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주권 - 헤르만 셰어의 21세기 에너지 생존전략
헤르만 셰어 지음, 배진아 옮김 / 고즈윈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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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인가?

  에너지 주권/헤르만 셰어/고즈윈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The hydrogen economy)』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를 경고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20세기를 지탱하게 해준 화석연료, 특히 석유는 몇 십 년 안에 고갈될 것이며 얼마 남지 않은 석유마저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지역에만 남아 있게 된다고 저자는 경종을 울린다. 그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의 환경문제가 일으킬 재앙도 함께 지적하면서 그 대안으로 수소에너지체제로 가자고 역설한다.

  리프킨이 들고 있는 수소의 장점은 수소가 물의 구성원소인 만큼 거의 무궁무진한 자원이라는 점, 그리고 연료전지 등을 통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고 기체연료로 쓸 수 있으며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는 태양에너지의 중요한 저장 수단 즉 에너지 매체라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있는 학자가 있다. 바로 『에너지 주권』의 저자, 헤르만 셰어다. 셰어는 먼저 수소 에너지가 석탄 석유 등과 같이 땅에서 캐낼 수 있는 1차 에너지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수소는 변환 과정을 거쳐 얻어야 하는 2차 에너지인데 이 변환과정에서 일정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령 물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려면 우선 전기가 필요한데, 이 전기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끌어와야 한다면 적어도 10퍼센트의 에너지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또 물의 전기분해, 수소의 액화과정, 압축저장과정, 운송과정, 수소를 전기로 전환시키는 과정 등에서 커다란 에너지 손실이 있기 때문에 수소 에너지는 비효율성이 엄청난 에너지라고 셰어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수소에너지를 옹호하는 것일까. 세어는 수소에너지를 옹호하는 그룹을 셋으로 분류한다. 첫째, 수소에너지에 대한 선의의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정보 부족으로 편중된 사고를 하는 사람, 둘째, 단기적인 사회 안정을 위하여 전통적 에너지 시스템과 관련된 변화를 뒤로 미루고자 하는 사람, 셋째, 핵전력을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힐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세어는 세 번째의 사람들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셰어는 최근 수소와 연료전지를 주제로 하여 수많은 회의가 개최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다수는 세 번째 의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일고 있는 수소에 대한 열광과 보편적인 공감대를 위하여 핵에너지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것이 그들의 숨은 의도라는 것이다. 셰어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17억 달러짜리 수고 프로그램은 핵수소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연구비로 책정된 예산을 끌어와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수소캠페인은 전통적인 핵로비스트들과 석유로비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소를 유괴한 자들‘이라고 세어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핵에너지의 평화적인 사용’이 온갖 종류의 물질적 궁핍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에 인류는 빠져 있었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의 저서『희망의 법칙』에서 “사하라 사막과 고비사막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시베리아와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남극 지방을 리비에라(휴양지)로 바꾸어 놓으려면 몇 백 파운드의 우라늄과 토륨만 있으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핵무기를 반대하는 1954년의 <러셀과 아인슈타인 선언>에서도 “오로지 너의 인간성만을 상기하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도록 하라.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활짝 열릴 것이다”라고 원자력의 긍정적 이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핵에너지는 정부로부터 광범위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셰어는 원자력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낭만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조목조목 반박한다.

  첫째, 물 부족 문제다. 원자로증기발생과정과 냉각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세계인구 증가에 따른 물 수요 증가를 감안할 때 심각한 문제가 향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낮은 효율성의 문제다. 핵폐열을 이용하여 전기-난방 연계시스템을 가동시키려면 멀리 떨어진 장소에 중앙집중식으로 모여 있는 발전소로부터 열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 때 소요되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셋째, 위험성의 문제다. 현재 특정 국가들 간의 대립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적으로 원자로를 목표로 핵테러리즘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에너지 경제적 방안의 오류 문제다.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서는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자본투자가 필요한데, 이는 전력시장의 자유화정책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전력시장 자유화 정책은 단기적인 투자비용회수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핵폐기물의 최종처리 문제다. 핵 폐기물은 반드시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데, 사회적인 불안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적인 시스템도 이 긴 기간을 책임지고 보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은밀하게 진행되는 방사능 오염 문제다. 방사능 누출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에 초래할 위험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시민들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는 <에너지전환> 대표 이필렬 교수도 <원자력 석유대체론의 허구성>이란 글을 통해 원자력 발전이 화석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 지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자력도 고갈된다. 땅속에서 쉽게 캐낼 수 있는 우라늄은 무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돌아가는 원자력발전소 440개를 50년 정도 돌릴 양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전기, 자동차연료, 난방용 연료 등의 에너지를 모두 원자력으로 공급하려 한다면 원자력발전소가 150개가량 필요한데, 이것이 더해지면 그 연한은 37년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150개의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존 버스비(John Busby)도 <왜 원자력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답이 되지 않는가>란 글에서 “현재 세계의 연간 우라늄 광산의 전체 산출은 고작 3만6천 톤이다.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연간 6만6천 톤 수요에서 모자라는 나머지 3만 톤은 재고, 과거 무기 재료, MOX, 그리고 재가공한 광산의 선광 부스러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현재의 세계 에너지 수요를 원자력으로만 채우려면 우라늄 생산은 140배 늘어야 한다.”라고 우려를 표명한다.

