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경전 1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7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콘웰의 추종자 PC임을 자칭하는 나로써는 좀 실망스러운 작품.

언제나 별 다섯개에 걸맞는 글을 써온 콘웰이기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PC라면 읽지 않고 넘어가기도 어려운 책...

모든 책이 걸작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테러리스트, 원자력, 흠.. 무슨 테크노 스릴러를 보는 듯한 한데.. 이 방면은 역시 톰 클랜시의 영역...

콘웰에겐 아직까지 이부분에 대한 내공은 부족하지 않을까.

콘웰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섬세한 시체묘사, 그리고 그것을 통한 '죽은 자의 언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일텐데...

과연 에반스 기장의 주검을 통해 알아낸게 뭔가.. 시안화물에 의한 죽음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대니는... 방사능...

치밀한 플롯에 의한 사건 전개에 짜릿함을 느끼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다음번 작품은 보다 전공에 충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대단원의 마지막에 보여주는 임팩트도 기존 작품들보다 떨어지고...

차라리 한편의 첩보영화를 만든다면 더 어울릴 듯..

하지만, 콘웰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위대함(?)에 비해 이 작품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서 빨리 '카인의 아들'에서와 같은 늑골 아래를 묵직하게 누르는 감동을 전해주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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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안 2005-10-1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요.. 팬들은 사지 않을 수는 없죠...
시리즈에 이빨이 빠지면 안되니까요..
아무튼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합니다.. ^^*..
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CSI 같은 느낌을 주는 콘웰이 더 친숙하고, 그런 작품에서 콘웰의 진가가 더 잘 드러난다는 것도 이번 작품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쬬..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꾸리 2005-10-2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PC작품 중 상당히 이질적인 것임은 분명하죠. 다행히 다음 작품에서는 그녀의 본령인 법의학으로 돌아오니, 안심하셔두 될 것 같아요. <죽음의 닥터>라는 이름으로 곧 출간된다고 하더군요.

아르미안 2005-10-2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렇군요..
<죽음의 닥터>... 기대가 되네요.. ㅎㅎ
 

지폐에 여성모델이 없는 까닭…위조지폐 때문?

세상에서 가장 잡스러운, 그러나 알면 유용한 지식들 ‘천하무적 잡학사전’

미디어다음 / 김진양 통신원

세상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게 ‘왜’ 그렇게 됐는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입술은 왜 붉은지, 배가 고프면 왜 꼬르륵 소리가 나는지 등 평소에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는 생활 속 궁금증들이 그것이다. 최근 이런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책 한 권이 발간됐다. ‘천하무적 잡학사전’(엔사이클로넷, 좋은 생각). 책에 실려 있는 ‘잡스러운’, 그러나 알면 유용한 지식들을 모아봤다.

1. 지폐에 여성 모델이 없는 까닭은?

[일러스트 제공=좋은 생각]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요즘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지폐를 볼 수 있다. 지폐에 그려진 초상화는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에서 여왕이 그려진 것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이다. 여성을 차별한 탓일까?

지폐에 여성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조지폐 때문이다. 지폐에 초상화를 그릴 때는 그림을 쉽게 흉내 낼 수 없도록 가는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보통 1mm 안에 10가닥 이상의 가는 선을 사용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여성의 얼굴을 그리면 모델이 주름살투성이 할머니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젊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가는 선을 생략해 버리면 지폐를 위조하기가 쉬워진다. 결국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얼굴을 그리는 편이 한결 수월한 셈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기술이 많이 향상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나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여성의 얼굴을 그린 지폐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지폐에도 여성 인물이 그려진 적이 있다.

2. 낯가죽의 두께는 어느 정도일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뻔뻔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낯가죽이 두껍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낯가죽의 두께는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일까.

사람의 피부는 세 겹으로 이뤄져 있으며, 표피·진피·피하 조직으로 나눌 수 있다. 표피의 두께는 평균 0.1~0.3mm, 진피는 0.3~2mm 정도.

