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김남시 >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벤야민 1

1927 2 1 "무릎 위에 큰 가방을 올려놓은 채 울면서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읽은 독자들은, 그렇게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온 벤야민의 이후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해 할 지도 모른다. 근 석달간의 일기를 통해 모스크바에서의 벤야민의 하루 하루를 쫓고, 그의 생각과 감정과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우리들에게, 저 2월 1일 이후 벤야민의 삶은, 여전히 저 모든 숫자와 사실과 연표 속에서 추상적이고, 어두우며, 지리한 익명적 기간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시간과 능력이 허락한다면 다음 글에서도, 나는 모스크바에서 보낸 석달 이후의 벤야민의 삶을 저 어둡고 지리한 숫자와 연표들로부터 발굴해내어, 그를 우리의 하루 하루의 삶처럼, 그리고 <모스크바 일기>에서의 그것처럼, 살아있고, 느끼며, 생각하는 인간의 삶으로 만들어 보려고 시도하려 한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벤야민이 한동안 독감에 걸려 앓았어야 했다는 것을, <모스크바 일기>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벤야민이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날 추위에 떨며 구경했던 수도원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 사이에 그는 베를린에 도착한,  모스크바에서 떠나기 전 부쳤던 짐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엔 그가 모스크바 시내를, 떠듬 떠듬, 실수와 추위와 슬픔에 차서 돌아다니다가 구입했던 장난감, 우편엽서, 그리고 검은 칠을 한 상자,  그리고 어쩌면 아샤의 친구, 벤야민이 호의적으로 보았던 그녀 - 이름이 뭐였더라? - 에게 받았던 작은 칼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저 먼 러시아 대륙을 거쳐 다 제대로 도착했을까. 어쨋든 수집가 벤야민은, 소포로 도착한 저 물건들을 하나 하나 열어보며, 다시 그 물건들과 결합되어 있었을 모스크바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두 달 정도의 기간을 쉬면서, 독감에서 어느정도 몸을 회복한 벤야민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던 프르스트 번역 작업을 계속 진행해야 했다. 그를 위해 그는 4월 1일 파리로 떠난다.  파리시  Avenue du Parc Montsouris 4 번지에 있는 호텔 Hotel du Midi에서 벤야민은 '창가 방'에 장기 투숙하면서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부터 번역 작업을 해왔고, 이제 글쓰는 작업을 위해 늘 '장소와 도구들'을 까다롭게 가리는 벤야민은 이전에 자신이 작업을 해왔던 바로 그 방을 고집한다.  그리고 그 방에서 그는 그해 10월 20일까지 투숙하며 번역일을 계속했다.  

 

물론, 그 사이 저 "여행 중독자" 벤야민이 계속 파리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그해 6월 5일은 프랑스 투롱 근처에 있는 Pardigon을, 같은 달 15일엔 Nizza를, 그리고 저 '행운의 도시' 니짜에서 룰렛 게임을 통해 딴 돈으로 6월 21일엔 비행기를 타고 코르시카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해 12월 18일 벤야민은, 첫번째 하시시 프로토콜을 쓴다.  이미 이전부터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하시시를 투약하고 나서 그를통해 저 초자아의 억압으로 부터 풀려난 무의식이 어떤 언어를 말하는지를 기록하는, 약물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벤야민의 이하시시 프로토콜은 이로부터 1934년 5월까지 계속 이어진다.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벤야민이 극약을 먹고 자살하는 방법을 택한 것도 이런 계속적인 하시시 프로토콜을 통해 익숙해진 약물 복용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몇년 전부터 자살을 위한 약물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1928년은 벤야민에겐 사실상 아주 생산적인 해였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그는 이해에 저 유명한 <파사지 베르크>의 계획을 세우고 그에 "파리의 파사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이 해 1월엔 또한 벤야민의 대표적인 두 저서 <독일 비가극의 기원>과 <일방 통행로>가 출간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 벤야민은 아샤에게 아직 출간되지 않았던 '일방 통행로'의 구절들을 읽어주고, 그 표지 그림을 아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는 걸 우린 <모스크바 일기>를 통해 알고있다. )

  

알려져있다시피, 거의 동시에 출판된 책은, 표지와 내용, 문체와 작업 방식에 있어서 크게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단 한가지 점에선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두 책 모두 벤야민이 사랑하던 여인들에게 헌정되었다는 것이다. 첫번째 책은 자신의 부인이자, 이후 이혼하게 되는 도라 벤야민에게, 두번째 책, 일방통행로는 <모스크바 일기>의 또 다른 주인공 아샤에게다.  이 책을 출판하는 것과 동시에 벤야민은 자신이 계획한 <파리의 파사지> <일방 통행로> 후속편이 것을 예고한다.

 

이해 2 17 벤야민은 앙드레 지드와의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고 이를 <문학세계> 싣는다. 그는 이후에도 앙드레 지드와의 이 인터뷰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었다. 이해 3월엔 베를린의 서점 Potsdamer Bruecke에서 벤야민이 출판한 책들을 주제로 전시회가 개최되는데, 바로 여기에 벤야민의 친구 여동생이었던 조각가 Jula Cohn 벤야민의 두상을 제작해 선물한다. 그녀는 도라 벤야민, 아샤 라시스와 더불어 벤야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세번째 여인이기도 했다.

