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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통령의 한미 FTA 공부의 이론적 편식
저 자 이근
출 처 미래전략연구원
발간일 2006/08/14
출간형태 보고서
종 류
 
목 차
1. 한미 FTA를 비판하는 이론은 종속이론밖에 없나?
  [전략무역정책 이론(Theory of Strategic Trade Policy)]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과 신성장 이론(New Growth Theory)]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
  [이들 이론이 한미 FTA에 비판적인 이유]
2. 종속이론이 틀린 것이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해 주나?
3.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비주류이론이 반드시 틀린 이론인가?
4. 제3의 모델: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이 무엇인가?
5. 결론
요 약
노대통령의 언급을 통해서 나타난 현 정부의 한미 FTA 정당화 논리는 상당한 이론적 편식과 잘못된 논리 및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공부의 편식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회현상은 서로 다른 부문과 영역의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호연결관계를 파악하는 학제적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막연하게 전문가 집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참여정부가 걸려든 덫이라고 보인다.
본문내용
참여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은 정말 이론적으로 면밀한 검토와 탄탄한 기반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인가? 참여정부의 최근 국제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사실적 이해가 정확한 것인가?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미 FTA 비판 세력을 역으로 비판하며 대통령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한미 FTA (일반론으로서의 FTA가 아닌)에 대한 철학과 이론적 이해,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 등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다 이론적, 분석적으로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자료, 혹은 단서들을 제공한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자료와 단서를 이용하여 서두에 제기한 질문에 답하면서 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하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대통령의 이론적, 논리적 오류, 그리고 공부의 편식에 대하여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한미 FTA를 비판하는 이론은 종속이론밖에 없나?

대통령은 진보세력도 변해야 한다며 한미 FTA 반대세력은 시대착오적인 (대통령 스스로도 공부해 보았던) 종속이론을 가지고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이 언급은 잘못하면 한미 FTA를 비판하는 이론이 종속이론밖에 없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또 한미 FTA 반대세력은 모두 종속이론밖에 모르는 진보세력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를 반대, 혹은 비판하는 이론은 소위 진보적인 종속이론 이외에도 보수적인 경제이론이 무수히 많이 있다. 필자의 한미 FTA비판도 종속이론이 아닌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전략무역정책 이론(Theory of Strategic Trade Policy)]

우선, 이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시절 대외무역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전략무역정책이론"이 있다. 당시 공공연하게 "관리무역(managed trade)"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클린턴 정부의 대외무역정책은 NEC(National Economic Council)의 의장이었던 로라 타이슨(Laura Tyson)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전략무역정책이 그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요즈음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한 천재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한 때 열렬히 주장하고 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등을 돌린 이론이 바로 전략무역정책 이론이다. 이 이론은 당시 잘 나가던 일본의 경제적 성공(economic performance)을 설명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인데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하여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의 유용성과 국가의 전략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한미 FTA와 관련된 내용은 다른 이론과 함께 뒤에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과 신성장 이론(New Growth Theory)]

한미 FTA를 반대 혹은 비판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두 번째 이론은 소위 말하는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이다. 이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논리로 자유무역의 기초인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의 신성함을 깨는 이론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폴 크루그먼이 자기가 여태껏 공부한 경제학이 나중에 알고 보니 "경제지리학"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던 바로 그 학문이다. 경제지리학과 더불어 순수한 자유시장경제 이론을 비판하는 또 다른 경제이론이 소위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or Endogenous Growth Theory)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좋아하는 혁신(innov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으로서 내생적 혁신이 성장을 이끌어 내는 것을 설명한다.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

한미 FTA 비판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또 다른 이론은 대통령이 비판한 일본식 모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른바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이론으로서 후발 국가(late developmental state)들은 자유시장 경제(Laissez Faire Economy)보다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주도형 경제개발로 선발 국가를 따라잡는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한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학자가 독일의 Gerschenkron, 일본의 경제성장을 설명한 Chalmers Johnson(일본 통산성 MITI를 가지고 일본의 경제성장을 설명한 것으로 유명한 학자) 등이다.

한편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미 통설과 같이 알려져 있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경제사를 많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간과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국제정치경제사를 보면 후발 국가는 대부분 일정 기간의 보호무역을 통하여 자국의 주요한 산업의 경쟁력을 키운 다음 시장을 개방하는 패턴을 보였다는 것이다.(이는 전략무역정책, 신성장이론 등과 상당부분 부합한다). 영국에 대하여 후발주자였던 프랑스, 독일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FTA를 하려고 하는 미국도 보호무역을 통하여 19세기 말 패권국가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국제경제사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는 개방을 통하여 경쟁력이 생겨나는 것인지, 경쟁력이 생겨난 후에 개방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순서(sequence)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 이론이 한미 FTA에 비판적인 이유]

