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리 단편선
니콜라이 고골리 지음, 오정석 옮김 / 산호와진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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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골리가 그의 단편 「외투」에서 아카키예비치를 묘사할 때, “ 그가 언제 그 관청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누가 그를 그 자리에 앉혔는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국장이나 과장들은 수없이 갈렸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지위에서 여전히 서기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모두들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관리 제복을 입고 이마가 벗어진 기성품 같은 인간이 되어 세상에 태어난 것이기라도 한 것 같이 생각하게끔 되었다”라고 말할 때, 고골리는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과장이 부자연스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쪼들리는 살림에 외투 하나를 샀다가 도적들에게 외투를 잃고 파란과 곡절을 겪은 끝에 마음의 병을 얻어 죽어간 아카키예비치에 대해 고골리는 장엄한, 그러나 윗트 있는 헌사를 바친다. (왜 그의 윗트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가는에 대해서는 고심해 볼 만하다.) “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유해는 묘지로 실려 나가 매장되었다. 그리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없어도 페테르스부르크는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마치 그런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리하여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소중히 여겨지지 못하고, 누구의 비호도 받지 못하고, 흔해 빠진 파리까지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박물학자의 주의조차 끌어보지 못한 존재 -관청에서의 온갖 조소를 온순히 참아내고 이렇다 할 사업 한 가지 이루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존재는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고골리는 이렇게 힘 조절의 명수다. 힘있게 정공법으로 밀어부쳐야 할 때와 끌어 당기거나 우회해야 할 때를 적절하게 감지해내는 분별력의 명수. 풍자든 묘사든 적절히 그쳐야 할 때를 아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다.
 아카키예비치라는 러시아 하급 관리를 묘사하고 있는 고골리의 펜은 정확하고 따스하다. <고골리>의 펜은 나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꼼꼼하게 세상을 들여다 보라구. 좋은 웃음은 항상 눈물과 등짝을 맞대고 있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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