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5 #시라는별 19 

단어를 찾아서 Szukam slowa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고문실 벽처럼 피로 흥건하게 물들고, 

그 안에 각각의 무덤들이 똬리를 틀기를,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는 것, 

지금 내가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기에. 

터무니없이 미약하기에.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소리는 적나라하고, 미약할 뿐.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폴란드 태생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1923년에 태어나 2012년에 타계했다. 22세 때 <단어를 찾아서>라는 시로 등단하여 살아생전 12권의 시잡을 출간했다. 별세 후 미완성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출판되었다. 시인의 나이 73세 때인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폴란드 중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시인은 여덟 살 때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로 이주한 후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쉼보르스카가 타계하고 며칠 후, 이 시인의 책상 서랍 속에서 오래된 원고 뭉치가 발견되었다. 40여 년 전 시인의 전남편이자 편집자였던 아담 브워테크가 시인의 생일 선물이자 등단 25주년과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축하하는 이벤트로 그녀의 초기작들을 모아 만든 가편집본 시집이었다. 쉼보르스카는 자신이 초기작들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목적의식이 강한 사회주의리얼리즘에 경도된 시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랬기에 시인은 선물로 받은 이 원고 뭉치를 차마 없애지는 못하고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해 둔 것이었다. 새내기 시인 쉼보르스카의 생각과 고민, 시적 모티브, 그리고 2차 대전의 상흔이 끼친 영향이 담겨 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임에도 나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을 알라딘 광고로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알고 싶어져서 시집을 냉큼 구입했다. 이십대는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꿈이 잡히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시기다. 젊은 쉼보르스카도 다르지 않다. 그런 고민을 생생하게 표현한 시가 등단작인 <단어를 찾아서>이다. 자신이 내뱉는 말이 힘이 없고 기술하는 글이 충분치 않다고 속상해 하던 젊은 시인은 원로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온 이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 출간된 쉼보르스카 시집으로는 시선집 <<끝과 시작>>과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있다. 번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 최성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교수의 노고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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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15 0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끝과 시작만 읽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전히 대단하다고 느꼈던 느낌이 생생하고 여전히 잘 보이는 곳에 버려두고 있지요. ㅠㅠ 다시 들쳐 봐야겠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3-15 16:11   좋아요 1 | URL
와. 라로님은 이분 시집을 진즉 읽으셨군요. 역쉬 서재에 오랜 세월 적을 둔 알라디너답습니다. 아직 몇 편 못 읽었는데, 시들이 진솔하다 느껴집니다요 ^^

라로 2021-03-15 17:09   좋아요 0 | URL
네, 2008년에 처음 읽었고, 2010년까지 기록이 있는 것을 보니 그때까지는 읽었나봐요. ^^;; 알라딘 오래 한 덕을 보는 거죠~~!!^^

청아 2021-03-15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그렇게 연결되는군요! 저도 덕분에 쉼보르스카를 알게되네요.😉 번역시는 되도록 안보려고 했는데 이 시집들 끌려요ㅋ주섬주섬 담아갈래요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3-15 16:13   좋아요 1 | URL
저도 번역시는 껄끄러운데, 폴란드어를 전혀 모르니 영시보다 읽기 편하더라구요. 제목 연결은 제맘대로 했습니다요. ㅋㅋ

scott 2021-03-15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행복한 책읽기님 덕분에 월요일 쉽보르카의 시와 함께 하게 되네요 ^0^


행복한책읽기 2021-03-15 16:16   좋아요 1 | URL
허걱. 쉼보르스카도 이미 읽으셨단 말입니까. 진정. 당신은 AI. 올려주신 시 멋있습니다. 두 번은 없다! 제목 똑부러집니다. 합쳐지지 않는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 흠흠흠. 일치점을 찾아보겠습니다. ^^

희선 2021-03-1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해 전에 《충분하다》만 봤어요 그러고 보니 거기에는 죽음을 말하는 시가 있었다는 게 조금 생각나는군요 심보선은 비스와봐 심보르스카라 쓰고 자기 고모라 했어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