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시간을 확인하려고 신세계백화점 사이트를 찾아봤더니 저따우 문구가 보인다.

"당일 5만원 이상 구매고객, 日 선착순 1,000명에 한함."

전화해서 진짜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관람권을 나눠주긴 하는데 그냥 가서 보고싶다면 들여보낸단다.

어쨌든 장사해 먹겠다는 저 속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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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를 써 볼까 했던건데, 또 손에 안 잡힌다.

 소설에서 쥐스트는 빌가뇽이 이끄는 '남국의 프랑스' 건설에 진심으로 동조한다.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한다는 계획,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가는 강력한 요새에 압도되어 자신이 옳은 일,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콜롱브에게 빌가뇽과 쥐스트의 작업은 인디오들의 삶과 자연을 파괴하는 짓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콜롱브의 목소리가 옳다는 것을 안다. 위인과 영웅 이름만 등장하던 역사 교과서를 벗어나 민중을 말하는 책들을 읽고, 서구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배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프랑스조차 예외가 아님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 쥐스트 같은 사람들은 어땠을까.

가끔 헛소리 픽픽 해대는 어르신들을 신문에서 보며 '이런, 미친...' 하면서 열받곤 하지만, 가만 보면 그 중에는 자기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주말 내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1년에 한 권씩 나왔던데, 당시의 젤라즈니 팬들은 어떻게 기다렸을까.

진정한 세계라고 하는 앰버, 그러나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기회가 된다면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앰버의 왕자와 공주들은 인간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앰버 왕족의 가족 관계 재건기라고 할 만한 소설. 결국 나쁜 놈은 한놈밖에 없었다!

 

 설마 라이토가 이 모든 걸...? -_-

 

 

 

 

 누군가의 말대로, 이 정도면 '아이에 대한 판타지'다. 귀엽고 재미있다만, 이런 꼬마가 옆에 있으면 아마 기절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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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0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스노트 넘 실망이예요 ㅠ.ㅠ

urblue 2005-10-0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ㅠ.ㅜ

날개 2005-10-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앰버연대기 보고싶어요....ㅡ.ㅜ

하이드 2005-10-06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스노트 어케 되었길래!
붉은브라질 어떤가요? 살까 말까 고민목록에 들어 있는 책입니다.

urblue 2005-10-0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데스노트 어케 되었는지 알려드리면 재미없죠. 하긴 뭐, 그냥 봐도 전보다 재미없긴 하지만. -_-;
붉은 브라질은, 제 기준으로는 별 네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리뷰를 쓰려고 했던 건데 너무 생각이 많아져서 정리가 안되는군요. 음. 재미있습니다.

날개님, 조만간 절판되지 싶은데요. 어서 구입하심이...=3=3

sudan 2005-10-0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스노트. 결말만 들었어요. 입이 근질근질. 헤헷.

urblue 2005-10-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도 안 내고, 도대체 어쩌려는건지 모르겠어요, 데스노트는.

2005-10-06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말에 헤이리에 다녀왔습니다. 바깥 나들이는 꽤 오랜만이라 무척 즐거웠습니다.

함께 가 보실래요?

 



출발~ 날씨 좋고, 운전은 친구가 하니까 더 좋고. 뒷자리에서 카메라로 장난하기 바쁘다.

 



물론 금강산도 식후경. 헤이리에 들어가기 전에 밥부터 먹자. 이미 불고기 한판 먹은 후라 반찬 그릇이 많이 비어 있다. 빠가사리 매운탕도 꽤 맛있다.

 



밥 먹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우르르 뛰어나온 강아지들.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몇 마리인지 미처 세지도 못했다. 사람을 좋아하는지 우리들 발밑에 매달려 아양을 떤다. 식당 주인 딸인 듯, 빨간 옷 입은 아이가 강아지들을 부르다 말을 안 듣자 급기야 빗자루를 들고 달려든다. 어미에게 몰아넣는데 성공.

 



하늘 푸르고, 바람 시원하고, 꽃 예쁘고, 나비도 펄럭펄럭 잘도 날아 다닌다.

 



몇몇 전시장을 둘러본다. '기억의 상자'라는, 파라핀에 돌을 넣은 조각품(?)들을 보면서, 조각보다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져있는 선반을 책장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만 한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의 잡지와 잡지 창간호 전시회, 장식이 잔뜩 들어간 서양의 옛날 책 전시회도 재미있다.