  그는 원자력이 무(無)탄소(carbon-free)라는 주장도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이산화탄소는 원자로에서의 핵분열 과정을 제외한 모든 핵연료 사이클의 구성 부문에서 방출된다. 채광, 광석 제분(milling) 그리고 광석 농축과정에, 연료캔 준비 과정에, 발전소 건설, 사용 중단, 폐로(demolition) 과정에, 핵폐기물 관리와 핵폐기물 재처리 과정에, 그리고 핵폐기물 보관을 위한 암반을 뚫는 과정에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전 버스비는 말한다. 원자력이 깨끗한 에너지라는 믿음이 허구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헤르만 셰어는 원자로는 '원천적 불안전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당국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와 경보장치가 설치돼 있어 원자로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원자로는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세어는 꼬집는다


 『에너지 주권』에서 저자는 현재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려는 세계 각국의 시도를 살피고, 위기의 대안으로 핵에너지, 석탄에너지, 석유에너지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넘어가지 않으면 더 이상의 생존은 물론이고 인류의 생존도 위태롭다고 경고한다.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경우 연료를 공급할 필요가 없고, 광범위한 전력공급망도 필요가 없게 되어 비용효과면에서 커다란 경제성이 기대되지만, 대체에너지 방식으로의 전환은 기존의 에너지업계에게는 타격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에너지업계로서는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세어는 지적한다. 정부 역시 기존의 에너지 업계의 타격이 곧 국민경제의 몰락으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책결정시 기존 에너지업계를 배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태도들이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태양열 주택이나 풍력발전을 하면 정부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에 불과하다고 셰어는 지적한다. 오히려 핵에너지나 화석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이 지금까지 지급된 모든 종류의 재생가능에너지 보조금보다 몇 배나 많았다는 것이다.

  셰어는 에너지원이 다양하고 소규모 자체 발전이 가능한 재생에너지가 각 국가 또는 지역별, 지자체별로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는 국가간 불균형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셰어는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인식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 전통적 에너지체제 중심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에너지 소비’, ‘에너지 시장’, ‘환경 부담금’ 같은 표현도 그 고정관념의 일부라고 셰어는 지적한다. ‘에너지 소비’라는 말은 에너지가 ‘모두 소모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재생가능에너지의 장점을 배제한 표현이라면서 세어는 ‘에너지 사용’이라는 표현을 그 대체어로 제시한다. ‘환경부담금’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담금은 환경유해물질, 특히 화석에너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은 관심의 초점을 환경오염에서 세금부담으로 옮기고 있으므로 ‘환경부담금’보다는 ‘유해물질 부담금’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세세한 곳에서까지 의식의 혁명을 요구하는 셰어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별 지역별 차이를 인정하고 경쟁력 있는 에너지 생산을 위한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에너지 주권 확립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 세계적 합의의 주축은 선진국가와 국가를 초월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들일 수밖에 없고 이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선에서 협약과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존에너지 업계가 자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별․지역별로 자체적인 에너지 운용이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뿐이라고 그는 거듭 말한다. 이를 위해 셰어는 10가지 철칙을 제안한다. ① 의식적 자율성을 되찾는다. ② 새로운 경제 발전 모델을 세운다. ③ 국내 자원에 원칙적인 우선권을 부여한다. ④ 전통적 에너지를 대체할 순서를 정한다. ⑤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얻은 국민 경제적 이익을 개별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극제로 전환한다. ⑥ 에너지업계 내에 존재하는 카르텔을 실질적으로 해체한다. ⑦ 국가가 본보기가 되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앞장선다. ⑧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조경계획과 도시계획을 세운다. ⑨ 지식의 결핍을 극복한다. ⑩ 위협적인 세계경기 침체에 대처하려면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해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원자력만이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식의 결핍에서 연유된 것이라면 편견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주권』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읽혀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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