피하 조직에는 지방이 쌓이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의 두께 차이가 크다. 이들 표피와 진피, 피하의 두께는 피하에 있는 지방까지 포함해도 대략 1~4mm다.

물론 같은 피부라도 신체 부위에 따라 두께가 조금씩 다르다. 피부의 두께가 가장 얇은 곳은 눈꺼풀이다. 반면 두께가 가장 두꺼운 곳은 발뒤꿈치다.

얼굴 피부는 두께가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한다. 피하지방을 제외하면 9개월 된 아기의 피부 두께는 0.04mm, 15세 청소년은 0.07mm, 35세 성인은 0.1mm 정도이다. 낯가죽이 아무리 두꺼운 사람이라고 해도 이보다 더 두껍지는 않다.

3. 엘리베이터 옆에 거울이 있는 까닭은?

사상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단 곳은 미국의 어느 사무용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당시 이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낡아 사람들은 매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에 대한 불평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주인은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돈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교체에는 엄청난 경비가 들기 때문이다. 묘안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건물 주인은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엘리베이터 옆에 거울을 달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몸 단장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냈다.

거울을 설치하자 사람들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불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뒤 이 일이 널리 알려지자 엘리베이터 옆에 거울을 설치하는 건물이 늘어났다.

4. 혼자 밥을 먹으면 맛이 없는 까닭은?

[일러스트 제공=좋은 생각]


어떤 사람이 이런 실험을 했다. 먼저 배고픈 닭을 우리에 넣어두고 모이를 듬뿍 주었다. 모이를 먹고 배를 채운 닭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우리에 배고픈 다른 닭을 한 마리 집어넣었다.

새로 우리에 들어온 이 배고픈 닭은 먼저 우리에 들어가 있던 닭이 먹다 남긴 모이를 허겁지겁 쪼아 먹었다. 그러자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됐다. 새로운 닭이 들어오기 전까지 모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졸고 있던 닭이 새로 들어온 닭에 질세라 모이를 쪼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실험을 계속 실시해 보니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안에 배고픈 닭의 숫자가 배부른 닭의 숫자의 숫자보다 많으면 배가 부른 닭도 배고픈 닭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 먹는다.

반대로 우리 안에 배부른 닭의 숫자가 배고픈 닭의 숫자보다 한 마리라도 더 많으면 배부른 닭들은 모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런 실험 결과는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배가 부르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식욕이 당겨 음식을 계속 먹게 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밥을 먹으면 밥맛이 더욱 좋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5. 백화점 1층에 어김없이 화장품 매장이 있는 까닭은?

백화점에는 거의 예외 없이 지하에는 식품매장, 1층에는 화장품 매장이 있다. 지하 식품 매장은 그렇다 쳐도 백화점 현관이 있는 1층에 강렬한 냄새를 풍기는 화장품 매장이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백화점들이 말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백화점을 드나드는 주요 고객이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화장품은 백화점 내의 상품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마진을 내는 상품 중 하나다. 또 단가가 높은데 비해 비교적 적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최소투자 최대이윤’을 기대할 수 있다. 최소의 점원만 있으면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화장품 매장에는 늘 많은 점원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화장품 매장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장품 회사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백화점은 이들의 급여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백화점 입장에서 보면 화장품 매장은 여러 가지로 ‘기특한’ 매장인 것이다.

6. 내복약을 식후 30분 이내에 먹어야 하는 까닭은?

약은 대개 식후 30분 이내에 먹도록 되어 있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위가 비어 있으면 약물이 위나 장의 점막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자칫 깜빡하고 약 먹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루 세 번 먹는 식사와 약 먹는 것을 연결해서 알려주면 건망증이 심한 사람도 약 먹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약 복용 시간과 관련해 혼동하기 쉬운 말로 식간(食間)이라는 용어가 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약을 먹으라는 의미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끼니와 끼니 사이, 즉 위에 음식물이 들어 있지 않을 때 복용하라는 의미다.