 



돌아오는 길. 하늘에 조그맣게 무지개 비스무리한 것이 보인다. 무지개는 수증기가 프리즘 역할을 해서 나타나는 거 아니던가. 쟤는 어떻게 저 위치에 생기는거지, 질문했지만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역시 친구에게 운전을 맡겨두고 쿨쿨 잤다.

피곤하긴 하지만 즐거운 하루,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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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0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있어요^^

책읽는나무 2005-10-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멋진 여행을 하셨네요.^^

인터라겐 2005-10-0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기 앉아 계시는 분이 블루님 이시렵니까???

2417000


urblue 2005-10-0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에, 저는 찍사였습니다. ㅎㅎ

책읽는 나무님, 낮에는 약간 더웠지만 그래도 확실히 가을 냄새가 나더군요. ^^

물만두님, 코스모스랑 저런 나비랑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나지 뭡니까. 님도 사진으로나마 즐겨주시길. ^^

로드무비 2005-10-0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들 너무 좋네요.
블루님은 참 빨빨거리고(?) 잘도 다니신단 말씀. 부러워요!^^

urblue 2005-10-0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빨! 헉!
저보단 님이 더 잘 다니시는 것 같은데요.
전 워낙 게을러서는 말이죠. ^^;

2005-10-06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0-05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이어라?@,.@
도회적인 분위기가 물씬.
어여쁘셔라!^^

플레져 2005-10-0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내가 남자라도 블루님을!!! ^^
지적이지, 날씬하지, 매혹적이지...머리도 좋고! 모자란게 없네, 없어.
손동작 제대로 화려합니다 ㅎㅎㅎ

urblue 2005-10-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친구가 자꾸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저 손동작 화려한 포즈로만 대여섯장의 사진을 찍었답니다. 얼굴 하나도 안 나오게 제대로 가려주죠. ㅎㅎ
음..그런데요, 키 작지, 안 예쁜데다 피부도 까맣지, 성질 드럽지, 따박따박 따지고 들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여자가 아니라구요.

로드무비님, 에구, 쑥스럽습니다. ^^;;

2005-10-05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10-0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일단, 마빈처럼 생기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이미지를 바꿔야겠군요. ㅋㅋ

2005-10-05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5-10-05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억~ 뽀나스에 눈길이 더 가는군요~! +.+ 멋져요, 멋져!!

urblue 2005-10-05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미모를 밝히는 분이었다니! 흠. 님이랑은 절대 만나지 말아야겠군요. -_-;

날개님, 아우~ 고맙습니다. 수줍.

2005-10-06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10-06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치다 만나도 확인 불가일걸요.
저 사진, 제법 잘 나온 거거든. ㅎㅎ
 
 전출처 : balmas > 서평에 대한 반론-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둘러싼 논점들

 

 

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둘러싼 논점들- 홍양희의 문제 제기에 답함
전시동원체제와 파시즘 구분해야

2005년 10월 02일   권명아 연세대 이메일 보내기

▲권명아 / 연세대, 국문학 ©
필자의 '역사적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에 대한 홍양희의 서평은 일제 말기 연구에 있어서 고민해야 하는 핵심적 논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홍양희가 제기한 논점들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필자의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홍양희가 제시한 세 가지 논점을 필자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시 동원 체제의 역사적 특성을 이전 시기와 관련하여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홍양희의 문제제기는 주로 이전 시기의 특성과의 연속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는 좀 더 구체적인 논점을 토대로 논의 구도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이는 먼저 일본의 동화 정책과 황민화 정책을 어떤 관련 속에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담고 있다. 이 논점은 대만과 조선의 식민 경험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논점이다. 필자의 경우는 황민화를 동화의 연장선으로 보는 관점과 입장을 달리하면서(물론 황민화가 동화와 전혀 이질적이라는 차원이 아니다), 황민화 고유의 특성과 역사적 성격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다. 즉 필자의 논의는 황민화와 동화의 차별성, 특히 황민화가 사회적, 정치적인 적대적 갈등을 정체성 투쟁으로 전환시켜서 황민화를 존재론적 투쟁으로 만드는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


또 전시 동원 체제와 이전, 이후 시기와의 관계는 전시 동원 체제의 주체화의 역학(황민화와 관련된)이 근대 체제의 일반적 속성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또는 파시즘 체제의 특수성에 의해서 더욱 지배적으로 규정되는 것인가 라는 논점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 일례로, 가족이 사회의 기초 단위로 설정되는 것은 지역을 막론하고 근대 체제 일반의 공통적 성격이다.