전략무역정책이론을 위시하여 순수 자유시장경제 이론을 비판하는 경제이론 등이 한미 FTA를 비판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 국가의 주요 산업, 특히 서비스 산업을 포함한 미래의 성장동력은 소위 말하는 규모의 경제(scale economy)를 가진 산업들이다(하이테크 산업뿐만이 아니라 금융, 서비스 산업도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들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패턴은 다음과 같다. 일단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된 큰 시장을 확보하고, 여기서 시행착오를 거치지만 남들보다 먼저 다량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거쳐 다른 국가보다 먼저 경쟁력을 갖게 되고, 그런 다음 세계 시장에서 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당히 많은 경우 국가의 이런 저런 형태의 지원이 들어간다. 산업정책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지원을 했거나, 자국시장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으로 지원을 했거나, 닫혀 있는 다른 국가의 시장을 열어 초기에 큰 시장을 확보하는 지원을 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국내의 민-관-학 혁신체제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거나 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시장 조건이 자연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미국보다는 우선 자국시장의 보호와 한국보다 경쟁력이 없는 제 3국의 시장에서 learning by doing의 효과로 경쟁력을 제고하고, 그 이후 세계시장에서 선진국과 경쟁하여야 하는데, 한미 FTA는 오히려 순서가 거꾸로 가는 전략이다. 역으로 미국의 전략에 이용당하는 순서이다.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NAFTA를 체결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의 미래성장 동력인 하이테크 산업(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음)으로 하여금 전략무역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이미 나와 있다. 즉 초기 보호된 혹은 유리한 일정규모의 시장 (미국 + 캐나다 + 멕시코)을 확보하도록 하여 경쟁력을 제고하고, 그를 통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국내정치적인 로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들은 비교우위의 이론과 달리 소위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을 하게 된다. 즉 미국이 프랑스에 자동차를 팔고 프랑스가 미국에 포도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모두 서로의 시장에서 자동차를 파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경제지리학의 이론에 의하면 경쟁력이 꼭 자유무역을 통한 경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적으로 발생한 경쟁력이 경로의존적(path-dependency)으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재생하게 된다. 실리콘 밸리의 경쟁력은 비교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서 나온 것이며, 한번 생겨난 경쟁력 때문에 이곳으로 반도체 및 하이테크 산업이 모이고, 따라서 이들 산업의 경로 의존성이 생겨난다. 이는 자유시장(Laissez Faire Economy)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함께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표준(standard)이라는 개념이다. 경제에 있어서 표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IBM PC와 Apple 컴퓨터 간의 경쟁과 비디오 미디어 시장에서 VHS와 Beta Max간의 경쟁, 그리고 타자기의 자판 등이다. IBM PC 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우월한 Apple 컴퓨터(맥킨토시 컴퓨터)가 빌 게이츠의 MS 운영체계를 깔은 IBM PC의 표준에 밀리는 바람에 경쟁에서 밀려나는 사건이 그 하나이고,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우월한 Sony의 Beta Max라는 비디오 포맷이 VHS의 표준에 밀리는 바람에 비디오 미디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다른 예이다. 타자기 자판의 경우에는 현재의 영어 타자기의 자판 보다 훨씬 효율적인 타자기 자판이 있었으나 타자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타자기가 엉켜서 (자판을 두드리면 톡 튀어 나오는 손가락 같은 부분이 엉킴) 좀 효율을 떨어뜨린 순서의 자판이 현재의 영어 자판이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자판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 버려서 엉킴의 염려가 없는 컴퓨터의 시대가 되어도 자판의 순서를 바꾸지 못하는 경로의존성이 생겼다.

이러한 표준과 경로 의존성의 의미는 한번 표준 경쟁에서 지면 소위 표준의 네트워크 효과(network externality)가 생겨서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들어가서 공정하게 경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토이 스토리 등의 만화영화로 재기한 과거 Apple의 스티븐 잡스가 최근 ipod라는 mp3 플레이어로 부활하였으나 본래의 컴퓨터 시장에서는 아직 크게 시장점유율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퍼지는 소위 global standard라는 것도 문자 그대로 표준(standard)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global standard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global standard는 이른바 IMF-Wall Street-Treasury Complex라는 워싱턴에서 만들어진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불렸던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유주의 그로벌 스탠더드가 사실은 미국적 스탠더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유럽, 일본 등 세계를 비교정치경제학(comparative political economy)의 시각에서 보면 소위 신자유주의 스탠더드가 일반화된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님을 곧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적 글로벌 스탠더드를 일반화된 스탠더드로 인식하여 잘못 성급히 받아들이면 경로의존성 때문에 세계경제의 흐름이 또 다시 변화하게 될 때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갖게 된다. 한미 FTA는 산업 및 제도의 미국 표준을 한국에 이식하여 이의 경로 의존성을 만들게 된다. 당연히 여기서는 표준을 장악한 미국이 유리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다.

