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1 #시라는별 65 

어긋나는 생 
- 이산하 

내 몸에 나 있는 흉터들 
내 몸에 묻어 있는 먼지들 
이런 것들이 불현듯 나를 일깨운다 
오늘 아침 
그 먼지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 몸의 흉터 무늬와 너무 닮아 있었다. 

아하, 
세월을 상기시키는 것과 
세월을 덮어버리는 것이 
이토록 서로 맞물려 있다니, 
어긋나는 생들이여
그 어긋남이 오히려 더 아름답지 않은가. 


대개의 시인들이 그렇겠지만, 이산하의 시를 읽노라면 이 시인은 ‘구도자‘ 같다는 인상이 유독 짙게 풍긴다. <어긋나는 생>은 이산하가 자기 인생의 ˝잔잔했던˝ 시기라고 말한 서른 후반에 쓴 시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제 ˝몸에 나 있는 흉터들˝과 제 ˝몸에 묻어 있는 먼지들˝로 하루를 각성 모드로 시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내 몸에 새겨진 흉터는 지난 세월의 상처일 것이다. 상처는 드러내 치료함이 가장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싶은 상처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숨기려 했던 자리에 먼지가 쌓인다. ˝내 몸의 흉터 자리와 너무나 닮˝은 ˝먼지들˝. 숨기고자 한 것은 어떻게든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역설. ˝세월을 상기시키는 것과 / 세월을 덮어버리는 것이˝ 서로 맞물려 ˝어긋나는 생˝을 그리는 것. 그래서 생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오늘 아침 나 또한 비슷한 체험을 했다. 어제는 관악산에 다녀왔다. 두 번의 설악과 한 번의 지리 산행으로 단련이 되었던지 해발 632m의 관악산 등반이 수월했다. 다섯 시간을 오르고내리는 동안 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오호, 이런 경쾌함이라면 에베레스트도 오르겠는걸 하는 기고만장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호 통째라. 아침에 일어나니 삭신이 구석구석 쑤시지 아니한가. 무엇보다 종아리 근육이 땅땅하니 뭉쳐 있었다.

기쁨을 상기시키는 것과 기쁨을 덮어버리는 것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산행. 그 어긋남 때문에 나는 또 산으로 갈 것 같다. 가을 관악은 벗은 몸뚱이 하나로 버티고 지내야 할 추운 겨울을 앞두고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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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1 11: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등!
행복한 책읽기님 해피 11월!🍁🍂

행복한책읽기 2021-11-02 00:08   좋아요 0 | URL
scott님 11월에도 건강하세요~~~ 11월에도 음악이랑 책이랑 영화랑 놀게 해주세요~~~^^

막시무스 2021-11-01 1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베레스트까지 고고고 하시죠!ㅎ 관악산도 단풍이 정말 멋지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11-02 00:09   좋아요 1 | URL
저 진짜 가고 싶어요. 17년전 꿈꾸었다가 접어놓았는데, 슬금슬금 고개를 듭니다. 네팔 포카라부터 가볼까봐요. 일단 체력과 머니를 준비하겠음요^^

라로 2021-11-01 15: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넘 멋져요!! 책님 덕분에 시를 읽게 됩니다. 책님 말고 시님이라고 불러드릴까봐요..ㅎ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11-02 00:10   좋아요 0 | URL
얼라, 시님이라. 안 그래도 닉넴 길어서 변경할까 고민중인데. 라로님이 제 맘을 들여다보신걸까요^^

붕붕툐툐 2021-11-01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관악산이면 저희집 가까운 산이잖아요!! 가까이 오신 것만으로도 너무 좋네용!!🐱

행복한책읽기 2021-11-02 00:13   좋아요 1 | URL
넷?? 직장은 오산. 집은 관악산 아래. 오호.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툐툐님이셨군요. 담번에 연락을^^. 아, 참. 저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 해보려구요. 한 10년 계획으루다. 어제 관악산 인증 완료!!^^

붕붕툐툐 2021-11-02 07:06   좋아요 0 | URL
우왕~ 행책님의 블야100을 응원합니다!! 관악산은 아주 껌으로 인증하셨..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