 

5 31일, 결국은 거절당하고 말았던 자신의 교수 자격취득 논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던 삼촌 Arthur Schoenflies가 사망했다. 그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크프르트를 방문한 벤야민은 6 2 그곳에서 아도르노를 만난다. 이후 아도르노와의 오랜, 복잡하고도 긴 관계가 바로 이날 시작한다. 벤야민은 아도르노에게 자신이 번역한  헌정했다. 프랑크프르트에서 베를린까지는 독일에서 제일 빠른고속전차  ICE로도 근 8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당시에는 이보다 더 걸렸을 것이다. 벤야민은 저 먼 여행을 한꺼번에 기차안에서 보내기 보다는 오는 길, 베를린에서 가까운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데 본낸다. 이때 방문했던 바이마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도시의 상들>에서 기록하고 있다. 

 

9 20 벤야민은  저 조각가 여인 Jula Cohn을 만나기 위해 Lugano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다시 Genua Marseille를 방문한다.  모스크바에서 도시에 대한 글들에서 이후의 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이 두 도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상을 기록한 글을 남긴다. 9월 29일 마르세이유에서 벤야민은 하시시 복용실험을 계속한다.

 

10 7 벤야민은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달, 모스크바에서 약속한대로 아샤가 베를린을 방문한다.  <모스크바 일기>를 읽었던 독자는, 베를린을 방문한 아샤에 대해 벤야민이 느꼈을 저 복잡한 감정 상태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그녀를 원하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녀의 공격성과 히스테리적 짜증, 혁명적 낭만주의 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속물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혁명활동'을 하면서도, 유럽 사회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했던 그녀는, 이제 벤야민이 있는 베를린을 방문했고, 그리하여 모스크바에서 헤어진 이 두 사람은 근 1년 반 후에 베를린에서 다시 만난다.

 

모스크바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벤야민은 그녀를 위해 새로 방을 얻는다.  이들이 11중순 부터 다음해 1월말까지 함께 살았던 곳은 베를린 Duesseldorf 거리 42번지다. 이곳은 벤야민이 이전에 살고있었던 곳과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베를린 출신의 벤야민이 태어났던곳, 그리고 몇 차례의 이사를 통해 옮겨 살았던 곳들은 모두 한 구역 Chrarlottenburg 에 속해있었다. 

 

 

 

 

 

 

 

 

 

 

 

 벤야민과 아샤가 석달 동안 함께 살았던 이 집은 여전히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이 함께 살았던 방은 이 건물 3층, 한국식으로는 4층에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발콘 창가에 꽃들을 가져다 놓은 곳이 그곳이다.


 이곳에서 이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이 집의 위치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벤야민에게 아샤와 함께 살았던 이 곳은 그렇게 쾌적한 곳은 아니었다. 뒤셀도르프 거리 42번지는 그 자체로도,  베를린의 다른 거리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긴 거리였고, 그가 살던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약 30미터 정도만 나가면 그보다 더 큰 자동차 도로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다니던 차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벤야민과 아샤의 베를린 생활을 그리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벤야민이 살았던 젤렌도르프의 빌라에서와는 달리 여기선, 산책을 즐길만한 숲이나 공원이 그렇게 가까이 있지도 않다.

모스크바에서 벌어졌던 이 두 명의 복잡한 연인 이의 긴장감은 이들이 이 곳에서 함께 사는 동안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이는 이들 재회한 연인들이 이 곳에서 그렇게 다감하고 아기자기하게만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이 시기 벤야민은 숄렘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린 여기서 개와 고양이처럼 살고있다" 고 전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 둘의 관계를 못마땅해하던 숄렘이 <모스크바 일기>에서 이들의 관계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불평하는 것도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곳 42번가 건물의 출입문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udan 2006-02-0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22192

혹시나 해서 또 긴장하고 들어와봤는데, 30이 모자라요.

함 해볼려했더니만, 결코 쉽지 않아요. -_-


urblue 2006-02-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브리핑보고 님인줄 알았어요. 이제 글 보면 누군지 딱 알겠는 사람이 두 명이 되었군요. ^^
캡쳐는 저 밑에 페이퍼에 해 주셔야 해요. 알았죠?

sudan 2006-02-0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그 한분은 어떤 분인데요?

urblue 2006-02-0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겠어요. 로드무비님이시지. ㅋㅋ
 

이런 글 퍼 와도 되나 모르겠다. -_-
안병욱, 이름만 들어봤지 책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좀 궁금해지는군.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618.html   ← 전문은 여기서 보세요.

