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가 달라졌다.

 

<쿵푸 허슬>은 기존 주성치 영화의 맥락을 이어가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주성치의 영화들을 좋아하는건 그가 아니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뻔뻔한 허풍과 유머 때문이다. 대놓고 실컷 웃으라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쿵푸 허슬>은 그 점에서는 전작을 잇는다. 아니, 오히려 능가한다. 그런데 쿵푸라는 액션이 추가되면서 그 성격이 좀 바뀌었다.

 

<쿵푸 허슬>에서 보이는 액션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성룡의 코믹함이나 이연걸의 부드러움보다는 이소룡 식의 정직한 액션과 비슷하다. 물론 이소룡의 흉내를 내는데서 그친다면 주성치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액션씬의 마무리는 주성치 특유의 과장과 허풍과 유머이다. 역시 뻥이야,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다. 주성치가 아니면 누가 이런 상상을 하랴, 라는 생각으로 제법 유쾌하다.

 

나로서는 여기까지였으면 딱 좋았을텐데, 주성치는 좀 더 나아간다. 꽤나 센데다 잔인한 장면들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사람을 난도질하고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하다), 예상보다 자주 피가 튀긴다. 언제 주성치 영화에서 이처럼 사람이 죽어나가고 검붉은 피가 흥건히 고였던 적이 있었던가. 영화에서 사람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거나 피가 튀는 장면 보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유머러스함이 없었더라면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영화관을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하나의 달라진 점은 이 영화가, 액션과 코미디 아래에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를 깔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스토리나 설정 자체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전부 어디서 본 듯한 내용 뿐이다. 어린 시절 만났던 여자아이나 크게 한탕해서 폼나게 살아보겠다는 어리숙한 건달 캐릭터도 그렇고, 심지어 강호를 떠나 숨어사는 고수들도 그렇다. 특히 주성치가 절대 고수로 거듭나는 장면은 뻔한데다 어이없을 정도다. 이건 뭐 연습이고 나발이고 필요도 없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제가 상대할게요. 라며 문을 열고 등장하는 순간, 나, 감동하고 말았다. 그가 정말로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지구를 구할 운명인 것처럼.

 

주성치가 조직을 배신하고 돌아설 때부터 이미 감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행위는 배신이라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라간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이건 아니야.라는 단순한 마음, 정의니 뭐니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아무튼, 이번에는 그의 영화에 감.동.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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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1-1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감동이라 하시니... ^^;

비로그인 2005-01-2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성치의 팬인데, 이번 영화는 못보겠군요, 흑흑.

sudan 2005-01-2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유치하다하고, (나를 포함한)몇몇은 환장하던, 대략 십오년전쯤의 주성치가 좋아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주성치를 보게될까봐 망설였는데, 이 리뷰를 읽고 이 영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urblue 2005-01-2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그러다 실망하시면, 음... 옛날의 주성치도 좋아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좋네요. 주성치에게 실망하게 될 날이 올까, 싶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주성치라면.

처음과끝님, 저런, 시간이 안되시나요? 극장에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안타깝네요.

시아일합운빈현님, 그쵸? 얼굴은 전혀 늙지 않은 것 같은데 흰 수염 보고 저도 좀 놀랐습니다.

치카님, 솔직히, 이런 거에 감동받는구나, 하고 혼자 좀 놀랐다니까요. ^^;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읽다. 드림웍스의, 제법 착하고 여린 심성에 귀엽기까지 한 슈렉과는 완전 딴판이다. 흉측스럽게 생긴데다가 남 괴롭히는 것만 좋아하는 이 '괴물'이 귀엽게 느껴진 건, 천진한 아이들과 노는 악몽을 꾸고 난 후 '나쁜 꿈을 꾼 것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장면이었다. 괴물도 악몽을 꾸고 기운이 빠지기도 하는구나.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니, 뭐 슈렉의 삶도 나쁜 것은 아니다. 잘 생겼건 못생겼건, 심성이 곱든 나쁘든 누구나 자기의 행복을 누릴 권리는 있으니까.

 

신자유주의의 배경과 형성 과정, 전개에 대한 개괄서. 한마디로 '교과서' 타입의 책. 신자유주의에 관한 다른 책들을 읽기 전에 기본 정보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훌륭하다만, 좀 지루해서 읽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다양한 저항을 다루지 못한 것과 '대안'을 고민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고 있듯이, 읽으면서 내내 그 점이 궁금했다.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초국적 자본이 신자유주의를 이끌어간다면, 그에 대한 대안을 어떻게, 어디서 찾아야하는걸까. 아무래도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야겠다.

