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1 #시라는별 24
갱죽
- 안도현
하늘에 걸린 쇠거리기
벽에는 엮인 시래기
시래기에 묻은
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
갱죽을 쑨다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
훌쩍이며 떠먹는
밥상 모서리
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간다
안도현 시인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삼분의 이 읽었다. 이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갖가지 전통 음식을 시적 재료로 버무려 한 상 가득 차려 놓은 2부가 특히 백미다.
수제비, 무말랭이, 명태선, 물외냉국, 닭개장, 건진국수, 태평추, 돼지고기, 염소고기, 간장게장, 무밥, 콩밭짓거리, 민어회, 물메기탕, 병어회와 깻잎, 시락국, 전어속젓, 매생이국, 대개가 시인이 어릴 적 먹어본 음식들이다. 얼마나 자세하게, 맛깔나게, 구수하게, 정다웁게 표현해 놓았는지, 눈으로 읽기만 하는데 입안에 군침이 돈다. 직접 만들지 않고 그저 먹기만 했을 텐데, 해당 요리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잘도 안다. 확실히 시인의 눈은 남다르다. 어쩌다 음식 시편을 쓰게 되었는지를 시인은 이렇게 밝혔다.
˝음식이라는 것은 기본은 미각이지만 음식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이 필요하고, 후각이 필요하죠. 음식을 씹을 때는 청각도 필요합니다. 모든 감각의 총집결체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한데 엉켜 있지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11.12월호)
그렇다. 이 시집의 음식 시들은 온몸의 감각 뿐 아니라 기억의 빗장까지 연다. 켜켜이 접혀 있던 기억의 주름을 편다. 소환된 기억들은 꽃게 살 속으로 간장이 스며들듯 몸 속으로 스며든다. 아. 그 추억의 맛들.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을 ˝삼십
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한 시인은 그 맛이 너무 그리워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나 한 그릇 먹었으면 하는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예천 태평추>)
22편의 음식 시편들 중 내 오감을 제일 자극한 시는 ‘갱죽‘이다. 갱죽은 시래기 따위의 채소류를 넣고 멀겋게 끓인 죽을 말한다. 내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은 김치 국밥이다. 추운 겨울날 엄마가 양은 냄비에 송송 썬 김치와 밥을 넣어 연탄불에 펄펄 끓여 죽처럼 만들어준 김치 국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국밥을 떠먹었다.
˝음식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기질과 취향과 풍습이 반영되어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은 가족을 단단히 결합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음식의 공유는 기억의 공유로 곧잘 이어진다.˝(<백석 평전> 16쪽)
먹는 것이 곧 나를 이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무엇을 먹었는가 뿐 아니라 어떻게 먹었는가 라는 의미도 들어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속한 가족의 구성원들과 어떤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함께 먹었는지 말이다. 밥상을 둘러싼 분위기가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러니 밥상머리에선 교육 같은 거 시키려 들지 말고 그저 하하호호 맛있게 먹는 게 장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