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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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력은 언제든 환영이다. 어떤 병이든 일단찾아들면 완치는 없다는 것이 내 몸이 깨달은 바다. 스물여섯 청년의 아픈 몸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면면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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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매일 시읽기 51일  

절망은, 없다 
- 황인숙 

장이 파할 무렵. 
번들거리는 판대기 위의 돼지족발에 앉아 있던 
희망이 500원어치씩 희망꾼들 안주로 
야금야금 삼켜지고 
그래도 잔뜩 남은 
희망이 다른 희망들과 함께 
보따리로 꾸려진다. 

꾸려진 희망들은 저마다 잠을 찾아가고 
안 꾸려진 희망들은 
정류장 근처에 몰려 아우성친다. 
beat it! beat it! 튀는 
덤핑 희망 카세트 노래에 맞추어 
희망이 도처에 넘치고 있다. 

하청받은 희망. 급조된 희망. 
수요 없는 희망. 정비 불량의 희망. 
공장도 가격의 희망. 썩어나는 희망. 
썩지도 못하는 희망. 
무단 복제 해적판 희망. 수입된 희망. 
S.F 희망. 금메달급 희망이 
진눈발과 함께 지분거리고, 

희망은 돼지족발 위에 앉아 있고 
500원어치씩 희망꾼들 끼니로 삼켜지고 
그래도 남은 희망은 
다른 희망과 함께 보따리로 꾸려지고 
그래도 안 꾸려진 희망은 
위생적인 어둠 속에서 
비위생적인 불빛으로 흐르고 
어떤 희망은 
일렬로 세워진 리어커 아래 
모로 쓰러져 잠이 들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 
그것은 흠뻑 정전기를 띠고
묻어나온다. 
희망은 막차 운전대 위에 앉아 있고. 


황인숙 시인의 첫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를 오늘까지만 읽기로 한다. 여전히 잘 읽히지 않는다. 이 시집에서 가장 발랄한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를 제외하곤 시들이 대체로 난해하다. 내 이해력이 고작 이 정도인가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 파도처럼 밀려오는가 싶다가, 위의 시 ‘절망은, 없다‘에서 그 파도가 쑤욱 밀려났다.^^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우리 대다수의 삶은 다 고만고만하다. 어릴 적엔, 또한 젊을 적엔(지금도 어르신들이 보는 나는 젊다) 뭐든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노력만 한다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건 이십대 중반에 깨달았고, 노려한 꿈이 좌절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서른 넘어 느꼈다. 뭔가를 희망한다면.

‘절망은, 없다‘에는 희망들로 넘쳐난다. 돼지족발 위에도, 덤핑 카세트 위에도, 막차 운전대 위에도. ˝하청받은 희망. 급조된 희망. / 수요 없는 희망. 정비 불량의 희망. / 공장도 가격의 희망, 썩어나는 희망/ 썩지도 못하는 희망./ 무단 복제 해적판 희망. 수입된 희망.˝

온갖 것에 ‘희망‘이란 딱지가 붙는 건 희망할 것이 거의 없다는 역설의 표지이다. 희망값은 500원. 500원치 희망은 그 양과 질이 어느 정도일까. 아주 거창한 희망은 아니지 않을까. 돼지족발을 안주 삼아 술잔 들이키는 이들의 희망이란 그저 삼 시 세 끼 잘 먹고, 자식새끼 잘
건사하고, 하루하루 500원이라도 모아 내 집 장만할 수 날이 아닐까.

‘희망 고문‘은 말 그대로 고문이 될 수 있다. 시칠리아 라는 섬이 있다.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끼어 있는 이 섬은 두 나라간 전쟁이 터질 때면 반드시 거쳐가는 정류장 같은 곳이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시칠리아는 두 나라의 잦은 싸움으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꼴이 되길 십상이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 퍼지게 된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내일은 더 나빠질 거야.˝ 

많은 이들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바란다. 시칠리아에서는 그런 내일을 꿈꾸기 힘들었다. 하여 그들은 내일을 버티기 위해, 저 말을 만들어냈다. 오늘이 된 내일이 어제보다 나쁘지 않으면 살 만했기에. 저 속담에는 시칠리아인들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들어 있다. 내일이 더 나쁠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살으라는. 다행히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진다면 하늘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으라는.

‘절망은, 없다‘는 ‘절망은, 있다‘ 절대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로 읽힌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절망이 날마다 문을 두드리고 방 안으로 쳐들어온다. 인생이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받아들이면 삶에 찾아드는 이런저런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견디기가 조금 낫다. 그래서 나는 ˝내일은 더 나빠질 거야˝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산다.

˝모로 쓰러져 잠이˝ 들어 있는 희망. 주머니 깊숙이 들어 있는 희망. ˝손을 빼면˝ ˝정전기˝ ˝묻어나오는˝ 희망. 절망의 다른 이름은 희망.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절망이 온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희망이란 놈은 ˝막차 운전대 위에˝ 간당간당하게라도 앉아 있는
법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절망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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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 매일 시읽기 50일 

무어라 해도 나는 믿노니​
-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 / 피천득 번역 

고귀한 분노를 모르는 포로를 
언제라도 나는 부러워하지 않노라 
조롱에서 태어나 여름숲을 모르는
그런 새를 부러워하지 않노라 

마음대로 잔인한 
짐승들을 부러워하지 않노라 
죄책감을 느낄 줄 모르는 
양심이 없는 

굳은 맹세를 해보지 않은 마음을 
나는 부러워하지 않노라 
잡초 속에 고여 있는 물같이 
부족을 모르는 안일을 나는 부러워 않노라 

무어라 해도 나는 믿노니 
내 슬픔이 가장 클 때 깊이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람을 잃는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더 낫다고 

이 시는 19세기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인 메모리엄 In Memoriam》중 일부이다. 요즘 읽고 있는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책읽는수요일)에서 이 시집을, 그 중 일부인 위의 시는 어느 블로그에서 발견했다. 피천득 시인이 엮은 《내가 사랑하는 시》(샘터사)에 이 시가 실려 있다. 