 

안병욱의 '에쎄이': 대책없는 교양주의

1.
1997년 4월 26일 현재 교보문고 스테디셀러 진열대의 수필부문에는 약 30여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 중에서 다섯 권이 안병욱의 책이다. 그 책은 다음과 같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갑인출판사(1983년 5월 15일 초판, 26쇄)
<처음을 위하여 마지막을 위하여>, 자유문학사(1993년 4월 5일, 2판 3쇄)
<삶의 완성을 향하여>, 철학과 현실사(1995년 6월 15일, 1판 2쇄)
<인생론>, 철학과 현실사(1996년 1월 5일, 1판 13쇄)
<젊은이여 희망의 등불을 켜라>, 자유문학사(1996년 9월 10일, 2판 1쇄)

'에세이'하면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10권 정도의 에세이를 가지고 있다. 웬만한 에세이스트 중에서도 안병욱은 단연 앞서 있다. pc통신 천리안에서 'go people' 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저작목록을 찾아보면 한국의 웬만한 인물의 저작 리스트가 나오는데 안병욱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위에 적혀 있는 그의 에세이들을 보면 한 두 권 팔린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만 보더라도 15년 가까이에 걸쳐 쇄를 거듭했다. 요즘에 베스트셀러를 써서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소문아닌 사실이 무성하지만 안병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안병욱의 에세이를 읽는 독자층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그러나 이만한 판매량을 보면 거대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독자들은 그냥 한 권 정도 읽은 사람 또는 한때 열심히 읽은 사람부터 열렬한 팬이어서 새 책이 나올때마다 읽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병욱의 에세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예전에 한 두 권은 읽었다는 대답이 있다. 왜 읽었느냐고 물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주위에서 권하니까 읽었다는 대답이 있다. 가끔 신문에 글이 실리는 걸 보면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읽어보니 나쁜 말은 쓰여있지 않더라는 대답이 있다. 뭔가 책을 읽긴 해야겠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읽을만한 책은 없고 그렇다고 만화책 같은 걸 읽자니 쑥쓰럽다, 그럴 때 읽기 좋은 게 그런 에세이 아니냐는 반문도 있다. 자신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누구에게 책 선물할 때 제일 무난한게 에세이 같아서 선물한 적이 있다고도 한다.

그의 책의 독자들에 대한 나의 짐작과 주변 사람들의 대답을 정리해보면, 뭔가 독서를 하긴 해야겠는데 전문적인 책을 읽기에는 왠지 부담스럽고 일단 읽고나면 교양이 될만한 책이 바로 이런 에세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그의 에세이는 만만해 보인다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어중간한 독자층이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 틈새시장에는 열렬한 팬이 포함되진 않을 것이다.

흔히 베스트셀러 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더 훌륭한 책이라고들 한다. 안병욱의 에세이는 스테디셀러이면서 동시에 베스트셀러이다. 그렇다면 그의 에세이들이 몇 십년에 걸쳐서 끊임없이 읽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 책들은 그렇게 훌륭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 이유가 우리의 형편없는 독서수준이라면 그것을 극복할만한 방안은 없는걸까? 이 글은 이런 사소한 의문들에서 시작한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나는 안병욱의 에세이 4권을 검토해 보았다. 앞에 적은 5 권 중에서 세 권,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듯한 <뜻을 세우고 삽시다>, 이렇게 4 권이다.

2.
그의 신작 에세이 <인생론>의 <책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것은 나의 서른 아홉번째 책이다. 나는 5만여장의 원고를 쓰면서 70여년의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필자는 5만여장의 원고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 많은 원고가 전부 새로운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안병욱의 에세이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새로 만든 책이 드물다는 것이다. 내가 4권의 책을 읽고나서 거칠게 정리해 본 바에 따르면 4권의 책은 100페이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그 정도의 이야기를 가지고 우선 300페이지 짜리 책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의 내용을 이러저리 짜맞춰서 다시 또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이렇게 하여 몇 권의 책을 만든 다음 또다시 그 책들을 엮어 '신작 에세이집'을 만든다. 그런 책들에 들어 있는 내용을 가지고 신문에 연재를 한다. 그렇게 연재한 내용을 묶어서 다시 또 한 권의 책을 만든다. 바로 이것이 그의 다작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40여권에 이르는 그의 에세이들이 거의 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잘쓰는 말대로 '불가능처럼 보이는 가능성'인 것이다 이건 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과연 그러한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위에 적은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하 <지상>>으로 줄여 적음)이다. 책의 내용과 출판에 대한 간략한 사정을 적은 저자의 머리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몇 해 전에 갑인출판사에서 출판한 수상집을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새롭게 가로조판을 하면서 몇 편의 글을 추가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놓는다."

그러니까 이 책의 새로움은 가로조판을 했다는 데에만 있고 몇 편의 글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몇 년 전에 나온 책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그는 앞서 낸 책에서 이것저것을 뽑아서 '새' 책을 만든 것이다.

<처음을 위하여 마지막을 위하여>(이하 <처음>으로 줄여 적음)에 실린 33편의 글 중에서 <지상>에서 뽑아 놓은 게 7편이나 된다. 그럴만한 까닭은 필자가 쓴 <책 머리에>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여러 책 가운데서 인생론에 관한 글을 뽑은 것이 이 책이다. 어떤 글을 고르느냐. 편집자에게 일임하였다." 새로 쓴 글이 없음을 아예 까놓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도 이미 다른 책에 실린 것을 편집자가 알아서 뽑아서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미 앞서 나온 다른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살 까닭이 없다. 책의 편집 과정이 이러하니 당연히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내용은 어떠할까? '책머리에'라는 글은 저자가 자신의 책에 담긴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의 <책머리에>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생의 세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다. 첫째는 직업이요,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요, 셋째는 인생관과 가치관의 선택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엄한 생명을 가지고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을 산다. 인생은 일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시합이다. 산다는 것은 진지한 시합이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산다는 것은 보람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귀한 것이다."

