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2 #시라는별 78
꿰매다
- 나희덕
바닥에는
방금 실을 끊어낸 실패가 놓여 있고
실패에는 실이 남아 있다
무언가 열심히 꿰맨다
바늘이
천과 천 사이를 드나드는 동안
실패에서 풀려난 실은 한 땀 한 땀 길을 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찢어진 길을 꿰매듯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무언가 꿰고 꿰매는 동안에는
다정한 이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실패를 갖고 놀던 아이는 보았을까
실을 꿰는 엄마를
무언가 열심히 꿰매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까지 꿰매주었을까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fort˝와 ˝da˝ 사이에서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실패에는 실이 아직 남아 있고
무언가 꿰매는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이는데
*‘fort-da‘: 프로이트가 말한 없다!있다! 놀이. 이른바 까꿍 놀이.
2021년 12월에 출간된 나희덕의 『가능주의자』를 2022년 1월에 구매해 두었다가 2월 내내 드문드문 읽다 2월말 막판 스퍼트처럼 몰아 읽었다. 100자평에도 썼지만 이 시집은 정말 훌륭하다.
<이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를 시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가능주의자』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던진 저 물음에 대한 화답가 같다. 시로써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표현해야 하는지를, 시인은 한 마리 거미처럼 제 몸에서 언어라는 실을 자아내 한 땀 한 땀 엮고 또 엮어 시집이라는 거미집을 만들었다. 완성품이 천의무봉 같다.
이 시집은 총4부로 구성되어 있고 52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나의 부족으로 따라잡기 힘든 시들은 있었지만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시는 없었다. 대개가 고루 좋았다. 52편의 시들 중 내 눈과 맘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시가 <꿰매다>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서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무언가 열심히 꿰매˝며 살아간다. 그렇다. 열 심 히.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꿰매도 실이 끊어지거나 풀리거나 모자라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so cool하게 넘기는 법.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실패(失敗)와 실:패의 멋진 언어 유희. 실패하면 실:패를 집어 들어 다시 꿰매면 된다. 그러면 끝! 실패 그까이것! 이 다정한 위로라니.
˝fort-da 포르트-다.˝(없다! 있다!)
한편의 시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패를 가지고 노는 아이가 소리친다. fort!(없다) da!(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용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손주가 혼자 실패를 멀리 던졌을 때는 ‘fort‘라고 외치고, 다시 잡아당겨 손에 쥐게 되었을 때는 ‘da‘라고 외치는 놀이를 계속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 놀이를 보고 프로이트가 내린 해석은 아이에게 실:패는 엄마라는 상징물이고, ‘fort‘는 엄마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은 불안하다. 유아기의 이 불안은 생존과 결부된 문제여서 마음이 조마조마한 수위를 넘어 숨 막히는 공포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분리 불안을 여러 번(한 번일 수도 있다) 경험한 아이들은 엄마와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은 ˝뜯어진 바짓단˝이나 ˝구멍난 양말˝처럼 해지고 터져 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엄마는 어디까지 꿰매줄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아이의 ‘fort-da‘ 놀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엄마가 사라지는 공포를 미리 연습하고 그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아이만의 보호기제라고.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아이는 사라진 것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게다가 실패, 엄마라는 상징물이 제 손에 쥐어 있으니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끌어당기면 된다. 아이의 마음은 전보다 편안하다. 엄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예측 가능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아이는 엄마가 아무리 멀리, 아무리 오래 떠나 있어도 견뎌낼 수
있다. 실패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거릴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잠깐이라도, 엄마가 아이의 눈앞에서 사라져야 할 순간에는 아이에게 반드시 일러주어야 한다. 엄마 잠깐 쓰레기 버리고 오겠다고.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잠깐 없어지는 그 자체보다 말없이 없어지는 것이 아이에게 공포를 안겼다는 사실을 나도 뒤늦게 알았다. 그러니
˝da!˝는 있다!를 넘어 아이에겐 ‘살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꿰매줄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 스스로 터지고 해진 제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공들여 꿰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