위의 이론들을 한국의 입장에서 응용하고, 전략을 세운다면, 한국이 추진할 FTA 상대의 순서는 당연히 미국이 상당히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 전략무역이론, 경제지리, 신성장이론 등이 FTA에 주는 시사점은 자국의 미래성장동력을 일정기간 비교적 보호된 자국시장 혹은 지역시장(regional market)에서 Learning By Doing을 통하여 성장시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지역시장에서 자국 산업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이와 동시에 자국의 표준을 깔아 경로의존성을 만드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표준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패턴을 따른 전형적이 예라고 생각된다. 에너지 절약형, 디자인 중심형, 브랜드 공략형 일본 자동차 산업은 표준까지 깔아나가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삼성의 와이브로는 세계시장에 표준을 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가 크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 미국은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을 FTA를 통하여 진출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금융, 서비스 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서 미국식 제도의 표준을 까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 소송제도도 이러한 무서운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하면 여기서 한국 금융 서비스 산업이 위에서 예로 든 Apple 컴퓨터나 Sony의 Beta Max의 운명을 겪거나, 미국 산업에 흡수되게 될지도 모른다. 즉 한국이 키우고자 하는 미래의 성장동력이 가장 먼저 미국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미 FTA에서 농업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가 바로 한국 금융, 서비스 산업의 운명이다.

과거 냉전과 GATT 체제에서는 개도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산업정책을 통하여 자국 산업경쟁력을 키우고, 그 이후에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였지만 WTO체제에서는 이러한 보호와 산업정책의 여지가 상당히 줄어들었고, 이제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금융, 서비스, 지식산업으로 넘어가면서 특히 지적재산권, 투자, 서비스 등에 있어서 매우 강력한 시장개방 조치가 취해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WTO 협상이 Doha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자적 시장개방보다는 양자적 시장 개방인 FTA를 통하여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세계시장에 진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간의 무역분쟁을 보면 일본이 일본 시장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시장 점유율을 몇 년도 몇 월까지 얼마로 올려놓지 않으면 무역 보복을 하겠다는 수치목표까지 정해주곤 하였다. 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작금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이론들이 제시하는 또 다른 시사점은 한국이 FTA를 추진할 때 전략적인 시장 개방의 속도와 순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은 일찍 열고,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미국보다는 열세에 있는 중국이라는 큰 시장, 혹은 제3세계의 시장을 선점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에 표준을 깔아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스크린 쿼터를 이 시점에서 축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이다. 무턱대고 미국과 경쟁하면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은 많은 경제이론 중 하나의 주장일 뿐이고, 그렇지 않다는 위험성이 경제사를 통하여 무수히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3세계와 FTA를 해봤자 관세가 낮아지는 것 이외에는 이득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은 곧 FTA와 관련한 다양한 이론적 검토와 공부를 안 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발언이다.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 졌지만 이상의 요지는 한미 FTA를 비판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이론은 종속이론이 아닌 경제학 이론과 경제사에서 풍부하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미 FTA에 반대할 이론적 근거로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도 있으나 종속이론과 같이 Marxism에 뿌리가 있어서 생략한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Fordism, Keynesianism, Taylorism으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또한 선도산업의 부침 싸이클 개념을 도입한 슘페터, Mensch 등의 싸이클 이론도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으나 논의가 복잡해지는 관계로 생략한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성향의 지식인과 운동가들이 종속이론에 나오는 용어들을 주로 사용하는 바람에 FTA 논의가 정치화되는 왜곡이 생겨나 버렸다. 이러한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말 중 진보가 변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즉 현시점에서 진보도 상대방과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2. 종속이론이 틀린 것이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해 주나?

필자가 미국에서 정치경제를 공부할 때 미국의 정치경제학은 종속이론이 틀리다는 것을 이론적,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커리큘럼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필자도 동아시아의 신흥개도국(소위 NICs 혹은 NIEs로 표현된다.)을 사례로 종속이론을 비판하는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편이다. 그런데 이 때 배운 종속이론이 틀린 이유는 참여정부가 이해하고 있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유추할 수 있는) 또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정당화하는 논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종속이론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국가, 혹은 정부의 경제에서의 역할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경제개발을 추동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유능하고, 청렴한 관료, 정부의 정보획득 능력, 재벌의 독특한 지배구조 및 노동시장, 국가주도형 금융시스템, 이에 결합된 교육 및 저축 열, 중산층을 위주로 한 비교적 공평한 부의 배분 등이 동아시아 신흥개도국, 특히 한국이 종속이론의 예언에서 벗어나도록 한 주요한 이유로 거론된다.

자유시장(Laissez-Faire Economy)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은 당시 이들 국가의 경제발전이 국가의 역할보다는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다가 1997년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이들의 경제발전은 국가의 개입과 소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가능했지만 그것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이론을 금융위기 이전 시기에 한정하여 인정하는 듯한 입장 선회인데, 이에 대한 지적은 그리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여하튼, 한국이 종속이론이 예언한 것과 같이 되지 않은 것은 국가가 개입하였고, 정실자본주의라고까지 불릴 만큼 독특한 정부-자본-노동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신자유주의자들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독특한 한국 경제의 시스템은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 및 WTO체제로 인하여 작동하기 매우 어려워 졌다.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되는 것이며, 더욱이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 정부의 역할은 소위 말하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구축하는 것 이상으로 커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논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국가의 역할"부문이다. 종속이론이 틀린 이유가 바로 "국가의 역할"때문이라면 종속이론을 비판하면 오히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종속이론이 틀렸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을 거의 죽여버리는 "신자유주의"로 가자는 앞뒤가 안 맞는 논리가 나온다. 이는 종속이론이 틀린 것하고 한미 FTA추진하고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이 말하는 매우 잘못된 논리적 오류이다.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강조하려면 "국가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여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한미 FTA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시키는 좌파 신자유주의가 아니던가.