그가 "나의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권 고르라고 하면 이 책을 고르겠다"고 하는 <인생론>은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인생관의 선택'에 각각 한 장씩을 배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인생론>의 '제 1장 시작의 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생에는 세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다. 첫째는 직업의 선택이요,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요, 셋째는 인생관의 선택이다."(p. 11)

두 권의 책의 '첫머리에'와 '시작의 말'이 똑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하나는 '인생의'로 시작하는데 다른 책은 '인생에는'으로 시작하니까 다르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쨋든 내용이 똑같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처음>은 그가 쓴 글 중에서 "인생론에 관한 글"을 뽑아 놓은 것이고, <인생론>은 제목 그 자체가 아예 '인생론'이다. 일이년 사이에 그의 인생관이 크게 바뀌진 않았을테니까 내용이 달라졌음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년에 영남일보에 연재한 글에는 얼마나 다른 내용이 실렸을까? 연재 글들을 묶은 <뜻을 세우고 삽시다>의 '머리말'을 보자: "유일명, 유일생,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요,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어다. 우리는 천상천하에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을 산다. 인생은 두번 살 수 없다. 인생은 연습이 없는 진지한 시합이요, 일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경기다."

<처음>의 '책머리에'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무슨 놈의 '시합'은 그리 좋아하는지? 이러한 반복은 '책머리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내용은 거기서 거긴데, 똑같지는 않지만 말만 조금씩 바꾼 글 제목에도 해당된다.

어머니의 눈동자, 어머니의 조건, 위대한 모상들(<지상>)
어머니(<뜻을 세우고 삽시다>)
인생의 안식처, 결혼은 결혼, 결혼행진곡, 행복한 결혼(<지상>)
결혼의 의미, 가정은 인생의 안식처, 인간 최초의 학교, 사랑은 행복의 조건(<인생론>)
가정은 도덕의 학교, 행복의 3대 요소(<뜻을 세우고 삽시다>)
생명의 의미, 오기인, 생명에 대한 4대 의무, 오애인, 생명은 아름다운 것(<인생론>)
생명의 탄생, 식은 인생의 대본, 장수의 비결, 정식, 신체관리(<뜻을 세우고 삽시다>)

이 정도면 앞에서 내가 그의 책들은 수없이 서로 겹친다고 한 말이 실감날 것이다. 이런 반복 앞에서 나는 그가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하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가졌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분명이 내용이 겹친다는 걸 저자나 출판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겹치면 팔리지 않으리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저자나 출판사는 그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분명이 이건 종이낭비인데도 말이다. 그건 분명 이렇게 만들어도 책이 팔린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아닌가? 출판사는 책만 팔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랬다치자. 자신이 이미 쓴 글 중에서 편집자가 알아서 뽑아 또 책을 내게 하는 저자는 도대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가? 어디다 써도 말이 될만한 구절들을 모아서 글을 만들고 그걸 다시 조금 변형해서 책으로 만들어도 되는가? 그렇게 해서 저서목록에 한 권을 추가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이건 출판사와 저자가 종이장사에 나섰다는 증거밖에 안된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뿐이다. '지적인 불성실.' 이건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안병욱의 에세이 4 권을 놓고 책마다 내용이 중복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면 이제 그의 책 한권을 놓고, 그 책 안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음을 밝혀 보이려 한다. 내가 거론한 책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지상>을 살펴보자.

이 책의 제목은 책에 실린 글 한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이 새로 쓰여진 것이 아님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다른 세 권도 마찬가지지만 안병욱의 글의 특징중의 하나는 격언이 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도 많고 동시에 같은 말이 여러차례 반복되고 있다. 본래 격언이라는 건 앞 뒤 문맥을 딱 잘라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 붙여도 말이 통하고 그럴싸해 보인다. 안병욱의 글들은 이 특징을 잘 구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할 때에도 똑같은 격언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격언을 통해서 <지상>에 등장한 인물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좀 지루하지만 적어본다.

괴테,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맹자, 링컨, 프랭클린, 공자, 펄벅, 졸라, 비스마르크, 나폴레옹, 쉴러, 피히테, 키에르케고르, 루소, 파스칼, 제롬, 바이런, 스탈, 샤미소, 바스타, 브라우닝, 플라톤, 스탕달, 하이네, 프루스트, 크세노폰, 우나무노, 몽테뉴, 스위프트, 로댕, 생텍쥐베리, 시세로(어떤 글에서는 키케로라고 하기도 한다), 보나르, 워싱턴, 데모크리토스, 세르반테스, 에머슨, 칸포아모르, 앙드레 모로와, 베르그송, 에리히 프롬, 스피노자, 발자크, 니체, 키츠, 쇼펜하우어, 빈켈만, 셰익스피어, 안창호, 소포클레스, 로맹 롤랑, 슈바이처, 간디, 에디슨, 한스 카롯사, 밀러, 불바리톤, 핀다로스, 힐라리(힐라리 클린턴이 아니라 히말라야 등산가이다), 베토벤, 이순신, 멘스필드, 바울, 칼라일, 위고, 러스킨, 하이데거, 노자, 장자, 석가, 에피쿠로스, 디즈레일리, 헬렌 켈러, 크로포트킨, 마키아벨리, 다빈치, 케네디, 오르테가, 올코트, 미켈란젤로, 김활란, 단테, 파스칼. 내가 빠뜨린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자그마치 84명이다.