​《인 메모리엄 In Memoriam》은 한빛문화에서 2008년 펴낸 번역본이 있다. 100자평, 리뷰, 마이페이퍼 전무하다. 하긴 나도 어제야 알았으니. 이 시집은 테니슨의 절친이던 아서 핼럼의 죽음으로부터 탄생했다. 테니슨은 핼럼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에게 삶의 의미를 앗아갔다. 어찌할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테니슨은 시를 쓰며 버텼다. 그 세월이 17년이었다.

˝그러나, 갈피 못 잡는 마음과 머리엔 시구가 쓸모 있으니 슬픈 글자를 맞춰 시구나 엮는 것이
몽롱한 마취제처럼 고통을 마비시킨다.˝(《고독의 위로》 203쪽) 

테니슨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이자 ˝치유제˝였다. 《인 메모리엄》을 다 읽을 생각도, 다 읽을 여력도 없지만, 위의 시의 마지막 연에 쓰인 시구만은 기억해 두고 싶다.

˝사랑을 하고 사람을 잃는 것은 /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더 낫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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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매일 시읽기 49일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 황인숙 

보라, 하늘을,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  
새는 코를 막고 솟아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텅 ! 텅 ! 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황인숙 시인은 1958년생이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문학과지성사)는 1988년에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이다. 스물 중반부터 서른 즈음까지 쓴 시들로 추정된다. 최근작인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2016)가 마음에 들어 시인의 첫 작품이 궁금해 구매했는데, 오늘 듬성듬성 몇 편을 읽다 난감해졌다. 어 렵 다. 좀 버겁게 어렵다. 힘이 들면 내려놓을 생각이다. 좋자고 읽는데 자꾸 무거워지면 행복한 책읽기가 아니지 않겠는가.

이 시집의 표제작인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를 보라. 하늘이 새를 풀어놓지, 새가 어찌 하늘을 풀어놓나? 뻥 뚫린 게 하늘인데, 어쩌자고 ˝엿보이지˝도, ˝엿보지˝도 않는다고 하나? 새들은 어찌 ˝코를 막고˝ 솟아오르나? 자유는 어쩌자고 ˝섬뜩한 덫˝인가? ˝텅 텅 텅˝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용수철이 튕기는 소리인가? 용수철은 하고많은 색 중 왜 시퍼런 색인가?

내가 할 수 있는 해석 하나는, ˝엿보지˝도 ˝엿보이지˝도 않는 하늘이라면, 그 하늘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덫에 걸린 자유. 그래서 새를 풀어 하늘을 엿보이게 하려는 속셈인가?

이런 시는 철학서를 마주한 느낌을 준다. 생각해도 해석 불가. ‘생각을 한다‘에 방점을 찍는다면 시를 읽는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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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매일 시읽기 48일 

속 버무리는 남자 / 속 읽어주는 남자 
- 행복한책읽기 

당신들은 아는지 
빨간 고무장갑 두 손에 꽉 끼고서 
가족이 먹을 일 년 양식을 위해 
온몸을 들썩이며 양손을 빠르게 움직여 
김장 속을 버무리는 당신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당신들은 아는지 
아내들이 바라는 것 중엔 
부귀영화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더더더더 바라는 건 
아내의 속을 읽어주는 것이란 걸 

당신들은 아는지 
온갖 재료가 뒤섞인 김장 속처럼 
아내들의 속에도 수만 가지 감정이 
어지러이 버무러져 있다는 걸 

그러니 아내의 속은 버무리지 마시길 
김장 속 알뜰히 비벼댄 것처럼 
아내의 속은 살뜰히 고루고루 
보아주고 읽어주시길 

그것이 아내들의 격한 바람이나니 


이것은 2013년에 김장을 끝내고 내가 쓴 글이다. 7년 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우리 시댁 식구들은 김치에 욕심들이 많아 김장철이면 품앗이처럼 서로 돕는다. 김장 순서가 해마다 우리집이 꼴찌였는데 올해는 어쩐 일로 첫 타자가 되었다. 작년까진 50포기, 올해는 80포기. 후덜덜. 산처럼 높이 쌓인 김치통들을 보며 옆지기는 한없이 뿌듯해했다. 이 모든 걸 내가 했노라 하는 자부심과 더불어.

김치속 버무리기는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여자들이 갓과 무와 실파를 깨끗이 씻어 동당동당 썰거나 채질을 하고, 육수를 내고 찹쌀풀을 개는 동안 구경만 하고 있던 남자들이 동원되는 때가 이때다. 한데 그 많던 고모부들이 올해는 어디를 갔나, 일하러 가고 없어 하나 있는 아들(내 옆지기)과 가장 젊은 막내딸이 속을 버무렸다. 우두두두ㅡ둑! 아이고 허리야. 정말로 허리 휘는 일이다.

아무리 허리가 휘고 삭신이 쑤셔도 속 버무리기가 속 읽어주기보다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긁적인 글이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저것을 바란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의 속을 얼마나 읽어주고 있나 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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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16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많이 하시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시도 부럽고 저 많은 김장도 부럽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0-11-16 10:12   좋아요 1 | URL
그죠. 누가 봐도 부러울 만한 양이에요. 맛도 진짜 좋은데, 맛보여 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댓글 고마워요~~~^^

라로 2020-11-18 16:33   좋아요 1 | URL
아쉽다고 하시니 더 먹고 싶네요!!! 어제 오늘 샌드위치로 때워서 더 그런가 봐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