 

 

 

 

 

1편을 무지 재밌게 읽어서, 2,3편을 주말 동안 다 읽어버리려고 했다. 토요일에 2편 역시 재미있게 봤다. 2편에 접어들면, 이제 우주 여행만이 아니라 시간 여행까지 하게 된다. 이 히치하이커들을 따라 다니며 신나게 웃기도 하지만 무지 머리가 아파지기도 한다. 일요일에 3편을 절반 쯤 읽고나서야 후회했다. 다음 주에 볼걸. 이제 조금 남았으니 오늘 끝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다만, 다음 권들은 한권씩 따로따로, 간격을 좀 두고서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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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1-1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들이랑 히치하이킹을 같이 하다보면, 정말 정신이 없어집니다.
웃다가, 이게 뭔 소리야 인상쓰다가, 다시 웃다가..
그러니 한 권 읽으면 필히 쉬어줘야합니다.
전 지금 막 끝냈네요. ^^

sudan 2005-01-1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치하이커! 예전에 한번 읽었었는데, 정식 계약으로 다시 나왔다고 해서 얼른 주문해놨죠. 무지막지하게 웃겼다는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어도 그럴지 모르겠어요.

2005-01-1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01-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아마 다시 읽어도 재미있을 듯. ^^

플레져 2005-01-1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콧수염 다 읽고 리뷰 썼어요.
왜 님이 그 책과 맞지 않다고 하셨는지... 알겠어요...^^
 
 전출처 : dohyosae >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락크의 공통점

베트남 전쟁은 몇 가지 특수성 때문에 민간인들의 피해가 어느 전쟁보다도 컸다. 그 특수성의 첫번째 요인은 전쟁의 동기에서 발생하였다. 베트남전쟁은 사회주의혁명과 반외세운동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북베트남과 베트민의 해방전쟁노선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전쟁을 미국의 제국주의와 베트남의 민족주의의 충돌로 몰고감으로서 영토의 확장과 점령보다는 점령지 주민의 지지획득에 절대적인 우선순위를 두었던 것이다. 이런 전쟁의 전략 때문에 전쟁은 군인들 간의 전투가 아니라 민간인들의 사상을 검증하는 절차로 전도되므로서 베트남 전역에서 비전투원인 민간인의 대량 살해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두번째는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기술적인 측면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세계 제일의 공업대국인 미국과 농업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던 북베트남간에 벌어짐으로서 한쪽의 일방적인 대량파괴가 필연적임을 시초부터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민간인의 피해가 대량으로 벌어진 이유이다.

미국은 1954년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퇴패하면서 베트남에 개입하게 되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투입한 신무기의 양은 엄청났다. 미국이 베트남에 사용한 신무기로는 정글과 농토를 다같이 황폐화시키는 고엽제, 동굴속의 적군을 몰아내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사용된 최류탄, 1분 이내에 축구장 크기의 면적에 1평방피트마다 총알을 한발씩 뿌려댈수 있는 발칸포, 사람이 밟아야만 터지게 되어있는 플라스틱 대인지뢰, 한발로 축구장 크기의 면적에 있는 동식물과 땅속의 지렁이까지 몰살시키는 1만5천파운드짜리 데이지커터 폭탄, 순전히 화재를 유발하기 위해 투하되는 5백파운드짜리 네이팜탄과 백린탄...