이 많은 인물들의 격언이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 나온다. 이 정도면 수필집이 아니라 격언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자나 맹자, 노자나 장자 등이 인용될때면 그들의 말이 길게 인용된다. 수도없이 많은 고사성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격언, 고사성어가 이 책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등장한 것과 똑같은 격언이 다른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 책에서는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이렇게 노래했다'로 쓰였으면 다른 책에서는 '독일의 어느 시인은 이렇게 갈파했다'로 쓰인다. 같은 책에서도 그런 식의 문장이 반복되는 건 물론이다.

격언과 등장인물의 반복에 이어 내용의 반복을 살펴보자.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샘터에서는 샘물이 사방에 철철 넘쳐 흐른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사랑의 태양이 있고, 사랑의 샘터가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의 태양을 받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사랑의 태양이 있고 사람의 샘터가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의 태양을 받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넘쳐 흐르는 맑은 샘물을 마시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라왔다."(p. 21) 고작 6줄의 문장 속에서도 똑같은 말이 반복된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말이 다른 글에서도 그대로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샘터에 샘물이 넘쳐서 주위에 철철 흐르듯이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도 따뜻한 물이 한없이 솟는다. 우리는 이 사랑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으로 성장했다."(p. 36) 이 한권의 책에서, 제목을 달리한 글마다 반복되는 구절들을 몇 개 적어본다. "행복은 만인의 간절한 원이다." "가난하더라도 만족하게 부족하더라도 만족하라." "도산선생은... 저마다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을 가져 보자고 말했다." "결혼은 인생의 엄숙한 선택이다. 자의에 의한 선택이건, 타의에 의한 선택이건, 중대한 선택이다." "결혼식은 결혼식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는 적당하게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 앞에서 수치의 표정이 풍부해진다. 말할 때나 웃을 때에는 몸가짐 전체에 수치가 감돈다. 이것이 남성의 사랑을 더욱 자극시킨다." "괴테의 시 가운데 <앉은뱅이꽃의 노래>라는 것이 있다." "행복이란 단어는 인생의 사전에서 가장 큰 캐피털 레터로 써야 할 말이다." "사랑은 인생의 사전에서 가장 큰 대문자로 써야 할 단어이다." "20여년 전에 배운 중학교 영어 교과서의 삽화 하나가 생각난다. 어떤 교회를 짓는데 세 사람의 석공이 와서 날마다 대리석에 조각을 한다. 뭣 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고 물은즉, 세 사람의 대답이 각각 다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밀레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남자는 사업에 살고 여자는 애정에 산다." "칸트는 행복을 원하는 것도 좋지만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 행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공자님 말씀'이 되풀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10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말이 다른 책에 토씨만 바뀌어서 또 나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책을 펼쳐봐도 새로울 게 없다. 결혼식 주례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나온다. 어머니의 눈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십년 전의 독일 신문의 설문조사 결과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인용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계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며 고아는 언제나 못된 심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가 보기에는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사업에 살고 여자는 애정에 산다. 아무리 아파트가 많아도 우리는 흙을 밟아야 하고 슈바이처의 박애정신은 시도때도없이 실천해야 한다.

그가 쓴 책에는 그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흔적이 없다. 그는 불변의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아무 것도 새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23 2010-07-1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주소가 깨졌습니다.
 
 전출처 : happyant > [퍼옴] [홍기빈 칼럼] '국익' 여론은 기득권층의 지배음모, 되풀이 안되게 해야

Venture Korea의 흥망과 황우석의 파국 
 
[홍기빈 칼럼] '국익' 여론은 기득권층의 지배음모, 되풀이 안되게 해야
 
홍기빈  
 
1. “남대서양 주식회사”
 
자본주의의 본질을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실제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특히 성공한 나라일수록 국민 국가가 국가 기구와 시민 사회 및 국민 전체가 잘 뭉쳐진 하나의 기업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뭉침’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를 우리는 ‘성공적인 정치 경제 모델’이라고 부르며, 이를테면 80년대까지 고도 성장의 맹위를 떨쳤던 소위 ‘일본 주식회사’(Japan Inc.)와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 갖추어진 하나의 모델을 이루는 대신, 나라 전체가 노다지와 같은 초과 이윤 - 시쳇말로 ‘대박’ - 을 쫓는 ‘벤처’ 기업과 같이 되는 때도 있고, 이 경우에도 국민 국가는 국가 기구 시민 사회 국민들 전부가 혼연일체로 똘똘 뭉치는 위력을 보여준다. 1720년 영국에서 벌어졌던 경우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당시의 영국은 그야말로 ‘벤처 창업’의 전성시대였다. 타자기나 기계 피아노와 같은 비교적 평범한 발명품부터 시작하여 ‘영구 기관’(!)이나 ‘기독교도와 회교도에게 각각 다른 탄환을 쏠 수 있는 기관총’ 등등 상상력 넘치는 기획들이 창업 자금을 댈 주주들을 찾아 헤메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최고의 성공작은 바로 ‘남대서양 주식회사(The South Sea Company)’였다.
 
