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앤지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해나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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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대지의 청소부 쇠똥구리



박지원의 <예덕선생전>이라는 한문단편소설에는 ‘똥선생’이라는 뜻을 가진 '예덕선생(穢德先生)'이 등장한다. 예덕선생의 본명은 엄행수다. 그는 도성의 똥을 수거해 근교의 채소 농가에 거름으로 내다 파는 일을 한다. 선귤자의 제자가 자기 스승이 엄행수를 칭송하여 선생이라 부르며 그와 교분을 맺고 벗하기를 청하려고 하자 부끄럽다며  그의 문하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선귤자가 제자에게 말한다. 선귤자의 말을 간추리면 이렇다. “내가 너에게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해주마. 모든 사람들이 엄씨의 똥을 가져다 써야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네. 하지만 그는 아침에 밥 한 사발이면 의기가 흡족해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한 사발 먹을 뿐이지. 남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더니 목구멍에 넘어가면 푸성귀나 고기나 배를 채우기는 마찬가지인데 맛을 따져 무엇하겠느냐고 대꾸하고, 반반한 옷이나 좀 입으라고 권하였더니 넓은 소매를 입으면 몸에 익숙하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 없다고 하더군. 엄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 주고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그 뜻을 미루어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는 알 만하다네.”

 

당시의 선비들이라면 똥을 치는 일은 더럽고 천한  일이라 하여 고개를 내저었겠지만 박지원은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렇게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직업이나 신분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가 많다. 자연계의 존재들을 대할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가축이나 곡물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인간들은 짧은 안목으로 무엇이 진정으로 쓸모가 있는 존재인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쇠똥구리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쇠똥구리와 예덕선생은 흡사한 데가 있다. 먼저 그들은 더러움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감하게 더러움 속으로 뛰어든다. 사실 더러움이란 인간이 자연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쇠똥구리에게는 똥무더기는 먹이를 마련해주는 일터다. 굳이 더러움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쇠똥구리는 예덕선 못지않게 부지런하다. 그들은 동물이 버린 오물 위로 달려가 잽싸게 그것을 땅에 묻는다. 똥이 있는 곳이라면 그들은 어디든 간다. 그들은 날마다 소, 말, 코끼리, 원숭이, 그리고 인간과 같은 덩치 큰 포유류에게서 나오는 수백만 톤의 똥을 열심히 먹어치운다. 서아프리카에서 쇠똥구리는 ㏊당 연간 1t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나게 부지런한 청소부인 셈이다. 쇠똥구리의 이런 탁월한 청소능력을 활용하는 나라들도 있다.


나탈리 엔지어는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라는 책을 통해 쇠똥구리의 덕을 찬양해 마지 않는다. 나탈리 엔지어의 말대로라면 쇠똥구리는 동물계의 ‘예덕선생’이다. 책에 의하면 쇠똥구리는 당장 먹지 않을 똥을 땅에 묻어둠으로써 대기중으로 날아가 버릴 질소를 흙 속에 보존하여 땅을 기름지게 한다. 또 지렁이처럼 땅을 파헤쳐 공기를 잘 통하게 하여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쇠똥구리의 유충은 기생충과 구더기를 잡아먹어서 질병을 퍼뜨리는 미생물의 수를 줄여준다.


나탈레 엔지어는 쇠똥구리가 생태계에서 얼마나 건강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책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학자들은 쇠똥구리가 없었다면 덩치 큰 포유동물이 아프리카의 초원지대 같은 곳에서 대규모로 밀집해서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쇠똥구리가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먹어치움으로써 초식동물의 먹이인 식물들이 자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은 쇠똥구리의 생태학적 가치와 관련해 흥미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소와 양은 약 2백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곳의 토종 쇠똥구리들은 캥거루나 코알라가 내놓는 한 입 크기밖에 안 되는 배설물에 익숙해진 탓에 외국에서 들어온 동물의 엄청난 배설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동물의 배설물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배설물 속에서 자라는 똥파리가 극성을 부렸다. 지금도 목축을 많이 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하루 약 2억 개의 똥무더기가 생긴다고 한다. 냄새도 냄새지만 이 똥무더기가 햇볕에 말라붙으면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풀도 자라기 힘들게 된다. 이래저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때 호주 정부가 덤불파리 퇴치를 위해 묘안을 짜낸 것이 쇠똥구리다. 호주정부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 24종의 쇠똥구리를 수입하면서 배설물 문제는 해결되었다.


원효대사도 “예토(똥처럼 더러운 땅)와 정토(깨끗한 땅)는 본래 일심이요, 생사와 열반도 궁극에는 둘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더럽다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것이 마음에 달린 문제다. 더러움을 더러움으로 여기지 않고 배설물을 청소해주는 쇠똥구리에게 인간은 고약한 선물로 은혜를 대신했다. 바로 소에게 먹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항생제다. 이제 대한민국의 어디에서도 쇠똥구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소의 똥에 섞인 항생제가 쇠똥구리에게 몹쓸 짓을 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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