그러나 가족을 국민 구성의 기초 단위로 정치화하는 가족 국가주의는 일본의 근대 구성과 식민 통치의 종별적 성격이기도 하다. 필자의 가족 국가주의에 대한 논점 역시 이 문제를 규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또 이는 파시즘 체제가 근대성의 일반적 특성에 의해 규정되는가, 혹은 파시즘 체제 고유의 성격이 보다 지배적인가 하는 논점을 내포하는 것이다.

필자는 파시즘 체제(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근대성의 예외적 국면으로 보는 관점과는 기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한다. 즉 파시즘 체제는 근대성의 역사적 전개 과정의 산물이라는 관점에 필자는 서 있다. 그러나 필자는 동시에 파시즘 체제의 역사적 특성이 모두 근대성 일반의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점 또한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파시즘을 근대성의 경향적 특성으로 탈역사화하는 관점을 비판하면서 역사적 파시즘 체제라는 규정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기 구분의 문제는 전시 동원 체제의 특성을 전시 체제 일반의 공통적 특성, 식민지 조선의 고유한 특성과 관련하여서 어떻게 구별적으로 논의할 것인가 하는 논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논점과 관련하여 홍양희가 사례로 제시한 전시 체제하 여성 동원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남성들이 전선에 나간 후방의 노동력 부족을 위해서 여성을 동원하는 것은 이차 대전기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양상이다.

그런 점에서 홍양희가 제기하는 후방의 여성 동원 문제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이라기보다 세계 대전기의 전시 체제의 공통적 속성이다. 오히려 가정의 정치화와 여성 동원은 이러한 세계 대전기 전시 체제의 공통적 속성과 함께, 일본의 전시 동원 체제의 특성으로서 가족 국가주의와 일본 여성과 달리 정치적 무능력자로 규정된 식민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사이의 불일치와 같은 문제들이 더욱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필자는 주로 이 점을 중요하게 논의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이 전시 체제의 동원 논리 속에서 일종의 정치 세력화와 권력을 얻게 되는 과정이 일본 여성들과 동질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일본 지식인 여성-조선 지식인 여성-조선의 이른바 여성 대중들 사이의 위계화와 서열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지 후방의 여성 동원을 강조함으로써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인다.


두 번째 논점은 필자의 문제틀이 자칫 친일 협력의 문제를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규명하고자 한 문제는 바로 이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 추구 행위와 적대적 그룹에 대한 비난과 배제와 말살을 “어찌할 수 없음”으로 자기 합리화화는 정당화 기제에 대한 것이다.

이는 바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살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자기 정당화 기제라는 것이지, 이 자체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실상 필자가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은 민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기존 연구를 비판하는 것이 마치 이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폭력에 동참한 것으로 환원하는 논리이다.

또한 이 연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파시즘에 동참하게 되는 요인들과 엘리트 집단의 동기, 욕망 구조들을 반사상이나 대칭상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가 제기하는 중요한 논점이다. 이들이 결과적으로 시대에 편승했다는 동일한 현상을 보이지만, 실제 그 내부의 욕망, 배제 기제, 동기, 정체성 불안의 요인들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상 젠더사가 차이화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인 갈등과 배제의 폭력적 투쟁의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또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 모든 차이화 과정을 대칭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 필자가 제기하는 중요한 논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05 Kyosu.net
Updated: 2005-10-0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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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논쟁 서평-역사적 파시즘

 

 

논쟁서평: 『역사적 파시즘-제국의 판타지와 젠더정치』(권명아 지음| 책세상 刊 | 2005| 511쪽)
단절론적 시각 문제..."무엇이 최소한의 생존이었는가"