할리 백작과  사업가 존 블런트 등이 뭉쳐 시작한 이 회사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여파로 엄청나게 불어난 영국 정부의 부채를 떠안는 대신, 브라질 이외의 남아메리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할 권리, 또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주식을 발행하여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특권을 정부로부터 얻어냈던 것이다. 이 회사는 자신들이 따낸 이 두 가지의 특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일약 주식 시장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도 이 회사의 사업 계획이 대단히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당시의 남미 대륙은 스페인의 현실적인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발행한 그 지역의 무역 독점권이라는 것은 좋게 말해서 휴지쪽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갈브레이스의 표현대로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남대서양 주식회사는 드디어 1720년 정부 부채 전액을 인수하였고 거기에 맞추어 대규모 신주를 발행한다. 정부가 밀고 고관대작들이 대거 주주로 참여하는 데에다가 주가는 날로 치솟는다.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무능력자이거나 반역자이다. 그리하여 1월에 128파운드였던 주가는 7월이 되면 1000파운드에 육박하지만, 마침내 대폭락이 시작되어 12월에는 다시 124파운드로 되돌아오고 만다.
 
2. "Venture Korea"
 
현재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줄기 세포 허브’의 꿈은 이 남대서양 주식회사와 같은 Venture Korea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보여진 수 많은 쟁점들 -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 일반 국민들 사이에 나타난 묘한 애국주의와 ‘국익’ 이념의 창궐, 과학의 위기 등등 - 은 따로따로 보아질 것이 아니라 이 Venture Korea의 흥망이라는 큰 틀에서 보아야 그 각각의 의미가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현재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경제적 위기라는 배경을 기억해야 한다. 생산 확장 - 수출을 통한 고성장 - 고용 확대라는 순환 구조를 빌어서 정당화되던 경제 체제는 사라지고, 고성장 - 높은 실업률 - 경기 침체라는 새로운 틀로 이행하고 있는 와중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외의 대기업과 금융 자본에게 경제를 조직할만한 주도권을 ‘세계화’나 ‘시장 개혁’ 등의 명분으로 넘겨준 국가로서는 이렇다할만한 대안적인 산업 정책을 제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위정자들에게 있어서 이 몇 년째 계속되는 경제 침체는 대단한 부담이었고, 이는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지배층 전반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따라서 ‘세계화’, ‘시장’, ‘경쟁력’ 등과 같은 현재의 지배적 경제 담론의 꼭지말들과 어우러지면서도 ‘미래의 비전’으로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음은 분명하다. ‘미래의 세계 의료 시장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황우석 박사의 줄기 세포 연구와 그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생명 공학 기술의 중심지로 만들어내겠다는 ‘줄기 세포 허브’의 전망은 이러한 필요에 나무랄 데 없이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밝혀지고 있듯이, 황우석 박사의 과학적 성취도와 기술적 능력의 실체에 대한 냉철한 감정 평가는 정부에서도 정치권 전체에 걸쳐서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1720년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미래의 경제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비전을 보여줄 필요에 쫓기는 정치인들로서는 여야와 보수 개혁을 가릴 것 없이 황우석 박사를 하나의 “아이콘” 즉 성상(聖像)으로 만들고 그 앞에 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년전의 벤처 붐을 겪으면서 이미 다음과 갈은 점은 국민 상식이 되고 말았다.
 
벤처 창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소위 “원천 기술”이 아니라 “펀딩”과 “바람 넣기(hype)”이다. 실제  본래의 기술이라 할 것은 아주 알량한 아이디어에 불과한 경우가 다수이며, 정말 필요한 것은 최초의 펀딩을 따내고 그것을 레버리지로 사용하여 다른 펀딩을 계속 끌어오는 것이다. 적은 돈이라도 명망있는 기관으로부터 펀딩을 얻어오면 이 일은 크게 쉬워진다. 둘째,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창업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정말로 세상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권위있는 관계 기관과의 관련이라든가 언론 매체의 보도 등이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펀딩”과 “바람”의 두 가지를 갖추는 것에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은 눈덩이처럼 스스로가 스스로를 불리는 자동적인 과정으로 들어가면서 사실상 “현실”이 되어버린다. 
 
국민 국가라는 제도틀이 대단히 성공적인 벤처 기업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국민 국가는 본질적으로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일으켜서 그것을 기초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내는 장치이며, 거기에 필요로 되는 각종 제도와 기관 기구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황박사에게 온갖 월계관과 찬사를 갖다 바친다. 언론은 근거도 의심스런 ‘33조의 기대 수익’이니 ‘다시 춤추는 강원래’ 등의 온갖 언사들을 사용하여 “바람”을 잡는다. 국민 국가의 볼모인 국민들은 별다른 도리 없이 황우석 박사를 이순신 장군으로 착각하게 되며, 그가 성공하면 자신들도 골고루 “대박”을 맞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국익’으로 합의된 사항이므로 정부는 아무런 저항없이 무제한의 지원과 함께 몇 백억의 시초 펀딩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국민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강력한 벤처 기업을 이루면 세계적으로도 여기에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어서 이들이 곧 호응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낸다. 이제 황우석 박사의 노벨상 수상이 세계 여기저기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꿈이 현실이 되는 찰라였다.
 