또한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 국가의 역할이 문제가 있다는 경제담론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퍼지고 있으나 앞에서 소개한 "전략무역정책이론", "경제지리학", "신성장이론" 등과 신자유주의 간의 싸움은 결판이 난 싸움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비교적 양심적인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전 세계은행 부총재, 노벨경제학상 수상)와 제프리 삭스에 의해서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지금 참여정부가 종속이론을 문제 삼는 것은 한미 FTA 반대 주장에 대한 정치적인 공세일 뿐, 진지한 이론적, 경험적 근거에 기반한 반격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참여정부는 한국 및 아시아의 신흥개도국에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가지고 한미 FTA를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다.


3.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비주류이론이 반드시 틀린 이론인가?

참여정부의 경제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엘리트 관료들은 미국에서 이러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오고, 또 세계 경제학계를 이러한 담론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고시의 경제학 시험문제도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멕시코의 경제관료들과 한국의 경제관료들의 경제관은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예전에 이를 비판하는 용어로 "Chicago Boys" (Chicago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을 받은 제3세계의 경제관료)라는 말도 있었다.

전문적인 경제지식에 문외한인 참여정부의 정치 전문가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른 이론들은 다 학계에서 인정을 못 받는 비주류 이론들 아닌가? 왜 우리가 그러한 이론을 검토하고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한미동맹, 전시작전통제권, 북핵문제에 대한 주류의 이론과 사고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다 나와 있다. 꼭 주류 이론만을 따라야 한다면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소위 말하는 조, 중, 동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외교 안보 부문에서 추진하는 것은 비주류의 이론과 사고에 근거한 정책들이다. 이들 이론과 사고는 매우 위험하고, 현실에서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공격받고, 또 주류 학계의 잡지와 회의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즉 주류 외교안보 담론에서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이론과 사고는 왕따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자신들의 외교안보 정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이론적, 경험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위에서 소개한 이론들도 그러하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한미 FTA를 지지하는 이론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대학교 다닐 때 "과학철학" 과목 혹은 "사회과학 방법론" 과목을 하나만 들었어도 주류 담론, 혹은 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사회학적 이론을 알고 있을 것이다. 패러다임은 다수가 장악하는 것이지 다수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외교안보 문제와 경제문제를 접근하는 태도와 수준이 전혀 다르다. 외교안보문제는 그래도 다양한 사고와 검증을 해본 수준이고, 경제문제는 공부의 편식을 한 수준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좌파 신자유주의"는 공부부족을 실토하는 것이지 뭔가 대단한 역발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일관성이 없고, 아마추어 같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참여정부가 주장하는 외교안보와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제정치의 설득력 있는 비주류의 이론과 담론도 무수히 많다.)

요약하자면, 참여정부는 외교안보 사안보다 훨씬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주류 담론을 장악한 전문가들에 의지하게 되고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을 따라가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이러한 전문가들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을 이론화한 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인식공동체 이론(epistemic community, 필자는 이를 인식 공유체로 부른다. 왜냐하면 이들 전문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이다. 지금 참여정부는 이들 경제분야의 인식공유체에 딱 걸려들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전문적인 분야라서 다양하게 공부하고, 검토하고,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는 참여정부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준비된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정권에서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항상 이런 일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하는 이들 인식공유체(통상교섭본부, 경제부처의 경제관료 등으로 구성된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의 주장을 종교적으로 믿고 따라가지 말고 좀 더 엄밀하고 정교하게 검증하고 따져보아야 한다. 장하성 교수의 주장처럼 경제정책은 신념에 의해서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반 시장적인 것이다. 또 나라의 경제를 도박과 같이 한번 이쪽에 걸어보겠다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위험한 짓이다. 끝까지 연구하고 검토해 보고,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지, 감이 이쪽이니까 이쪽에 베팅하겠다는 식으로 도박을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다.


4. 제3의 모델: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이 무엇인가?

대통령은 제3의 모델로서 일본모델 + 싱가폴 모델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한미 FTA를 통해서 어떻게 이러한 모델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림을 그려서 국민들에게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었을 뿐더러 (준비부족을 의미함) 한미 FTA를 통하여 이것이 가능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싱가폴 모델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도 상당히 의문시 된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싱가폴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제조업의 비중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정부의 힘이 매우 강한 일당 지배의 권위주의 국가이다.).

