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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 [초특가판]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람베르토 마조리니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2년 7월
평점 :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마크 노플러
부정적 현실을 직시하는 사실주의적 정신
-영화<자전거 도둑>에 대한 단상
학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 나오는 학교들을 보면 동아리실에 편안한 등받이소파까지 갖추고 있다. 저런 학교가 어디 있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의심은 잠시뿐이고 우리는 금방 그 드라마에 빠져든다. 만약 그런 드라마를 외국인이 본다면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이 꽤 좋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는 드라마가 현실을 배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못생긴 배우도 있겠지만 배우들은 대체로 보통 이상의 미모를 지녔다. 게다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 영화나 드라마뿐이 아니다. 고전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하나 같이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 흉한 몰골을 한 인물이 등장하는 <박씨전>이라는 고전소설이 예외이긴 하지만 <박씨전>의 박씨 역시 흉한 얼굴을 벗고 뛰어난 미모로 탈바꿈하면서 청나라 군사들을 물리치는 괴력을 발휘한다. 고전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재주 있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재자가인(才子佳人)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주위를 둘러보면 평범한 사람들 일색이다. 이럴 때도 예술은 현실을 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적어도 그는 푹신한 건초 더미에 떨어지든지, 탄력 있는 차양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그는 건물의 난간을 간신히 잡고 매달려 있을 것이다. 타잔은 폭포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고, 람보는 절벽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모든 영화의 주인공은 잘 죽지 않는, 즉 Die Hard한 존재다. 그러나 현실의 존재는 중력의 법칙에 순종한다. 주인공만이 현실을 배반한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일찍이 예술은 사기라고 말한 바 있다. 현실을 배반하는 예술, 마치 예술 속의 현실이 실제의 현실인 양 착각하게 하는 예술 또한 사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리얼리즘은 예술에서의 이런 사기를 걷어치울 것을 요구한다. 예술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주의의 예술관이다. 재자가인의 멋진 주인공보다는 누추하더라도 현실 속의 인물이 등장할 것을 사실주의 예술은 요구한다. 화려한 파티, 멋진 의상을 거친 낭만적인 동화의 주인공보다는 낡은 옷을 걸치고 광대뼈가 불거진 현실 속의 인물이 등장할 것을 사실주의 예술은 요구한다. 바로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소설이 멀리는 염상섭의 <삼대>이고, 가깝게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신사실주의)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어느날 실업자 안토니오 리치는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게 된다. 일을 위해 돈을 빌려 자전거를 구하고, 아들 브루노는 이런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이내 자전거를 잃어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도둑으로 보이는 젊은이의 집을 찾아내지만 절망한다. 그 젊은이는 자기만큼 가난한데다 간질 환자이기 때문이다. 또 그 자전거가 자신의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자전거가 생계수단인 안토니오 리치는 결국 자전거를 훔치게 된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자신의 예술에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 예술적인 과장이나 꾸밈이 없는 당대의 현실, 바로 이러한 사실성이었다.
판타지 영화도 좋고, 어드벤처, 로맨스 영화도 좋지만 가끔은 영화가 현실을 정직하게 담아냈으면 한다. 부정적 현실을 뛰어넘는 힘은 부정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감독: 비토리오 데시카. 주연: 람베르토 마조라니, 엔초 스타졸라. 제작:194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