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5 매일 시읽기 48일 

속 버무리는 남자 / 속 읽어주는 남자 
- 행복한책읽기 

당신들은 아는지 
빨간 고무장갑 두 손에 꽉 끼고서 
가족이 먹을 일 년 양식을 위해 
온몸을 들썩이며 양손을 빠르게 움직여 
김장 속을 버무리는 당신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당신들은 아는지 
아내들이 바라는 것 중엔 
부귀영화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더더더더 바라는 건 
아내의 속을 읽어주는 것이란 걸 

당신들은 아는지 
온갖 재료가 뒤섞인 김장 속처럼 
아내들의 속에도 수만 가지 감정이 
어지러이 버무러져 있다는 걸 

그러니 아내의 속은 버무리지 마시길 
김장 속 알뜰히 비벼댄 것처럼 
아내의 속은 살뜰히 고루고루 
보아주고 읽어주시길 

그것이 아내들의 격한 바람이나니 


이것은 2013년에 김장을 끝내고 내가 쓴 글이다. 7년 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우리 시댁 식구들은 김치에 욕심들이 많아 김장철이면 품앗이처럼 서로 돕는다. 김장 순서가 해마다 우리집이 꼴찌였는데 올해는 어쩐 일로 첫 타자가 되었다. 작년까진 50포기, 올해는 80포기. 후덜덜. 산처럼 높이 쌓인 김치통들을 보며 옆지기는 한없이 뿌듯해했다. 이 모든 걸 내가 했노라 하는 자부심과 더불어.

김치속 버무리기는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여자들이 갓과 무와 실파를 깨끗이 씻어 동당동당 썰거나 채질을 하고, 육수를 내고 찹쌀풀을 개는 동안 구경만 하고 있던 남자들이 동원되는 때가 이때다. 한데 그 많던 고모부들이 올해는 어디를 갔나, 일하러 가고 없어 하나 있는 아들(내 옆지기)과 가장 젊은 막내딸이 속을 버무렸다. 우두두두ㅡ둑! 아이고 허리야. 정말로 허리 휘는 일이다.

아무리 허리가 휘고 삭신이 쑤셔도 속 버무리기가 속 읽어주기보다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긁적인 글이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저것을 바란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의 속을 얼마나 읽어주고 있나 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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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16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많이 하시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시도 부럽고 저 많은 김장도 부럽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0-11-16 10:12   좋아요 1 | URL
그죠. 누가 봐도 부러울 만한 양이에요. 맛도 진짜 좋은데, 맛보여 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댓글 고마워요~~~^^

라로 2020-11-18 16:33   좋아요 1 | URL
아쉽다고 하시니 더 먹고 싶네요!!! 어제 오늘 샌드위치로 때워서 더 그런가 봐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