싱가폴 모델(혹은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의 문제점을 따지게 되면 내용이 또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한미 FTA가 어떻게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을 가져올 수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질문을 하는 정도로 넘어가고자 한다. 다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도시국가인 싱가폴 모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 것인지는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일본식 모델 + 싱가폴 모델은 전혀 신자유주의적인 모델이 아니다. 싱가폴의 국가부문의 개입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고 또한 일본의 기존 제도의 견고함에 대해서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이해와 달리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하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전체 미국 대륙을 하나의 거대한 자유시장으로 묶으려는 FTAA라는 것을 추진해 왔는데, 얼마 전 브라질을 위시한 중남미 국가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특히 브라질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브라질 고유의 경제구조를 미래의 성장산업과 연결시키는 새로운 모델을 시험하고 있다. 즉 브라질 농업과 에너지, 환경산업을 연결하는 Agro-Energy프로젝트가 그 한 예이다. 브라질에서 풍부한 사탕수수를 가지고 에탄올 에너지를 가공하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표준의 농업 및 에너지 산업을 브라질이 주도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이는 브라질 농업의 구조전환과 미래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석이조의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브라질은 인도, 중국, 일본 등과 동부문에서 협력을 심화하는 경제외교에도 열심이다. 아직 성공할지 실패할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브라질의 프로젝트는 앞에서 소개한 소위 비주류 경제학 이론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매우 전략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키워내는 제3의 모델과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러한 단편적인 예를 가지고 제3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창조적인 생각을 해 내야 한다는 점에서 브라질의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5. 결론

노대통령의 언급을 통해서 나타난 현 정부의 한미 FTA 정당화 논리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당한 이론적 편식과 잘못된 논리 및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사실을 어떠한 이론적 틀에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게 보는 것이냐의 문제로 연결된다. 사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공부의 편식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회현상은 서로 다른 부문과 영역의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호연결관계를 파악하는 학제적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막연하게 전문가 집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참여정부가 걸려든 덫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주장하는 "통합적 사고"를 하는 지식인을 길러내는 것이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사고에서 국가전략이 나와야지, 아무런 전략 없이 그저 개방만 하면 된다는 기계론적 이론의 적용은 국가의 불행으로 연결될지 모른다. 한미 FTA를 이대로 무작정 추진하지 말고 참여정부 내부에서 좀 더 따져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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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루브르박물관 전’ -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루브르 걸작’ 서울 나들이
입력: 2006년 10월 10일 17:57:57
 
프랑수아 부셰의 ‘목욕하고 나오는 다이아나’(위), 카미유 코로의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의 정원’.
서양 회화사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걸작들이 대거 한국을 찾는다.

국내 첫 루브르박물관 소장품 전시회로 미술 교과서나 각종 교양서 등에 언급된 작품들도 상당수 포함돼 관심을 끈다.

-한·불수교 120돌 기념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은 재개관 1주년과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오는 24일부터 기획전시실에서 ‘루브르박물관 전’이란 특별전을 연다고 10일 밝혔다.

‘16~19세기 서양 회화 속의 풍경’이란 부제의 전시회에는 들라크루아, 코로, 부셰, 제라르, 푸생, 밀레, 고야 등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 51명의 작품 70여점이 선보인다. 작품들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란 큰 주제 아래 신성한 숲, 환상과 숭고미, 화가들의 이탈리아, 초상화와 풍경 등 8개의 소주제를 통해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전한다.

이번 전시회 포스터 장식으로 낙점된 작품은 제라르의 ‘프시케와 에로스’. 신의 날개를 단 신화 속의 에로스와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 한 마리 아래의 프시케가 입맞춤하는 걸작이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격노한 메데이아’도 나온다. 남편 이아손의 배신에 복수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는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담은 화면은 긴장감이 가득하다.

-서양미술사 대표작품 70여점-

제라르의 ‘프시케와 에로스’(왼쪽), 외젠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

또 18세기 서양미술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 프랑수아 부셰의 ‘목욕하고 나오는 다이아나’, 자연의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넘쳐나는 코로의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의 정원’, 신성함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니콜라 푸생의 ‘성가족이 있는 풍경’, 노동하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전하는 밀레의 ‘건초 묶는 사람들’ 등도 출품된다.

중앙박물관 측은 “양국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작품을 선정했다”며 “16~19세기 400년간 서양 풍경화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드러난 작가들의 감성,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관계 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개막식에는 앙리 루아레트 루브르 박물관장이 참석하며, 24일 오후 4시 박물관 대강당에서는 ‘서양 미술 속에 나타난 풍경’이란 주제의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박물관 측은 내년 3월18일까지의 전시기간 중 어린이와 일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전시 설명회 등도 운영할 계획이다. 관람료는 일반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이다. (02)2077-9263

도재기기자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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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간송미술관 추사특별전


15-29일 간송미술관 추사특별전


추사 김정희(金正喜ㆍ1786-1856)의 150주기를 맞아 곳곳에서 추사 전시가 한창이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로 불리는 성북동의 간송미술관도 올 가을 정기전시(10.15-29)를 '추사150주기기념특별전'으로 꾸며 추사 전시 대열에 합류했지만 내용은 차별성이 있다.

추사의 청년기부터 말년까지 추사체의 형성과 변모, 완성 과정을 훑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글씨는 물론 추사가 그린 문인화, '글로벌'한 예술인이었던 추사의 영향을 받아들인 국내와 중국 예술인들의 작품까지 100여점이 한꺼번에 전시되기 때문이다.