군부와 산업재벌로 결합된 <군산복합체>는 베트남 전장터를 군사적 강대국을 지향하는 미국의 신형무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이 결과 미국의 무기성능은 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신속한 개량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미국은 1961년 베트남전에 개입하여 1972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소비한 탄약의 량이 7백만톤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베트남에서 베트남 국민 일인당 5백파운드 폭탄이 한발꼴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탄약을 소비함으로서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래 보유해왔던 구식의 모든 포탄과 탄약을 모두 소비함으로서 새로운 무기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이렇게 많은 양의 탄약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집약적전술>에 기인한 것이었다. 적의 위치를 파악하면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그 지역을 초토화시킨 다음 근접지원공격과 적이 이용하는 일정지역 혹은 통로 및 총체적인 보급망에 대한 선택적인 공격을 가하는 교란작전을 병행하였다. 이런 작전의 의도는 미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지만 효과는 거의 미약했다. 하지만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이 작전을 고집하였고 이 결과 베트남은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전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군은 교란작전을 시행할 때 화력개방지역, 보복공격, 피난유도폭격 등 세가지 작전 개념 아래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작전개념은 의심나는 지역은 민간인지역이라도 폭격할 수 있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전술이 비난을 받게되자 미군은 1965년부터 화력개방지역을 확정공격지역으로 고쳐 불렀다. 이 방법의 효과는 어떤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베트남 농촌의 인구가 위험을 피해 도시로 유입됨으로서 <인구의 도시집중화>가 촉진되었다. 미군이 개입하기 전인 60년대 초 베트남 인구의 80-85%가 농촌에 거주하였지만 68년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40%가 도시에 살고 있었다. 이런 도시집중율은 당시 선진국이었던 스웨덴, 스위스, 이탈리아, 캐나다, 그리고 당시 공산권의 종주국인 소련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것은 전쟁이 농업사회인 베트남을 어떻게 기형적으로 만들었는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근대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베트남에서 인구의 도시집중은 농촌의 젊은이들을 특별한 기술이 없는 3차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도록 함으로서 도시의 슬럼화를 가속시켰다. 이렇게 슬럼화된 도시는 범죄와 게릴라들의 은신처로 활용됨으로서 베트남 전쟁은 전선이 없는 전장터로 변모하게 되었다. 미국은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전략촌>개념을 세워 농촌지역을 하나의 군사단위로 묶는 작업을 시행하였지만, 농촌지역에 고립된 전략촌은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의 손쉬운 공격목표가 됨으로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결국 베트남전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만을 간신히 유지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반면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농촌을 장악하므로서 자유롭게 점령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전쟁에서 공중폭격과 포격을 받은 지역은 도시가 아니라 농촌과 밀림지대였다. 이는 미군이 도시공격을 자제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전역에서 도시다운 도시는 북의 하노이와 남의 사이공을 제외하면 전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베트남에서 미군이 사용한 포탄의 반이 5백파운드급이었다. 그리고 이 포탄의 60%를 공군이 폭격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포병에 의한 포사격이었다. 이 결과 베트남 전역에는 직경 9미터에 깊이 4.5미터가량되는 간이 수영장만한 구덩이들이 2천6백만개 이상이 생겨났다. 이는 베트남 전국토의 10%의 면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포탄이 터져 형성된 포탄구멍은 강력한 폭발로 인해 지표 아래 있던 토양을 끌어올리고 농업에 적합한 토양을 지표에 분산시킴으로서 농토의 자연스런 배수구조를 교란시키게 된다. 이런 인공 구조물은 제거될 때까지 농토를 개간할 수 없게한다. 결국 미군의 폭격으로 베트남 국토의 10%가 불모지로 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탄 구멍에 물이 고임으로서 각종 열대전염병의 온상이되어 베트남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실제로 1972년 4월 26일 AFP통신은 하노이발 기사에서 북위 17도선 부근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살인모기가 발견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미군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은신처가 밀림지대인 까닭에 전쟁초기부터 오렌지 에이전트라고 불리운 고엽제를 대량으로 사용하였다. 미군은 고엽제를 적들이 은거하고 있는 베트남 정글에 국한시킨 것이 아니라 고산족이 살고있는 북부와 서부의 농작물지대에도 무차별 살포하였다. 이는 적이 식량자원을 이용할 수 없도록한다는 취지에서 시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오염된 농작물을 먹게된 고산족들은 60년대 후반부터 기형아 출산의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고엽제가 대략 1억파운드 이상이 6만제곱킬로미터-남한의 3분의 2-이상의 지역에 살포되었다고 보고있다. 이는 베트남 삼림의 35%가 한번 또는 그 이상 고엽제의 세례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결과 베트남은 3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국내용 목재소비량을 충족시킬 수있는 산림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농토 역시 5천 6백 제곱킬로미터가 고엽제에 노출되었다. 특히 고엽제의 살포가 집중되었던 타이닌성에서는 기형아의 출산과 태아의 사산율이 높았다는 보고가 있으나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에 고엽제의 피해가 보고되자 미군은 고엽제 대신 대형 불도저를 동원하여 정글을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이 결과 대략 7천 5백제곱킬로미터의 삼림이 파괴되었다. 미국은 전쟁을 빙자하여 한 국가의 경제하부구조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 결과 전쟁이 종식된지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베트남의 자연피해는 완전히 복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늦게 베트남 전쟁을 거론하는 것은 미국이 지금 개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 양상이 점점 월남전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무대가 밀림이 아니라 사막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미국의 핵심 전략은 60년대에 베트남에서 기초한 개념에서 조금도 바뀐 것이 없음을 현실의 진행과정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은 인명의 살상에서 오는 피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또 다른 이유에 의해 그 휴유증이 더 크게 증폭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의 가공함이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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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극장에서 보면서도 그랬지만, <왕의 귀환>의 진정한 주인공은 프로도도 아라곤도 아닌, 저 샘 와이즈 갠지라는 생각이다.

