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권력의 얼굴
제러미 블랙 지음, 박광식 옮김 / 심산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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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과연 객관적일까

지도, 권력의 얼굴/제러미 블랙/심산/2006



바다는 거대한 출렁임일 뿐이었고 산은 하늘로 솟은 거대한 땅덩어리에 불과했다. 인간들은 이 세계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면서 질서를 부여했다. 이름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미부여였으며, 이는 곧 문명화된 세계의 질서였다, 세계에 붙여진 이름은 곧 지도상의 공간으로 나타났다. 인간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질서화하였다. 자신은 중심이고 타인은 변방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는 공간을 균질적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어떤 곳은 신성하고 거룩한 곳으로 인식되었지만 또 어떤 곳은 야만스럽고 불결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공간을 위계화하는 인식의 결과는 그대로 지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도 구매자들과 사용자들은 지도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도상(圖象)쯤으로 이해한다. 수학과 투시법, 측량 기술 등에서 일어난 변화 덕분에 지도 제작 기술이 발전했다는 점에서 지도 제작 과정이 대단히 과학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 권력의 얼굴』의 저자, 제러미 블랙은 지도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고대로부터 지도제작과 제국주의적 정복 및 통치 사이에, 즉 세계 지도라고 알려진 것들과 세계적 패권을 주장하는 세력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러미 블록은 더 나아가 제도는 ‘권력의 얼굴’이라고 단언한다. 권력관계를 보기 위해서는 지도를 보라는 말이다.


실제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도 제작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7년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인들은 마르티니크(Marttinique)와 과들루프(Guadeloupe)의 지도를 제작했는데, 그 들은 이 지도에 설탕과 커피, 면화 플랜테이션 체제를 기록했으며, 한편으로는 미래에 영국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정보들을 기재해두었다. 이런 지도에는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유주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식민주의자들과 피식민주의자들의 권력관계가 고스란히 지도에 반영된 셈이다. 더 이상 지도는 객관성과 진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를 보면 지도가 권력의 얼굴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수많은 주요 흑인거주지들, 특히 흑인 분리거주지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에서는 무시되거나 최소화돼 있다. 이것은 흑인 거주지역들, 특히 불법 점유지들이 지도화하기가 어려웠던 사정을 반영하고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구조사 자료의 정확도가 인종집단에 따라 달랐던 것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들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백인들에게만 주의가 집중됐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지도에서는 특히 농촌 지역의 소규모 백인 도시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게 표시됐다. 남아프리카고화국의 지도는, 지도가 객관적이라는 우리의 통념에 보기 좋게 한방 먹인다. 지도제작자들은 객관적인 눈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덜 중요하게 보아야 할지를 결정한 것은 그들의 눈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였다. 역사상에 나타난 수많은 지도는 지도의 정치성을 잘 보여준다.


지도화와 관련된 논쟁은 투영법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현대인쇄술의 특성상 세계를 지도로 표시할 때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직사각형이다. 그런데 이 직사각형 지도들은 지구의 원형을 살려내지 못한다. 위선과 경선은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보이게 되고, 지구는 모서리가 직각이고 분명한 테두리가 있다는 잘못된 시각적 특성을 갖게 된다. 둥근 구(球)를 평면에 펼치다 보니 투영법에는 왜곡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지도의 투영법에는 정확한 형태 따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많은 투영법들이 다른 용도를 위해 고안되어 왔다. 16세기 멀리 떨어진 식민지와의 교역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엄청난 거리를 항해해야만 했던 시절 메르카토르는 세계를 원통형으로 묘사한 투영법을 만들었다. 이른바 ‘메르카토르 투영법’이 그것이다. 이 투영법에서는 경선들이 양 극점에 모이지 않고 평행 상태를 유지했다. 양 극점은 적도와 같으 원주를 갖도록 확장됐으며, 이에 따라 적도 근처의 육지에 비해 양 극점 가까이에 있는 대륙들(예를 들면 유럽대륙)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표시됐다. 대신 메르카토르의 투영법을 사용하면, 곡선으로 이루어진 지구의 실제 표면과 달리 각도가 변하지 않아 지도상의 모든 부분에서 방위가 정확하게 유지됐다. 이에 따라 방위가 변하지 않는 직선들을 지도의 평면 위에 표시할 수 있었는데, 항해를 위해서는 이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지역에 따라 축적이 바뀔 수밖에 없었고, 결국 크기가 왜곡되고 말았다. 이 메르카토르의 투영법을 따를 경우 양극의 지점들이 무한대로 확대돼 결국 지도에 표시할 수 업었다. 그러나 이 불안전한 지도는 유럽의 통치자들이나 상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중위도 지역, 그러니까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 동쪽으로는 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탐험과 정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사하는 데 관심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기독교 지도가 예수살렘을 중앙에 배치했던 반면 메르카토르 투영법으로 만들어진 지도는 유렵을 중앙에 배치했다. 또 메르카토르 투영법으로 제작된 지도는 극지방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에 유럽 대륙의 크기가 실제보다 크게 보였다. 결국 메르카토르 투영법으로 제작된 지도에는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서구우월주의가 그 배면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1898년에 고안된 반데르 그린텐(Van der Grinten) 투영법에서는 온대 위도 지역을 과장해 표현하는 메르카토르 투영법의 방식이 계속된 결과 그린란드, 알래스카, 캐나다, 소련이 실제보다 크게 표시되었다. 이 투영법은 1992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지리학협회에서 사용했고, 그 영향력도 대단했다. 이 투영법에서는 소련이 마치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그려졌다. 결국 이 투영법은 미소의 냉전 시대에 맞는 지도 이미지였던 셈이다. 지도라는 객관성의 이면에 이데올로기를 숨기는 솜씨가 실로 교묘하다.


1967년 페터스가 고안해낸 지도는 열대지방을 엄청나게 키워놓았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길이가 극단적으로 과장됐다. 그러나 열대지역을 강조한 이 지도는 제3세계에 대한 관심과 일치했고, 국제구호단체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제3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던 교황청이나 기독교 단체들로부터도 열띤 지지를 받았다. 또 페터스의 세계지도는 『남북관계 : 생존을 위한 계획』이란 책에서 호평을 받으며 책의 표지에 실리기도 한다. 지도학 자체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고 서구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세계질서를 필요로 했던 시대의 요구에 페터스의 지도가 정확하게 부응한 셈이다. 세계의 형상이 지도에 객관적으로 반영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정치적 관심이 지도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하겠다.


유럽이 세계지도의 가운데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유럽 국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제국주의적 영향력이 반영돼 있다. 지도에서 유럽이 중앙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유럽중심적 사고는 1884년 표준시와 경도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경도 0도를 영국 그리니치를 지나는 경선으로 선택한 국제회의를 통해 강화된다. 이러한 자기중심주의는 유럽 내부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여러 명의 조도학자들이 0도 경선이 워싱턴이나 미국의 도시들을 통과하도록 한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은 동양에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는 17세기에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는 가장 훌륭하고, 사실상 유일한 세계지도였다고 한다. 이 지도의 큰 결점은 중화적(中華的) 세계관에 의하여 중국을 너무 크게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이런 지도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변방의 나라들은 미개하다는 세계관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지도 제작에 있어서 자명한 객관성을 갖는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주관성이야말로 지도제작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도와 지도 제작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지도제작에 있어서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도의 의미를 사회․정치적 상황 속으로 다시 가져다 놓는 일이며, 그를 통해 지도의 이면의 권력관계를 살피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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