추사와 관련된 자료나 기록, 후대의 해설이나 연구 업적 등은 제외하고 오롯이 작품만을 모은 이번 전시는 사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간송의 올 봄 정기전에 이어 또다시 공개되는 '명선(茗禪ㆍ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은 현존하는 추사 글씨 중 가장 큰 글씨로 꼽힌다. 추사가 초의 선사가 보내준 차를 받고 감격해 써준 대형 예서(隸書) 휘호다.

추사의 또다른 대형 예서 '사야(史野ㆍ세련되고 조야한 멋)', 71세로 사망하기 두세달전 절필 직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서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ㆍ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도 대표적인 전시품이다.

이들 이외에도 추사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30대 중반에 쓴 대형 행서, 간찰첩 형식으로 된 작은 글씨 등 서법을 넘나들며 붓을 자유자재로 놀린 추사 글씨의모든 것을 보여주는 대표작들이 나온다.

추사가 스물넷에 만나 스승으로 삼았던 중국의 금석학자 옹방강(翁方綱ㆍ1733-1818)이나 제자 섭지선, 왕여한 등의 글씨와 그림을 통해서는 스승을 뛰어넘은 추사의 독창성을, 추사와 벗하면서 평생 추사를 모방한 권돈인(1783-1859), 신위(1769-1847)의 작품에서는 추사가 당대 조선 문화예술계에 드리웠던 큰그늘을 짐작할 수 있다.

글씨 이외에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난(蘭)을 즐겨 그렸던 추사의 '난맹첩(蘭盟帖)'도 23면 중 10면이 공개된다.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갈필로 슥슥 그린 문인화 '고사소요(高士逍遙)'도 볼거리다.

어려서 추사의 문하에 들어갔던 제자 이한철(1808-1880)이 추사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그리기 전에 원본으로 그렸던 '완당선생초상'도 간송의 수장고에서 나와 따스한 미소를 뽐낸다.

1972년 간송미술관의 제2회 정기전에서 추사 김정희전을 처음 연 뒤 30여년간 간송미술관에 몸담으며 추사를 연구한 최완수 연구실장은 추사 글씨의 아름다움은 서투름, 즉 졸박한 맛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최실장은 "추사는 글씨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썼지 글로 생각하고 쓴 것이 아니다"라며 "추사는 난초 그림도 늘 '예서 쓰듯 난을 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최실장은 "추사를 직접 사사한 조희룡이나 허련 등은 추사를 방불케하는 작품을남겼지만 그 후대에는 추사의 본모습을 따르지 못했다. 이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언뜻보면 서투르게 쓴 듯한 추사의 글씨에는 과거 서예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금석학에 대한 공부내용이 녹아있어 이를 따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추사 작품은 겸재 정선의 작품과 함께 간송미술관의 대표적인 수집품이다. 최실장은 "간송 전형필 선생은 추사보다 120년뒤에 태어난 같은 병오(丙午)생으로 평생을 바쳐 추사와 주변 인물의 작품과 주변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했다"고 말했다. ☎02-760-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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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프랑스 사진전 2편


사진의 종주국 … 눈길 끄는 프랑스 사진전 2편 [중앙일보]
예술가들의 일상
끌레그가 잡은 피카소·달리·장 꼭도
눈에 익은 명장면
브레송·호니 등이 찍은 20세기 걸작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요즘 국내 미술계에 프랑스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전시가 속속 기획되고 있다.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처음 생겨났고, 이후 걸출한 사진작가를 배출한 사진 종주국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전시 두 편이 나란히 문을 연다.


아기를 품에 안고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파블로 피카소, 기타 연주를 들으며 알 듯 모를 듯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 살바도르 달리…. 20세기 예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피카소.달리.장 꼭도 인물사진전'(28일부터 10월 24일까지.김영섭사진화랑.02-733-6331)은 프랑스의 유명 사진작가 루시앙 끌레그의 렌즈에 비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전시다. 끌레그는 아를르국제사진축제를 세운 장본인으로 주로 누드사진 작업을 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도 그가 친하게 지냈던 예술가인 피카소, 달리, 장 꼭도 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며 촬영한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예술이라는 끈으로 연결됐다. 끌레그는 피카소와 40년간 우정을 나눴다. 피카소는 끌레그를 더 큰 무대로 진출하도록 힘을 북돋아주었고, 아방가르드 시인인 장 꼭도와 만남을 주선해 몇몇 작업에서 협업을 하기도 했다. 30여 점의 사진 속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장 꼭도, 퍼포먼스를 벌이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달리를 보다 보면 어느새 인간미 넘치는 예술가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사진전문갤러리인 갤러리 뤼미에르가 선보이는 '프랑스 사진명작 전'(10월 29일까지.02-517-2134)은 프랑스에서 한창 사진으로 주가가 올랐던 190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다. 작품 모두 갤러리 뤼미에르의 소장품들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윌리 호니.만 레이.유진 아제 등 이름만 들어도-아니 이름은 모르더라도 작품은 눈에 익은- 친숙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와인병을 끼고 걸어가는 소년(브레송), 바게뜨 빵을 옆구리에 끼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아이(윌리 호니) 등 가족과 이웃의 일상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유진 아제는 텅 빈 파리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1930년대 파리가 도시 전체를 리노베이션 하면서 시민이 모두 도시를 떠난 후 건물만 덩그러니 남은 파리는 생경한 느낌을 준다.

