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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
안도현 지음 / 나무생각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201120 매일 시읽기 53일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봉놋방'은 주막집의 가장 큰 방이다.
오늘 꺼내든 시집은 안도현 시인의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나무생각)이다. 2000년 봄에 과 후배가 생일 선물로 준 시집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시인의 시를 이리 묶어 놓은 시집을 선호하지 않아 방치해 두고 살았다. 하. 그 세월이 20년이라니.
연탄재 시인으로 알려진 마음 따뜻한(그렇게 느껴진다) 안도현 시인이 열 몇 살, 스무 몇 살 무렵 좋아하던 시들, 내가 사랑하는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시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인들(20년이 흐른 지금은 아주 젊지 않겠지만)이라는 소제목 아래 일흔 한 편의 시를 묶은 시집이다. 이런 시집은 시에 대한 문턱을 낮춰준다. 시인 독자의 눈과 마음을 통해 한 번의 검증을 통과한 시들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세월을 보낸 사람에 비해 시를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은 불행하다."
나는 시인의 저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시든 소설이든 무엇을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꼭 불행하지만은 않다. 읽는다는 행위가 활자에만 국한되지 않고, 행복의 원천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이 읽지 않는 사람보다 행복 지수를 한 가지 더 가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를 읽지 않고 보낸 세월이 길었는데, 그래도 그렇지 최승자 시인을 몰랐던 건 충격이다. '개 같은 가을이'는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에 실려 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 매독 같은 가을." 이 구절을 두고 안도현 시인은 말한다. "이 도발적 직유 하나로도 최승자는 시인이다."
최승자 시인은 1952년생이다. 저 시를 쓴 시기는 시집 출간(1981) 전인 서른을 앞둔 때일 것으로 추정된다. 시를 읽으니 서른도 되지 않은 아가씨의 내면 세계가 서늘해 보인다. 이 시인에게 가을은 "매독"과도 같다. 부지불식간에 찾아든 병인 셈이다. 가을은 흔히 인생의 중년에 비유되곤 하는데, 서른이면 한창 나이지 않은가. 왜 이렇게 칙칙하고 냉소적인가 했더니, 찢어지게 가난했고 처절하게 외로웠던 시인 개인의 삶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삽십 세' 중에서)
최승자 시인에게 서른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나이였다. 그 나이를 어찌어찌 통과한 시인은 2001년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늘 우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내고 있고 시를 계속 쓰고 있다. 그의 시집을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