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성치가 달라졌다.
<쿵푸 허슬>은 기존 주성치 영화의 맥락을 이어가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주성치의 영화들을 좋아하는건 그가 아니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뻔뻔한 허풍과 유머 때문이다. 대놓고 실컷 웃으라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쿵푸 허슬>은 그 점에서는 전작을 잇는다. 아니, 오히려 능가한다. 그런데 쿵푸라는 ‘액션’이 추가되면서 그 성격이 좀 바뀌었다.
<쿵푸 허슬>에서 보이는 액션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성룡의 코믹함이나 이연걸의 부드러움보다는 이소룡 식의 정직한 액션과 비슷하다. 물론 이소룡의 흉내를 내는데서 그친다면 주성치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액션씬의 마무리는 주성치 특유의 과장과 허풍과 유머이다. 역시 뻥이야,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다. 주성치가 아니면 누가 이런 상상을 하랴, 라는 생각으로 제법 유쾌하다.
나로서는 여기까지였으면 딱 좋았을텐데, 주성치는 좀 더 나아간다. 꽤나 센데다 잔인한 장면들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사람을 난도질하고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하다), 예상보다 자주 피가 튀긴다. 언제 주성치 영화에서 이처럼 사람이 죽어나가고 검붉은 피가 흥건히 고였던 적이 있었던가. 영화에서 사람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거나 피가 튀는 장면 보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유머러스함이 없었더라면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영화관을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하나의 달라진 점은 이 영화가, 액션과 코미디 아래에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를 깔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스토리나 설정 자체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전부 어디서 본 듯한 내용 뿐이다. 어린 시절 만났던 여자아이나 크게 한탕해서 폼나게 살아보겠다는 어리숙한 건달 캐릭터도 그렇고, 심지어 강호를 떠나 숨어사는 고수들도 그렇다. 특히 주성치가 절대 고수로 거듭나는 장면은 뻔한데다 어이없을 정도다. 이건 뭐 연습이고 나발이고 필요도 없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제가 상대할게요.’ 라며 문을 열고 등장하는 순간, 나, 감동하고 말았다. 그가 정말로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지구를 구할 운명인 것처럼.
주성치가 조직을 배신하고 돌아설 때부터 이미 감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행위는 배신이라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라간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이건 아니야.’라는 단순한 마음, 정의니 뭐니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아무튼, 이번에는 그의 영화에 감.동.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