3. 파국 이후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면, 황우석에 환호하던 대다수의 마음에 깔린 것이 과학 진보에의 갈채라든가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걱정과 같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국민적으로 조성된 “대박” 심리였다는 것은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융 시장의 심리학이 다행증(多幸症: euphoria)과 공황(panic)과 우울증을 오가는 정신분열적인 것이라는 점도 상식적인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과학적 연구의 절차와 원칙, 생명 연구의 윤리, 독립적 언론의 취재와 보도, 정부의 합리적 감사와 감시, 그 밖에도 무수한 민주 사회의 원론적인 상식이 그 ‘국익’을 앞세운 비합리성에 얼마나 가볍게 무시당하는지를 똑똑히 목도하였다. 이 비합리성과 부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이 Venture Korea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 황우석 본인의 도덕성이나 비행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이 문제를 과학계나 언론계 정치계 등 개별의 사회 영역 하나의 문제만으로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고민의 초점은, 명예와 성취에 눈이 먼 일개 과학자 개인에게 어째서 과학계 언론계 정치계 모두 그리고 나아가 다수의 평범한 국민들까지 전부 다 휘둘리게 되었는가라는, “Venture Korea의 병리학”에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다. 
 
과연 우리는 Venture Korea를 필요로 하는가?
 
황우석 박사를 앞세운 ‘바이오 벤처 코리아’는 일단 좌초된 듯 하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 본 바 그것을 낳았던  대한민국 정치 경제의 현재 상황과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의 지배층들은 또 다른 벤처 프로젝트를 내걸고 ‘국익’의 이름으로 나라 전체를 휘두르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꼭 특정 인물이나 첨단 기술을 내걸고 벌어질 이유는 없다. 그것은 국토와 지도를 바꾸어 놓을 대규모 건설 공사일 수도 있고,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대규모의 기업 지원 정책일 수도 있다.
 
단 그것은 이번 황우석 박사 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온갖 현란한 수사와 천문학적인 수치들로 치장한 채 세계화와 시장 경쟁의 시대에 대한민국에게 “대박”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의 방안이자 “국익”이라고 제시될 것이며, 국가 차원은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물적 심적인 지원을 호소하게 될 것이다.
 
그 장밋빛 전망에 취한 사람들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성적으로 접근할 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또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입을 막으려 들 것이다. 국민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경제 성장에 동원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흔히 대극점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든지 금슬좋은 부부로 새롭게 결합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서두에서 우리는 나라가 꼭 ‘벤처 기업’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정치 경제 모델의 모습을 갖추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안정성을 가져다 줄 대안적인 정치 경제 모델을 우리가 갖춘다면 롤러코스터와 같은 흥망을 지겹게 되풀이할 Venture Korea 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 필자는 현재 토론토 요크대학 정치학과에서 일본의 지배블록, 소유구조, 금융체제의 변화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라는 번역서를 출간했다. <대자보>, <프레시안> 등의 온라인 매체와 <한겨레>와 [월간 말]지 등에 기고하고 있다.
 
 
 
 --------------------------------------------------------------

대자보에서 퍼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브라질 하드락/헤비메탈 잡지 위플래쉬가 최근 111명의 하드락/헤비메틀 뮤지션들이 손수 뽑은 2005 최고의 앨범 결과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18일(현지시각) 발표된 이번 리스트에서 솔로 기타리스트 알렉스 마시는 메슈가의 [Catch 33], 몽크와 콜트레인의 [Live At Carnegie Hell], 사망한 기타리스트 숀레인의 [Roma Concert Bootleg] 앨범을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택했다.

키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브루스 쿨릭은 퀸오브스톤에이지의 [Lullabies To Paralyze]와 오디오슬레이브의 신보 [Out Of Exile]을 최고의 앨범으로 꼽았으며, 스래쉬메틀 밴드 앤스랙스 드러머 찰리 베난테는 스스템오브어다운의 연작 [Mesmerize/ Hypnotize], 킬러스의 [Hot Fuss]의 손을 들어주었다.

캐나다 출신의 천재 뮤지션 데빈 타운센드는 메슈가의 [Catch 33 ]와 오페스의 [Ghost Reveries], 소일워크의 [Stabbing The Drama]를 최고의 앨범으로 지목했으며, 미스터빅의 리드보컬 출신인 에릭마틴은 데프레파드의 베스트 앨범 [Rock Of Ages: The Definitive Collection]와 로드스튜어트의 [Thanks For The Memory...], 다크니스의 [One Way Ticket To Hell... And Back]을 꼽아 평소 취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레인보우 등 유명밴드를 거친 보컬리스트 조린 터너는 2005년 최고 앨범으로 마룬 파이브의 [Live Friday The 13th], 스팬의 [Mass Distraction], 킬러스의 [Hot Fuss]를 들었으며, 콰이엇라이엇과 화이트스네이크를 거친 베이시스트 루디 사르조는 오디오슬레이브의 [Out Of Exile]과 푸파이터스의 [In Your Honor]를 올해 최고의 앨범으로 선택했다.