2005년 10월 02일   홍양희 한양대 이메일 보내기

이 책은 오늘날의 한국의 현실을 파시즘의 유산이 살아 숨쉬는 사회로 보면서 그러한 폭력의 시대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자기 성찰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그 기원을 일제말기 전시동원체제의 경험에서 찾으면서, 그것의 역사적 특성을 파시즘과 젠더정치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수탈과 저항, 혹은 억압과 동의의 구조로 일제 말의 파시즘 체제를 분석하는 역사 연구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분법적 연구는 파시즘 체제의 폭력성을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실제 모습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파시즘의 속성, 즉 파시즘이 젠더, 지역, 인종 등을 기제로 식민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전환시키는 체제라는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된다. 총후부인, 청년, 남방담론 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따라서 전시동원체제 하의 파시즘 체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 식민지라는 집단들 내부에 존재하는 정체성 투쟁의 양상들을 분석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파시즘 체제를 유지시키고 대중을 그것에 합류하게 하는 근본 요인이 그들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는 욕망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시선을 끄는 대목은 총후부인이나 스파이 담론을 통해 여성의, 모던보이나 애국청년 담론을 통해 남성의, 좋은 일본인 되기를 각각 분석한 2부와 3부의 젠더 관련 부분이다. 젠더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정체성 집단간의 갈등과 투쟁의 모습을 포착한 점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젠더사 연구에서 한 걸음 나아간, 이 책이 지닌 차별성 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황민화 정책과 그에 대한 저항이나 협력이라는 접근 방식과 달리, 식민지인들의 내부 투쟁을 통한 자발적 일본인 되기란 시각은 역사 연구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 연구자, 특히 한국사 연구자로서 이 책이 준 유용한 자극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전시 동원 체제기와 그 이전 시대를 너무 단절시켜 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총후부인 담론이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여성 정체성을 혐오하는 담론이었다는 점과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가정은 새로운 정치적 단위가 되었다는 주장이 그러하다. 물론 총후부인은 전시체제기에 나오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가정 주부와 여성해방적인 신여성 사이의 정체성 투쟁이 과연 이 시기에 한정된 담론이었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식민지 초기부터 1920년대의 교과서와 잡지에도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정을 둘러싼 젠더정치는 일제 말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젠더로 이분화된 국가 분업주의는 근대국가의 중요한 시스템이었고, 제국주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가정은 국가로부터 개개인을 국민으로 자기 복제해 내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가정은 사적인 공간으로 은폐되어 있지만, 사실상 공적인 세계에 처음부터 열려있었다. 최근의 젠더사 연구가 사적 생활조차 정치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총후부인이 그 이전의 여성 담론과 구별되는 것은 남자들의 빈공간을 메우기 위해 사회적인 진출을 일정하게 용인하였다는데 있다. 요컨대 저자는 여성들 사이의 정체성 투쟁과 가정의 정치적 성격이 제국주의의 폭력성에서도 기인한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둘째, “파시즘 체제의 욕망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제한된 상황에서 그 폐쇄된 상황에서 적어도 자신을 파시즘적 폭력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도덕은 없는가”라는 논리 모순적 화두에 담긴 문제점이다. 이 질문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파시즘 체제는 국민의 일상 전체를 잠재된 적에 대한 공포를 통해 규율함으로써 일상적으로 끝없이 좋은 일본인 되기의 실천을 수행하게 하는 주체화의 역학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인은 그 체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고, 부지불식간에 일본 파시즘에 공범이 되고 만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 서면 친일 협력의 책임 부분에서 전시동원체제 이전과 이후의 친일 행위를 분리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이후의 친일은 책임을 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위 자체가 정당화된다. 저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하여 조심스럽게나마 “파시즘의 유산과 최소한이나마 거리를 두게 해주는 최소한의 도덕은 어쩌면 자기 안의 무한 증식하는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그것인지도 모른다”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 경우 이번에는 무엇이 최소한의 생존이었는지 그 기준을 세워야 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일상적이고도 구조적인 폭력 체제 안에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결론에 공감하면서도 저자의 화두에 공허함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째서 일까.

홍양희/한양대·한국근대사

필자는 한양대에서 ‘조선총독부의 가족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기 호적제도와 가족제도의 변용’, ‘식민지시기 남성교육과 젠더’ 등이 있다.


©2005 Kyosu.net
Updated: 2005-10-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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