충복(忠僕)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한 게 불만이긴 하지만, 샘은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신의와 사랑이 어떤건지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 일개 정원사에 불과한 샘이 없었더라면 프로도의 여정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는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로지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샘은,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해 또다른 모험을 찾아 떠나는 프로도와도 다르다.

빌보가 시작한 책은 프로도를 거쳐 샘에게 건네진다. 샘은 아마 마지막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내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샘을 비롯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하고 소중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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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5-01-1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의 귀환이었죠. ^^

urblue 2005-01-1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맞네요, 샘의 귀환! ^^

2005-01-17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쿵푸 허슬>로 귀환한 ‘주성치월드’를 사랑하는 이유

주성치가 쿵후영화를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2002년 <소림축구>로 처음, 폭이 넓은 한국 관객과 만났던 주성치는, 다시 한번 쿵후의 부흥을 꿈꾸는 그만의 소망을 스크린 위에 비급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주성치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쿵푸 허슬>은 갱이 되고 싶은 청년 싱이 희생과 정의와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전설로만 전해지던 무공 여래신장을 터득하는 영화. 중국 상하이에서 극비리에 촬영된 <쿵푸 허슬>은 이소룡을 숭배해서 무도인이 되고자 했던, 그리고 결국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던, 주성치의 오랜 꿈이 결정으로 맺힌 영화다. “진지한 쿵후액션영화” <쿵푸 허슬>에 홍콩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부어넣은 그는 지금 또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소림축구>의 사형사제들과 칠소복의 일원이었던 원추를 거느리고 한국에 도착한 주성치를 만났다. 편집자

나는 주성치 마니아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주성치를 좋아한다, 믿는다. 그의 영화가 나온다면, 장르가 무엇이건 본다. 어떤 이야기이건 무조건 본다. 주성치가 출연한다면, 일정 정도의 즐거움은 확보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건 성룡이나 이연걸의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성룡이나 이연걸에게 기대하는 것은 액션이다. 지나친 특수효과만 쓰지 않는다면, 영화가 엉망이어도 그들의 액션만 많이 볼 수 있다면 대체로 만족한다. 주성치는 액션배우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쿵푸 허슬> 이전까지는 아니었다. 주성치는 말장난과 슬랩스틱으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광둥어로 구사되는 고유한 개그도 희한하게 즐겁지만, 짐 캐리 이상의 표정연기와 패럴리 형제 이상의 엽기적인 상황으로 연속되는 주성치의 영화는 끊임없이 웃음을 안겨준다. 액션이 아니라 언제나 코미디로 타국의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성치는 그 어려운 일을,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해왔다. 주성치가 홍콩 최고의 스타를 넘어서, 전세계에 열광적인 마니아를 거느리는 배우가 된 것은 충분히 타당한 일이다.

<쿵푸 허슬>은 누구나 반기는 오락영화

하지만 주성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을까? 성룡과 주윤발, 이연걸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만국공통의 액션이 아니라 각 나라, 민족에 고유한 웃음으로 승부하는 주성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많을 때는 1년에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의 주성치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룡이 <프로젝트 A>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처럼, 주성치 역시 착실하게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왔다. 아니 이미 이루어졌다. <도성> <도학위룡> <무장원소걸아> 등 히트작을 양산하던 주성치는, 마침내 1994년 <007 북경특급>에서 이력지와 공동연출을 하게 된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직접 만들게 된 주성치는, 언제나 꿈꾸어왔던 ‘쿵후’를 <소림 축구>와 <쿵푸 허슬>에서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게 된다. 아니 쿵후의 정신을 그대로 영화에 담게 된다.

주성치 특유의 웃음에, 고난도의 액션이 더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쿵푸 허슬>에서 어린 싱이 거리에서 비급책을 사서 연습하는 장면은, 주성치의 어린 시절 그대로다. 주성치의 꿈은, 이소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어린이 쇼의 사회자를 맡으면서 천부적인 유머감각을 선보이고 최고의 코미디 배우가 되었지만, 결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쿵후 영화’를 만들 날을 기다렸다. 주성치는 이미 최고였지만, 너무나도 신중하고 철저했다. <쿵푸 허슬> 전까지는, 단지 ‘자신감이 없어서’ 쿵후 영화에 도전하지 않았다니까. 그 먼 길을 돌아올 정도로 주성치는, 섬세한 완벽주의자다.