7. 카메라의 셀프타이머는 몇 초가 적당할까?


[일러스트 제공=좋은 생각]
카메라의 셀프타이머는 제조사마다 입력된 시간이 다르다. 전문가용 기종의 경우 2초, 10초 두 가지 타이머가 장착돼 있다. 소형카메라에는 8초짜리도 있고 10초짜리도 있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10초짜리 타이머가 장착된 카메라다. 맨 처음 셀프타이머 기능이 붙은 카메라가 10초였기 때문이다. 그 뒤 출시된 카메라들이 이를 따라 10초 타이머를 장착했다.

그런데 왜 하필 10초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포즈를 취하는 데 가장 적절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길면 얼굴이 굳어져버리기 쉽고 이보다 짧으면 타이머 버튼을 누른 사람이 함께 사진을 찍기 힘들다. 10초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과 고민 끝에 나온 시간이다.

8. 장수할 확률이 높은 직업 베스트 5

일본에서 수명에 관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있다. 1925년부터 1975년까지 사망한 각계 저명인사 3511명을 대상으로 사망 연령(자살이나 사고사는 제외)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가장 장수한 직업은 종교가로 평균 수명이 75.6세였다. 2위는 실업가로 73.2세, 3위는 정치가로 72.8세, 4위는 의사로 71.5세, 5위는 대학교수로 67.7세였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조사를 담당한 후쿠시마 의과대학의 모리 교수는 종교가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장수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실업가나 정치가는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는 강한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의사는 건강에 대한 지식이 많기 때문에, 대학교수는 직업 특성상 젊은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9. 파도타기 응원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축구나 야구 시합에서 관중들이 이따금 파도타기 응원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파도타기 응원은 미국의 미식축구 경기에서 시작됐다. 그 뒤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다른 스포츠 경기로 확산됐다.

이 응원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가 각 나라로 중계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렇게 알려지기 시작한 파도타기는 2년 뒤에 열렸던 월드컵 경기에서 세계적인 응원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파도타기 응원이 처음 시작됐을 때는 응원의 뜻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식축구가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을 때 관객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는 놀이었다. 좋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대놓고 야유를 퍼붓는 대신 ‘제대로 좀 해라’는 의미로 파도타기를 보여준 것이다.

10. 기쁘면 왜 목소리가 커질까?

가슴이 터질 듯 기쁜 소식을 들으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우와’, ‘야호’ 등의 환호성을 지르게 마련이다.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라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왜 그럴까.

기쁨의 감정은 가장 먼저 대뇌에 있는 전두엽에 전달된다. 전두엽은 이성을 관장하는 곳으로 전달된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주변의 상황을 살핀 뒤 지나친 표현이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면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 지나친 표현은 삼가자’ 는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동이나 기쁨이 너무 크면 전두엽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대뇌 변연 피질이라는 곳으로 전달된다.

이곳에서는 전달된 자극에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주위 상황에 개의치 않고 힘차게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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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꽤 쌀쌀하네요.

사무실에서 단풍 구경하고 좋길래 올립니다.. ^^* 오늘도 활기찬 하루를~~

‘오색찬란’ 단풍 구경하세요


사진가 이범진씨가 담아낸 아름다운 단풍 사진들

미디어다음 / 윤경희 프리랜서 기자

어느새 10월 초,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은 항상 곳곳을 단풍으로 물들게 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산으로 이끈다. 사진가 이범진(38)씨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과 사찰을 두루 다니며 진귀한 단풍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이씨(http://photolee.co.kr)가 담아낸 아름다운 오색찬란 아름다운 단풍 사진을 소개한다.

