서 외국어 학습기를 내셨던데, 다음 책은 이걸로 정해진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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