이외에도 기록상 한점만 남아있다는 윌리 호니의 '와인재배자, 지롱드'(웨이트리스가 와인을 따라주는 장면 사진)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작품은 현재 9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박지영 기자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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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9-2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전출처 : 로쟈 > 페트루솁스카야의 <복수>

재작년 모스크바 통신에 러시아 단편들을 두어 편 번역해서 올려놓은 바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페트루셉스카야의 <복수>를 이미지 버전으로 옮겨놓는다. 국내에도 일부 단편과 드라마가 번역돼 있는 작가 류드밀라 스테파노브나 페트루솁스카야(뻬뜨루셰프스까야)는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여성작가이다. 1938년생이고, 모스크바대학의 언론학부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극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은 인간관계에서의 소외 현상과 비정함, 그리고 잔혹성에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1960-9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10명 안에 꼽힌다(아동문학작가이기도 하다).

출간된 그녀의 작품집들을 여러 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아직 잘 정돈된 전집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3쪽짜리 단편 하나 읽을 거 가지고 크게 떠들 일도 아니어서(나는 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었지만, 직접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소개는 이 정도에 그치도록 한다. 참고로, 문단은 원작과 일치하지 않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에는 작품에 대한 나의 ‘읽기’가 얼마간 반영돼 있다(모든 번역은 원작을 얼마간 ‘구부리기’ 마련인데, ‘왜곡’과는 구별되는 이 ‘구부리기’는 번역의 불가피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엔 괄호 안에 *표시를 하고 역주를 달았다.



한 여자가 혼자서 애를 키우는 이웃여자를 증오했다. 아이가 자라서 점점 온 집안을 뛰어다닐 때쯤 되자, 이 여자는 전혀 고의가 아닌 듯이, 복도 바닥에 끓는 물이 담긴 양동이나 가성소다(*양잿물)가 든 물통을 놓기도 하고, 복도 바로 앞에 바늘곽을 떨어뜨려놓기도 했다. 불쌍한 아이 엄마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딸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하는 데다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복도로는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방에서 널찍한 복도로 저 혼자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이웃여자에게 아이가 다닐 만한 길목에 물통이 놓여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혹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라에치카, 당신은 또 바늘곽을 흘렸더군요.” 그러면 이웃여자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정신머리가 없어서 그랬노라고 푸념했다.

한때 그들은 절친한 친구였다. 그럴 만한 것이 그들은 방 두 개짜리 집에 같이 사는 독신여성들이었다(*방 두 개는 각자가 쓰고, 복도나 화장실 등을 같이 쓰는 러시아식 가옥 형태이다. ‘집’이라고 옮겼는데, 대개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이다). 그들에겐 많은 것들이 공동의 것이었으며, 심지어 손님들도 공동의 손님이었다(*한쪽에 손님이 오더라도 같이 먹고 놀았다는 얘기다). 생일날이면 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 어느새 잔뜩 부른 배를 하고 다니게 되자, 라야는 그녀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증오하기 시작했다(*‘지나’와 ‘라야’가 두 여자의 이름이다. ‘지나이다’ ‘지노치카’ 등이 ‘지나’의 별칭이며, ‘라이사’ ‘라샤’, ‘라에치카’ 등이 ‘라야’의 별칭이다).

그녀는 순전히 증오 때문에 병이 나기 시작했으며,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에겐 벽 너머 지나의 방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내내 들려오는 듯했고, 지나가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말소리와 노크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나는 반대로, 라야에게 전보다 더 애착을 느꼈다. 심지어 하루는 그녀에게 말하길, 자신에게 큰언니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 때에라도 결코 자신을 내버리지 않을 큰언니.