자동넘김 설정정지 빠르게 보통 느리게
가을길을 거닐며
온 세상이 온통 금빛으로 변했다. 가을은 바람에도 뒹구는 낙엽을 친구 삼아 걸으며 잠시 잊고 살았던 지난 일들을 떠올려보기 좋은 계절이다.
햇살이 만든 풍경
송광사 가는 길
가을길을 거닐며

이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이씨는 우연히 암실에 들어가 흑백사진을 인화해 봤던 경험에 이끌려 사진가가 됐다.

사진을 사랑했지만 좋은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하는 풍경을 찾아내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겪어야 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얻은 단풍 사진 보면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색의 경이로움에 빠져 모든 힘들었던 과정을 잊게 된다.

이씨는 “단풍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가급적 역광, 사광 촬영을 하고 정오 시간대를 피해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며 “장소는 전국의 산이 다 좋지만 특히 지리산이나 선운사, 백양사 등 가을 풍경이 빼어난 곳에 가서 찍으면 더욱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러나 좋은 사진은 기술적인 조건만 잘 갖춘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끼며 렌즈 속 풍경에 다가가는 것이 좋은 사진을 찍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앞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할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시골의 옛 장터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장터포토클럽’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조만간 시골에 버려진 폐가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는 작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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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비참하게 살았던 천재 여성들

 히파티아 (Hypatia, 355-415)
그리스 아테네와 헬레니즘 시대 살았던 전설적인 여성 철학자, 수학자. 그리스 출신의 알렉산드리아 대학 교수 딸로 출생.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제일의 학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함. 그녀는 유창한 강연과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남자 수학자들은 몇 달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다. 뛰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히파티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학문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종교 권력이 강해진 뒤, 키릴루스 대주교는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학자들을 모두 이교도로 단정, 박해하기 시작함. 이때 히파티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잔혹한 대접을 받았는데,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운명의 그날, 거룩한 사순절 기간 중 피터가 이끄는 야만적인 폭도들은 히파티아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옷을 모두 벗기고 교회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녀의 살은 날카로운 칼에 갈가리 찢겨나갔으며 그녀의 떨리는 손은 불덩이 속에 던져졌다." 


 밀레바 마리치 (Mileva Maric, 1875-1948)
세계적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 유럽의 "비주류" 민족인 세르비아 계인데다 선천성 관절 이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수학, 물리학, 음악, 미술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시 여성이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인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 4살 연하였던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둘은 서로의 천재성에 반해 결혼을 하고,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이론을 비롯한 세계사에 길이 남을 물리학 논문 3편을 공동 저작한다. (특히 밀레바는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 이론 완성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밀레바를 멀리했고, 급기야 자신의 사촌인 엘사와 재혼하기 위해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당시 밀레바에겐 2명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아인슈타인은 아랑곳 않고 그들은 버린 채 미국으로 망명한다. 버림받은 밀레바는 이후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이슈타인이 미국에서 세계적 명성을 높여가는 동안 그녀는 초라한 동네의 피아노 강사와 수학 교사 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두 번째 아들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자신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년에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얼마 뒤 전도유망했던 이 천재 여성 학자는 73세의 초라한 노파가 돼 쓸쓸히 숨을 거둔다. 


 판위량 (潘玉良, 1895-1977)
중국 최초의 서양화가. 8살 때 부모를 잃고 아편 중독자인 외삼촌에 의해 6년 동안 키워짐. 14살에 외삼촌에 의해 기생집에 팔려감. 이곳에서 첫 손님이었던 세관 고위 공무원 판찬화(潘贊化)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판찬화는 위량을 첩으로 맞아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일깨워 줌. 이후 상하이 미술전문학교에 입학, 화가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위량은 누드화에 심취, 공중 목욕탕을 전전하며, 혹은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보며 누드화를 그린다. 그녀의 누드화는 비천한 출신이라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버리기 위한 상징이었으나, 기생 출신에 누드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엄청난 사회적 조롱과 지탄을 받는다. 상하이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남편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10여 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학계와 예술계에서 촉망받는 여류화가 겸 교수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기 출신이라는 과거가 들춰지면서 지속적인 고통을 받았고, 자신의 출신성분이 남편의 신변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파리로 돌아가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