드림씨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는 오페스의 [Ghost Reveries], 마스 볼타의 [Frances The Mute], 시스템오브어 다운의 [Mesmerize/ Hypnotize], 리버사이드의 [Second Life Syndrome], 오션사이즈의 [Everyone Into Position] 등 모두 5개 앨범을 최고의 앨범으로 꼽아 여전히 왕성한 음악 매니아임을 증명했다.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는 2005 최고의 앨범으로 스트래핑영래드의 [ Alien]을 꼽아 옛 수재자 데빈 타운센드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으며, 미모의 보컬리스트 사이먼 시몬(에피카)은 시스템오브다운의 [Mesmerize], 힘(HIM)의 [Dark Light]등을 올해 최고로 손꼽았다.

한편 자신이 내놓은 작품을 올해 최고의 앨범으로 꼽는 과감한 배짱(?)을 보인 뮤지션들도 많았는데 감마레이의 카이 한센, 아취에너미의 마이클 에못, 엑소더스의 게리 할트, 킹스엑스의 덕 피닉, 노장 기타리스트 마이클 쉥커가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마이클 쉥커는 동료 뮤지션들의 앨범도 함께 꼽아준 다른 이들과 달리 자기 밴드의 작품 [Tales of Rock'n Roll 25 Years Of MSG] 하나 만 언급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만만치 않은 노익장을 과시했다고.

111명 뮤지션들이 꼽은 전체리스트는 위플래쉬의 해당 페이지를 방문해 모두 확인할 수 있다.

- "네티즌의 음악평, 음반정보가 있는 곳" 창고닷컴 changgo.com -

http://www.changgo.com/changgo/n_news.n_view?a_genre=100&a_news_date=2005-12-21&a_news_no=1&a_page=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www.namool.com/ 나물이네

 

두부를 한판 두루치면 두부의 씹히는 식감이 유별나지요.. ^^

소주한잔 할 때도 좋고, 덮밥으로 먹어도 좋은 대전의 향토음식 두부두루치기 입니다.. ^^






두부(¼모), 돼지고기(목살 ½줌), 애호박(1줌), 양파(1줌)은 깍뚝썰기하고,

대파, 청양고추, 홍고추도 썰어 준비하고.. ^^
.

.
.


돼지고기는 양념장에 넣어 버무리고.. ^^

고추장(1) + 고춧가루(1) + 설탕(1) + 맛술(1) + 진간장(1)
+ 다진마늘(1) + 생강가루(0.3) + 후춧가루
.
.
.
.


팬에 식용유 넉넉히 두르고 두부를 튀기듯 지져서 따로 두고.. ^^
.
.
.



팬에 식용유(2) 두르고 양념한 돼지고기 넣어 볶아주고.. ^^
.
.
.
.


양파, 애호박, 청양고추, 홍고추, 대파 넣고, 남은 양념장 마저 넣어 볶아주고.. ^^
.
.
.
.


물(⅓컵) 넣어 자작자작 끓이다가, 지진 두부 넣어주고, 참기름 약간 하고 마무리.. ^^
.
.
.
.


짜잔.. 나물이표 두부두루치기 완성.. ^^
.
.
.
.


씹히는 식감이 유별나다니까요.. ^^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udan 2005-12-21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나무젓가락은 namu님 음식사진에도 등장한건데. 색이 좀 다른가.
처음엔 얼블루님이 만드신건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음식사진은 그렇다치고, 식감. 두부를 두루치다. 소주 한잔. 이런 말때문에.

urblue 2005-12-2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은 디테일에 강하군요. 젓가락, 칼, 이런 거 눈여겨 보시나봐.
소주 한잔, 저한테서는 절대 안 나올 말입니다. ㅎㅎ
당연히 퍼 온 건줄 알겠지, 했는데. 음.

하늘바람 2005-12-2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건 먹어줘야겠군요^^

blowup 2005-12-2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부 두루치기를 해보겠다 했더니, 나물이네서 요리 과정 컷을 가져다 주신 건가요?
그리고 보면 소스만 좀 다르지 마파 두부랑 많이 비슷하네요.

히피드림~ 2005-12-2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료도 구하기 쉽고 만드는 법도 간단하네요. 우리 아기아빠가 두부두루치기 엄청 좋아하거든요. 곧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urblue 2005-12-2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unk님, 심지어 제가 성공했다는거 아닙니까! 게다가 맛도 훌륭했다구요! ^^;;

namu님, 제가요, 한번 해 본 음식이라도 조리법을 거의 기억 못합니다. 매번 봐야지 만들 수 있어요. 흑흑. 마파 두부는 실은 먹어본 적도 없으니 뭐 어떻게 만드는지도 전~혀 모르지요. 또, 흑흑.

검은비님, 전 두부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최근에 저 두부 두루치기랑 두부 스프랑 등등으로 좀 먹게 되었어요. 전엔 몰랐는데 제법 맛있네요. ^^

하늘바람님, 통째로 밥에 올리면 덮밥이 된다는군요. 한번 해 보셔요.

urblue 2005-12-22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이봐요, 너무하자나... -_-;

hanicare 2005-12-2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맛있는 거라면 눈이 반짝! 퍼갑니다.

urblue 2005-12-2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