라야는 실제로 지나가 출산준비물을 바느질하는 걸 도와주었고, 때가 되자 그녀를 조산원에 데려다 주었지만, 단 한번도 산모와 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직역하면 “갈 수가 없었다”이다). 때문에, 지나는 하루 더 조산원에서 아무런 출산준비물 없이 앉아 있다가 결국, 반환 약속을 하고 누더기 같은 관용 모포에다가 아이를 감싸서 데리고 왔다(*라야가 출산준비물을 갖다 주지 않은 것이다. ‘관용 모포’란 표현에서 지나가 사설 조산원이 아닌 국영/관영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걸 알 수 있다.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카테리나가 딸을 낳은 조산원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라야는 아파서 못 가봤다고 변명을 했고, 내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단 한번도 지나를 위해서 상점에 가지 않았고, 그녀가 물건을 사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어깨에 찜질 같은 걸 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지나가 아이를 손으로 안고 목욕탕에 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와서 한번 보란 듯이 내내 방문을 열어놓고 있었어도 아이를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지나는 미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일거리를 바꾸었고, 재봉틀에 익숙해졌다. 그녀에겐 친척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웃 사촌이란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사실상 그녀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으며,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고, 혼자서 짐을 날라야 했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지나는 아이를 재운 다음에 일거리를 날라왔고, 혼자서 노임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딸아이가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좀더 크게 되자 일이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지나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라야는 자신의 어깨 관절에만 고집스레 매달렸고, 심지어는 그 때문에 병원에 입원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잠깐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지나로선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라야는 아이를 죽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점점 자주, 버둥대는 아이를 양손에 안고서 복도를 다니면서(*복도에 위험한 것들이 있어서), 지나는 부엌 바닥에 물컵인 듯한 게 놓여 있는 걸 보거나(*가성소다가 담겨있을 듯), 탁자에 뜨거운 찻주전자가 손잡이를 늘어뜨린 채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에겐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엄마라고 말해봐!”라고 말하면서 딸아이에게 항상 즐겁게 종알댔다. 하지만, 상점이나 직장에 나갈 때는 아이가 못나오게 가둬두고 다녔고, 이건 좋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라야는 극도로 화가 났다.

지나가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갔을 때, 방안에 있던 아이가 잠이 깨서는, 아마도 침대에서 떨어진 듯했다. 문쪽까지 기어와서는 울어댔다. 라야는 아이가 잘 걷지 못하고, 침대에서 떨어졌으며, 빽빽 울어대는 걸로 봐서 아마도 크게 다쳤고, 바로 문 앞에 누워있는 걸로 짐작했다. 라야는 더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탕에서 거기 보관하고 있던 가성소다 병을 가져와서 양동이에다 따르고는 복도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용액을 문 밑쪽으로 끼얹었다. 아이가 누워있는 쪽으로. 울음소리는 자지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라야는 복도바닥을 닦아냈다. 양동이와 수세미와 장갑까지 모두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는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왔다간 후에 그녀는 영화관에 갔다가 상점을 들러서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나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조용했다. 라야는 텔레비전을 한동안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나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라야는 도끼를 들고와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먼지투성이인 방안에서 침대 옆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과 문쪽에 있는 더 큰 핏자국을 보았다. 가성소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라야는 이웃여자의 방바닥을 닦아내고, 정돈한 다음에 흥분 어린 기대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일주일쯤이 지나자 지나가 돌아왔다. 그녀는 딸의 장례를 치렀고, 주야로 일하는 직장을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움푹 들어간 눈과 누렇게 뜨고 늘어진 피부가 그녀를 대신해서 모든 걸 말해주었다. 라야는 지나를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의 삶은 이제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 라야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지나는 주야로 하루를 일하면 온종일 잠을 잤다. 그녀는 마치 정신이 나간 듯이, 사방에다가 딸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라야의 병은 더 심해져서, 그녀는 팔을 들어올릴 수도, 걸어다닐 수도 없었고, 심지어 관절주사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의사들은 관절염이라고 진단했다. 사태는 더 나빠져서, 라야는 자신의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차를 끓일 수도 없었다(*러시아에서 차를 끓이기 위해서는 가스렌지를 켜고 성냥 등으로 불을 붙여야 한다. 우리의 갈비집에서처럼. 라야에게 그런 불을 붙일 힘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지나가 집에 있을 때는 그녀가 손수 라야에게 음식을 먹여주었다. 하지만, 지나가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일이 힘들다는 핑계를 댔다. 어깨의 통증 때문에 라야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나가 무슨 병원 같은 곳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한다는 걸 알고서, 라야는 그녀에게 모르핀 같은 강한 진통제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다. 지나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럼 이걸 더 많이 먹어야겠어. 나한테 30알만 세줘.>
<아니, 안돼.> 지나가 말했다. <내 손으로 죽게 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잖아.> 라야가 따지듯이 말했다.
<넌 그렇게 값싸게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지나가 말했다.
그때 환자가 초인간적인 힘으로 병을 입에 갔다 대더니, 이빨로 마개를 빼내고, 약을 몽땅 입에다 털어넣었다. 라야는 아주 오랫동안 죽어갔다. 아침이 밝아오자, 지나가 말했다.

<이제 잘 들어둬. 난 너를 속였어. 우리 레노치카(*딸의 이름)는 죽지 않았어. 아주 잘 뛰놀고 있지. 그 아인 탁아소에 있어. 나는 거기서 간호보조사로 일하고. 그리고 네가 문밑으로 끼얹었던 건 가성소다가 아니라 일반 식용소다야. 내가 바꿔놓았었지. 바닥에 있던 피, 그건 레노치카가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 난 코피야. 그러니까, 넌 아무런 잘못도 없어. 누구도 그것 때문에 너를 문책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도 잘못이 없어. 우린 서로에게 빚이 없는 거야.>

그리고 그때 그녀는 죽은 이의 얼굴에서 천천히 행복한 미소가 번져 나오는 걸 보았다.

 

 

 

 

04. 06. 03/ 06.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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