미국의 여류 시인. 영국의 유명 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로, 오븐에 머리를 넣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자살로 유명한 시인으로 세간에 알려졌으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했던 매우 뛰어난 시인이었음. 플레이스는 이후 남성위주의 배타적 창작 환경에 의해 희생된 천재 시인으로 기록됨.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류화가. 천재적인 그림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한 여성. 7살에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됨. 14살에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 (2천 여명의 신입생 중 여학생은 겨우 30여 명이었음.) 18살에 버스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가 나 버스 손잡이를 지탱하는 쇠파이프가 가슴에서부터 골반, 허벅지를 관통하는 끔찍한 치명상을 당함. 모르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엄청난 고통을 잊기 위해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 1928년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천재 화가였던 21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끊임없이 디에고의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거듭 유산함. 디에고는 아내의 불행에도 줄기차게 바람을 피웠고, 급기야 프리다와 절친한 친누이와 애정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미칠 듯한 절망 속에 프리다는 그림에 빠져듦.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예술 활동을 벌였고, 그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 사고의 후유증으로 수 차례의 척추수술을 받았고 급기야 회저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상상키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받음. 이런 중에도 반미 공산주의 시위 및 반전 운동에 참여. 1954년 사망.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864-1943)
1864-1943. 로댕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천재 여성 조각가. 마치 조각을 위해 태어난 듯, 어린 시절부터 조각에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열정을 보였다. 19세에 로댕을 만나 그의 제자 겸 조수, 예술적 경쟁자, 그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함. 그러나 로댕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극심한 정신적 타격을 받은 까미유는 평생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소피 제르맹 (Sophie Germain, 1776-1831)
프랑스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독학으로 수학을 배워 18세기 철옹성 같았던 남녀차별의 벽을 뚫고 유럽 제일의 여성 수학자로 발돋움한 천재 여성. 당시 학계의 무시무시한 차별 속에서도 수많은 남성 학자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학 및 초고난이도의 수학 이론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함. 그러나 그녀는 조국 프랑스로부터 그 어떤 보상이나 명예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맘.

 

 

 
 에이다 백작부인 (Ada Augusta King, Lady Lovelace, 1815-1852)
영국의 대문호 로드 바이런의 친딸. 유명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백작부인이 된 상류층 여성으로,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었음. 스스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 에이다는 자신보다 먼저 컴퓨터 개발을 시작한 찰스 배비지를 도와 실제 컴퓨터 제작을 주도했으며,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이론에 대한 (수백 년이나 앞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 천재 여성은 그러나 "반항적 기질"을 잠재우기 위해 아편을 강제 복용했으며, 말년에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등 적지 않은 고초를 겪음.

 

 
진성여왕 (재위 기간 887-897)

몰락해가던 통일 신라의 51대 여왕. 당시 수많은 남자 왕위 계승자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왕이 된 왕으로, 신라 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명민한 천성과 장부 같은 골상”을 가진 성군이었음. 왕위에 오르자마자 강력한 사회보장정책으로 농민층을 안정시키려 했으며, 위홍을 시켜 신라의 유물을 보수하고 향가를 집대성하는 등 중요한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특히 6두품 출신의 최치원을 등용해 신라의 정치와 문화를 개혁하려 했으나 기득권인 진골 귀족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됨. 이후 신라를 되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으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번번이 무산. 재위기간 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남. 한반도의 마지막 여왕이 된 진성여왕은 이후 보수적인 유교 사가들에 의해 조롱거리로 전락함.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진성여왕을 근친상간과 난교를 일삼은 음탕한 여군주이자 나라를 망하게 한 요녀로 묘사함. (그러나 이는 신라 왕족 사이에 행해지던 근친 결혼에서 비롯된 이야기. 진성여왕은 자신의 숙부와 공식적인 남편 관계였고 이는 당시 신라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음.)  