주성치를 만나면, 그가 얼마나 유머가 넘치는 한편 철저한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한때 은인이었던 이수현을 비롯하여 이력지, 오맹달과도 헤어진 주성치는 ‘인간관계가 서툴다’라는 말을 듣는다. ‘고독노인’이란 별명처럼, 그는 모든 것을 생각한다. 인터뷰에서도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 신중하게 자신이 할말을 고르고, 어떤 선까지만 이야기를 한다. 타인을 웃기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생각이 없거나, 너무 많거나. 주성치는 명백한 후자이고, 지나칠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이며 감독이다. 자신만의 성을 소유하고, 그 성에서 만들어낸 무엇으로 세계를 정복해가는 대중 예술가다.

컬럼비아의 자본으로, 세계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쿵푸 허슬>은 오락영화의 걸작이다. 이소룡과 찰리 채플린을 존경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쿵푸 허슬>은 웃음과 액션, 그리고 감동까지 모든 즐거움을 안겨준다. 엽기적인 웃음의 코드를 약간 줄이고, 액션의 강도를 높인 것은 주성치의 취향만이 아니라, 일반 관객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변화다. 그동안 주성치의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너무 좋아하거나, 썰렁하거나.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주성치 영화는, 한국에서는 열광적인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소림축구>가 그런 선입견을 깼고, 마침내 <쿵푸 허슬>은 누구나가 반기는 오락영화가 되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좋은 의미로 할리우드적이 된 것이다. 할리우드영화의 패러디를 넣은 것이 단지 ‘보편적인 커넥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쿵푸 허슬>은 누구나가 알고 있고, 누구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과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다. 무협지의 전통적인 플롯으로, 한때 길을 잘못 들었지만 회개하면서 최고수가 되는 남자의 역경이 그려진다.

우리의 꿈, 아픔을 웃음으로 뒤집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이 승리한다. 혹은 ‘사랑’이 승리한다. 권선징악은 너무나 뻔한 것이지만,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초현대적인 영웅이라면, 일면적인 선과는 약간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악인지, 선인지 구분하기 힘든 주인공들은, 세기말부터 꾸준하게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복합적인 영웅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라는 대사, 단지 사랑을 위하여 대의를 저버리는 <연인>의 인물들에게 끌린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이나 사랑을 위하여 헌신짝처럼 세상을 버릴 수 있는,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영웅도 이제는 너무나 흔하다. 그게 옳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쿵푸 허슬>의 싱처럼, 폼나게 살고 싶었지만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생명, 사랑을 어느 순간 깨닫는 영웅이 더욱 가슴을 울린다는 것을 안다. 결국은 돌아와야만 하고,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리, 혹은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 영웅이, 21세기에는 필요하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주성치가 말하는 ‘쿵후’의 정신이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

주성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 언뜻 보기에는 너무 특별한 이야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인물은 소시민 혹은 빈민층이거나 정상의 자리에서 순식간에 구렁텅이로 떨어져내린다. 그 바닥에서 절치부심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어가며 다시 시작한다. <쿵푸 허슬>에서 독사에게 입술을 물리거나, 야수에게 두들겨맞는 것 정도는 이전 주성치 영화의 고난과 비교해본다면, 정말 사소한 걸림돌 정도다. ‘나는 코미디를 엄숙한 제재를 사용하여 연기한다’는 말처럼, 주성치는 가장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코미디로 바꾸어버린다. 그 깊고도 섬세한 내면으로 들어가도 좋고, 아니어도 그냥 웃을 수 있다. 주성치 영화의 ‘가장 큰 감동은 소인물의 감정과 소시민의 마음의 소리’라는 말처럼, 그의 영화에는 작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한껏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주성치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고, 이국에서도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지금 <쿵푸 허슬>이란 걸작을 만들어낸 힘이다.

지금 주성치는 또 한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원하는 것은, 매년 주성치의 영화를 보는 것뿐이다. <소림축구>에서 <쿵푸 허슬>까지, 3년이란 세월은 너무 길었다. 주성치의 진지한, 혹은 진지하지 않은 ‘쿵후 영화’를 다시 만나고 싶다.

 
글: 김봉석 영화평론가 | 사진: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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