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게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150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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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몸이 맞지 않는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가는 것일까, 아니면 몸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는 것일까. 갑옷 같은 목질을 뚫고 움찔움찔거리는 봄은 후자 쪽으로 몸과 마음을 기울게 한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광란의 사랑>은 몸과 마음의 엇갈림을 아주 냉정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악당에게 유혹당하던 로라던, 도덕에게  잡혀 있는 그녀의 마음은 악당을 거부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를 한사코 잡아당긴다.  한 여자의 몸이  마음의 통제권을 벗어나 제 독자권을 행사할 때, 악당은 그녀의 뺨을 후려치며 몹쓸년,하고 외친다. 육체가 마음을  배반하는 이 장면에서 채호기의 「게이 4」는 슬프게 읽힌다.

             내 몸이
             내게 맞지 않다.

             몸에 갇혀
             끙끙거리는
             나 아닌
             몸 속에
             다른 이의
             애타는
             목소리.
           
             덜컹거리는 몸에 실려
             나의 일생을 떠메고 가는
             잘못 입은 너의
             몸의
             쓸쓸한 뒷모습.
              
 '내 몸이/ 내게  맞지 않다'라는 대목은 읽어내는 데 긴 시간과 침묵과 그에  합당한 호흡을 요구한다. 게이는 몸과 마음이 맞지  않는다. 여성의 몸에 남성의 마음, 남성의 몸에  여성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가 제 몸에  꼭 맞는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몸은  마음에 비해 헐겁거나 죈다. 마음과 몸이 꼭꼭 맞아 히죽히죽 잘 놀아나는 경우는 드물다. 봄에는 마음이 꽃 피려고 하는데 몸이 따라가 주지 않든지, 몸은 바짝 물이 오르려고 하는데 마음이 영 따라가 주지 않는다. 마음이 김밥도 말고 비스켓도 싸서 소풍을 가려 해도 몸을  놔주지 않는 현실의 눈치를  몸은 살펴야 하고, 몸이 붉은 루즈라도 칠하고 봄외출을 서둘러도 싸늘한 도덕의 시선을 마음은 외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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