 나혜석 (1896-1948)
일제시대 개화기를 살았던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 부유한 명문가의 자손이자 친일파의 아내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으나 자신의 지위와 부를 이용해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파리 유학 시절 최린과의 간통 혐의, 남편의 배신 등으로 급작스럽게 몰락하기 시작함. 그는 사회적 멸시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연이어 언론에 여성 차별과 권리에 대한 파격적인 발언을 해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

 

* 덧붙이고 싶은 인물... 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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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비참하게 살았던 천재 여성들

 히파티아 (Hypatia, 355-415)
그리스 아테네와 헬레니즘 시대 살았던 전설적인 여성 철학자, 수학자. 그리스 출신의 알렉산드리아 대학 교수 딸로 출생.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제일의 학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함. 그녀는 유창한 강연과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남자 수학자들은 몇 달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다. 뛰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히파티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학문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종교 권력이 강해진 뒤, 키릴루스 대주교는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학자들을 모두 이교도로 단정, 박해하기 시작함. 이때 히파티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잔혹한 대접을 받았는데,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운명의 그날, 거룩한 사순절 기간 중 피터가 이끄는 야만적인 폭도들은 히파티아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옷을 모두 벗기고 교회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녀의 살은 날카로운 칼에 갈가리 찢겨나갔으며 그녀의 떨리는 손은 불덩이 속에 던져졌다." 


 밀레바 마리치 (Mileva Maric, 1875-1948)
세계적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 유럽의 "비주류" 민족인 세르비아 계인데다 선천성 관절 이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수학, 물리학, 음악, 미술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시 여성이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인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 4살 연하였던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둘은 서로의 천재성에 반해 결혼을 하고,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이론을 비롯한 세계사에 길이 남을 물리학 논문 3편을 공동 저작한다. (특히 밀레바는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 이론 완성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밀레바를 멀리했고, 급기야 자신의 사촌인 엘사와 재혼하기 위해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당시 밀레바에겐 2명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아인슈타인은 아랑곳 않고 그들은 버린 채 미국으로 망명한다. 버림받은 밀레바는 이후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이슈타인이 미국에서 세계적 명성을 높여가는 동안 그녀는 초라한 동네의 피아노 강사와 수학 교사 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두 번째 아들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자신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년에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얼마 뒤 전도유망했던 이 천재 여성 학자는 73세의 초라한 노파가 돼 쓸쓸히 숨을 거둔다. 


 판위량 (潘玉良, 1895-1977)
중국 최초의 서양화가. 8살 때 부모를 잃고 아편 중독자인 외삼촌에 의해 6년 동안 키워짐. 14살에 외삼촌에 의해 기생집에 팔려감. 이곳에서 첫 손님이었던 세관 고위 공무원 판찬화(潘贊化)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판찬화는 위량을 첩으로 맞아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일깨워 줌. 이후 상하이 미술전문학교에 입학, 화가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위량은 누드화에 심취, 공중 목욕탕을 전전하며, 혹은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보며 누드화를 그린다. 그녀의 누드화는 비천한 출신이라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버리기 위한 상징이었으나, 기생 출신에 누드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엄청난 사회적 조롱과 지탄을 받는다. 상하이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남편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10여 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학계와 예술계에서 촉망받는 여류화가 겸 교수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기 출신이라는 과거가 들춰지면서 지속적인 고통을 받았고, 자신의 출신성분이 남편의 신변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파리로 돌아가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

