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 이야기
톰 맥마킨 지음, 박여영 옮김 / 예지(Wisdom)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몇 해전 어떤 대기업의 총수가 낸 책에서, 그는 자신이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휴일을 챙기지 못했음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었다. 나의 성공은 이런 피눈물나는 노력의 대가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일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가족과 나들이 한 번 가보지도 못하면서 얻어진 성공, 신선한 공기 한 번 호흡하지 못하면서 얻어진 성공, 느슨한 마음으로 음악 한 번 듣지도 못하고서 얻어진 성공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말끔히 해소하고 있는 책이 그레이트 하비스프 브레드 프랜차이즈의 성공전략을 다루고 있는『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 이야기』(예지)이다. 이 책이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성공의 신화가 아니다. 엄격히 말해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

  코넬대를 막 졸업한 피트와 로라 웨이크먼 부부가 200달러를 들여 개업한 빵집 이름이 그레이트 하비스트 브레드다, 이 회사는 통밀가루와 소금 물 이스트, 약간의 당분만 들어가는 단순한 빵을 만드는 가게였다. 진정으로 우리의 몸이 원하는 것은 단순함. 갖은 조미료와 향료를 가미한 빵은 혀를 만족시켜 줄지는 몰라도 몸과 정신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단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빵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 최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로라와 웨이크먼 부부는 바로 그 자부심에서부터 시작했다. 그 자부심이 미국 전역에 140개의 점포를 두고 일년에 육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프랜차이즈로 성장을 했다.

  그들은 빠른 성장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빚을 얻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빚을 얻으면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격적 경영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비양심적인 일조차 서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새겨둘 만한 대목이다. ‘크게 빌려 크게 벌기 위해서’ 무리하게 빚을 얻어 공격적인 경영을 하다 파산 위기에 몰린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가 씁쓸하게 음미되는 대목이다. 빚을 얻지 않기 때문에 얻는 이점은 또 있다. 바로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섞일 필요가 없다는 것. 저자 톰 맥마킨은 말한다. “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빠른 성장을 원하게 되면, 은행가와 투자자, 벤처자본가, 투자사나 증권사와 얽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마음에도 없는 외교적 발언하랴, 명절날 인사치레 하랴, 접대하랴, 이래저래 피곤한 일들을 피할 수 있으니 확실히 자신의 자본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물론 성장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접어둘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삶이 사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업이 삶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레이트 하비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 책은 말한다. “우리의 사업과 일이 삶과 멀리 떨어진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업과 일은 우리를 지금 당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일이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삶을 희생적 도구로 삼을 수 있는 어떤 고상한 목적이나 사업도 있을 수 없다는 그레이트 하비스트의 현세주의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그레이트 하비스트는 프랜차이즈라지만 지정된 곳에서 재료를 구매하고 회사 로고를 다는 것 빼고는 점주 마음대로다. 미국 전역에 140개의 지점이 있지만 똑같은 곳은 없다. ‘우리는 모든 곳이 월마트화되는 문화에 지쳤다. 한 개인의 창조적인 비전이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진짜 가게를 바라는 것이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점주의 개성이 지점을 만든다. 점주를 고르는 기준도 특이하다. 돈을 벌기보다 시간을 얻기 위해 일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한다. 점주가 될 사람은 ‘자기 개성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니, 이런 빵을 만들어 보겠다고 돈만 가지고 대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먼저 인생을 즐기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니 사업 파트너의 선택 기준치고는 매우 이례적이고 신선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레이트 하비스트사, 월급은 후하지만 개인 인센티브제도는 거부한다. 돈만 보고 일하는 종업원들은 일 자체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종업원들보다 처진다는 것이 이유다. 일을 사랑해야지, 일로써 어떤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개인 보상 제도는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한다는 것도 이 회사가 인센티브 제도를 거부하는 한 이유. 회사는 일터이지 싸움터는 아니라는 말.

  그레이트 하비스트의 매력은 단순함에 있다. 정말 되고 싶은 존재로 나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순함이다. 여기에 묶이고 저기에 묶이고, 이래저래 꼬이다가는 초심을 잃기 십상이다. 창업자 로라와 피트 웨이크먼은 TV도 없다. 신문도 보지 않는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은 등산뿐이란다. 그들은 등산용구를 사는 것말고는 돈을 쓰지 않는단다. 그들은 황무지를 여행하기 좋아하고 모험을 사랑한단다. 저자는 이 회사가 지향하는 단순함을 이렇게 요약한다. “단순함과 자기 신뢰, 그리고 모험에 대한 사랑은 마치 사시사철에 피는 꽃처럼 회사 이곳저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방식이 단순하든 아니든간에, 이 정신은 본사 사무실의 기능적인 외양이나, 일체의 허세가 없는 고용인에 대한 태도, 자연식품 선호자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사냥꾼이기도 한 직원 대부분의 생활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라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경영자 A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경영자 B가 있다고 한다면 십중팔구 게임은 A의 승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 이야기』는 꼭 그런 공식이 맞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준다.

  이 회사의 사보에 썼다는 창업자 웨이크먼의 발언은 음미할 만하다.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깨달음이 있다.

  '나는 우리 회사가 야생귀리보다는 알팔파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알팔파는 다년생 식물입니다. 야생귀리는 1년생 식물이고요. 둘 다 매우 잘 자라며, 토양에 잘 적응합니다. 적절한 환경에서 키운다면 어느 쪽이 어느 쪽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지요. 야생귀리는 빨리 퍼지고, 무서운 속도로 자라며, 많은 씨를 남기고 죽습니다. 뿌리를 보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알팔파보다 성장속도도 빠릅니다. 기회를 잘 만나면 성장을 멈출 줄 모르는 식물이죠. 많은 회사들이 이처럼 차입금을 이용하여 빠른 길을 택하고, 급성장합니다. 이런 방식의 성공은 입증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나는 알팔파를 더 좋아합니다. 알팔파는 시간이 걸리지만, 끊임없이 뿌리를 보존해나가면서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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