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매일 시읽기 55일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들려 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복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 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안도현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감동적인 시들 중 한 편이다. 도종환과 안도현은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교사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동료 시인을 넘어 조합원 동지로 연대를 이어나갔다. 이 시는 교사들 집회장에서 종종 낭독되어 교사들 콧등을 시큰거리게 하거나 눈물샘을 자극하곤 한단다. 그럴 만하다.
‘어릴 때 내 꿈은‘이란 시를 읽으면서 나는 선생 자리에 어른, 부모를 넣어 읽었다. 나는 자라서 ˝험한 얼굴로 소리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어른이 될 거야 라고 결심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명도 없다. 어릴 적 꿈들은 누구나 시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이 말하는
꿈과 비슷할 것이다. 살아보니 무엇이 되겠다던 거창한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내가 그나마 위안하는 것은 마지막 연의 저 꿈만큼은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부빌 언덕 정도는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금전 아닌 마음의 언덕이 말이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이 오랜 시간 온라인 수업만 하다 일주일 한 번에서 세 번 등교(초등4), 일주 등교 이주 온라인에서 이주 등교 일주 온라인(중등1)으로 학교를 다닌다. 초딩도 중딩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귀찮긴 하지만 온라인 수업보단 등교 수업이 좋다고 한다. 초딩 아들은 급식 밥맛이 꿀맛이라며 학교 가는 것이 엄마 잔소리 듣는 것보다(윽!!!) 훨씬 낫댄다.
사람이 저마다 다르듯 샘들도 천차만별이다. 일가친척이 없던 내겐 선생님들의 존재가 끼친 영향이 아주 컸다. 인격적으로 문제 있는 선생들도 더러 있지만 나는 도종환 시인이 꿈꾸는 선생님 되고 싶어 하는 교사가 훨씬 많을 거라고 믿는 학부모다. 아이들에게는 부모 외 다른 어른들을 접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학습과 놀이와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귀한 사회적 공간이다. ˝징검다리, 지팡이, 옷자락, 봄흙˝ 같은 선생도, 어른도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우선 나부터.
2012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 도종환 시인은 근조 리본이 달린 화분을 받게 되었단다. 시인은 이를 ‘시인 도종환은 죽었고 새로운 도종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정성껏 키웠다고 하는데, 그 화분이 지금도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일화에서 내가 눈여겨본 점은 시인 도종환은 죽어버렸다고 실망한 애독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도종환이 받아들인 열린 태도였다. 정치인이 되면 얼굴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내가 본 정치인
도종환은 여전히 저 꿈처럼 살고자 애쓰는 시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