미국의 여류 시인. 영국의 유명 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로, 오븐에 머리를 넣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자살로 유명한 시인으로 세간에 알려졌으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했던 매우 뛰어난 시인이었음. 플레이스는 이후 남성위주의 배타적 창작 환경에 의해 희생된 천재 시인으로 기록됨.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류화가. 천재적인 그림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한 여성. 7살에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됨. 14살에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 (2천 여명의 신입생 중 여학생은 겨우 30여 명이었음.) 18살에 버스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가 나 버스 손잡이를 지탱하는 쇠파이프가 가슴에서부터 골반, 허벅지를 관통하는 끔찍한 치명상을 당함. 모르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엄청난 고통을 잊기 위해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 1928년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천재 화가였던 21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끊임없이 디에고의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거듭 유산함. 디에고는 아내의 불행에도 줄기차게 바람을 피웠고, 급기야 프리다와 절친한 친누이와 애정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미칠 듯한 절망 속에 프리다는 그림에 빠져듦.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예술 활동을 벌였고, 그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 사고의 후유증으로 수 차례의 척추수술을 받았고 급기야 회저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상상키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받음. 이런 중에도 반미 공산주의 시위 및 반전 운동에 참여. 1954년 사망.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864-1943)
1864-1943. 로댕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천재 여성 조각가. 마치 조각을 위해 태어난 듯, 어린 시절부터 조각에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열정을 보였다. 19세에 로댕을 만나 그의 제자 겸 조수, 예술적 경쟁자, 그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함. 그러나 로댕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극심한 정신적 타격을 받은 까미유는 평생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소피 제르맹 (Sophie Germain, 1776-1831)
프랑스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독학으로 수학을 배워 18세기 철옹성 같았던 남녀차별의 벽을 뚫고 유럽 제일의 여성 수학자로 발돋움한 천재 여성. 당시 학계의 무시무시한 차별 속에서도 수많은 남성 학자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학 및 초고난이도의 수학 이론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함. 그러나 그녀는 조국 프랑스로부터 그 어떤 보상이나 명예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맘.

 

 

 
 에이다 백작부인 (Ada Augusta King, Lady Lovelace, 1815-1852)
영국의 대문호 로드 바이런의 친딸. 유명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백작부인이 된 상류층 여성으로,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었음. 스스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 에이다는 자신보다 먼저 컴퓨터 개발을 시작한 찰스 배비지를 도와 실제 컴퓨터 제작을 주도했으며,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이론에 대한 (수백 년이나 앞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 천재 여성은 그러나 "반항적 기질"을 잠재우기 위해 아편을 강제 복용했으며, 말년에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등 적지 않은 고초를 겪음.

 

 
진성여왕 (재위 기간 887-897)

몰락해가던 통일 신라의 51대 여왕. 당시 수많은 남자 왕위 계승자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왕이 된 왕으로, 신라 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명민한 천성과 장부 같은 골상”을 가진 성군이었음. 왕위에 오르자마자 강력한 사회보장정책으로 농민층을 안정시키려 했으며, 위홍을 시켜 신라의 유물을 보수하고 향가를 집대성하는 등 중요한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특히 6두품 출신의 최치원을 등용해 신라의 정치와 문화를 개혁하려 했으나 기득권인 진골 귀족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됨. 이후 신라를 되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으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번번이 무산. 재위기간 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남. 한반도의 마지막 여왕이 된 진성여왕은 이후 보수적인 유교 사가들에 의해 조롱거리로 전락함.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진성여왕을 근친상간과 난교를 일삼은 음탕한 여군주이자 나라를 망하게 한 요녀로 묘사함. (그러나 이는 신라 왕족 사이에 행해지던 근친 결혼에서 비롯된 이야기. 진성여왕은 자신의 숙부와 공식적인 남편 관계였고 이는 당시 신라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음.)  


 나혜석 (1896-1948)
일제시대 개화기를 살았던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 부유한 명문가의 자손이자 친일파의 아내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으나 자신의 지위와 부를 이용해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파리 유학 시절 최린과의 간통 혐의, 남편의 배신 등으로 급작스럽게 몰락하기 시작함. 그는 사회적 멸시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연이어 언론에 여성 차별과 권리에 대한 파격적인 발언을 해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

 

* 덧붙이고 싶은 인물... 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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