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내용이네요.

근데 30평대 아파트 살면서 2000cc 이상 차량 굴리면 중산층이라는게... 좀 걸리네요.

아파트도 지역에 따라 워낙 가격차가 심하니까요. 헐~

미국이나 프랑스의 기준도 조금은 난해(?)하구요.. 쩝쩝

자료출처: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705/25/seoul/v16854231.html

[서울신문]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산층의 최근 3년간 가정경제 만족도가 제자리 걸음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상류층과 저소득층은 만족도가 각각 올라갔다. 중산층만 외톨이였다는 얘기다.3년전까지만 해도 시민단체를 가장 신뢰했던 이들은 이제 금융기관과 의료계를 가장 믿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정부, 국회에 대해서는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일에 대한 열정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종교가 파고들었다. 현실은 중간층인데 스스로의 눈높이는 상류층이다 보니 정체성의 혼란도 극심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가 공동 실시한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결과다. 조사는 전국 18세 이상 남녀 160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이뤄졌다.2003년부터 해마다 해오고 있다.

두 기관이 결과를 분석해 24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달 평균 총 가구소득이 200만원 이상 499만원 이하인 중산층 비중은 49%였다.3년전(52%)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절반이다.

가정경제 만족도 40% 밑돌아

보고서는 대한민국 중산층이 외톨이로 전락한 주된 요인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찾았다. 가정경제 만족도가 3년째 40%를 밑돌며 답보 상태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정부 정책은 저소득층, 기업체 마케팅은 고소득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부와 기업에서도 중산층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더 큰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에 있었다. 보고서는 “결혼관·자녀관 등 가치관이나 눈높이는 상류층인 데 반해 현실은 중간층이다 보니 사회에 대한 태도가 오히려 저소득층에 가깝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정치 성향도 비판적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인생의 으뜸가치는 건강·가족

인생의 으뜸 가치는 여전히 건강(1위)과 가족(2위)이었다.3년전과 비교해 돈(3위)과 친구(4위)가 각각 한 계단씩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일은 세 계단이나 밀린 6위로 떨어졌다.3년전 10위였던 종교는 5위로 껑충 뛰었다.‘죽어라 일만 하기보다는’ 실속(재테크)과 정신적 위안(종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신뢰하는 사회기관에서도 큰 변화를 보였다.3년전 6위였던 금융기관이 의료계·학계와 더불어 공동 1위로 올라섰다.‘플라스틱 버블’로 불렸던 신용카드사 위기가 진정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군대(8위→4위)와 대기업(11위→7위)에 대한 믿음도 높아졌다. 하지만 시민단체(1위→6위)에 대해서는 등을 돌렸다. 청와대, 지방정부, 중앙정부, 국회는 여전히 꼴찌권 ‘빅4’를 형성, 중산층의 불신감을 단적으로 말해줬다.

“정치·경제 좋아질것” 40%이상

중산층의 상당수(74%)는 한국 정치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앞으로 정치가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42%)이 적지 않았다.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도 절반 가까이(48%)가 “좋아질 것”이라고 희망을 걸었다.10명중 8명(82%)은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상류층(83%) 수준의 자부심이다.

보고서는 “대한민국 중산층은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면서 “따라서 사회 중심축으로서의 중산층 존재를 환기시키고 4인 4색인 중산층 소비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비 부유층, 전형적 중산층, 비판적 중산층, 생계형 중산층 등 크게 네 부류인 중산층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적 성취보다는 개인과 가족을 중시하는 비판적 중산층에게는 효(孝)와 향수(鄕愁)를 팔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용어 클릭

중산층 국제적으로 합의된 개념은 없다. 다만, 객관적으로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의 2∼2.5배인 계층을 말한다. 주관적 기준도 중요하다. 흔히 프랑스는 외국어를 할 줄 알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악기가 있으며 자신만의 요리가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미국은 퇴근길에 피자 한 판, 영화 한 편, 국제전화 등에 아무 생각없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30평 아파트와 2000㏄ 중형차가 있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슬픈 현실이네요. 그래도 와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면 멋있어 보이는 맛이 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완전 허풍꾼으로 보일 테니까요. 쩝...

연구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네요. 소주만 해도 진로인지 아닌지 정도는 마셔보면 구별이 되던데... 이힝~

자료출처: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2602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전의 와인붐이다. 와인 바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여기저기에 와인거리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대형 할인마트는 물론, 아파트 주변의 슈퍼마켓에도 와인 코너가 들어서고 있을 정도로 와인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와인문화가 보급된다는 것에는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셔대던 우리나라 주당들의 술문화를 바꾸어준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게다가 와인을 마시면 건강에도 좋다니 일석이조이다. 물론 적게 마실 때에 한한 이야기이다.

반면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우리의 버릇이 와인문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와인을 맛이 아니라 브랜드와 가격으로 선택하는 속물근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 술에 집착하는 것은 맛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속물근성 때문일까? 이러한 의문 아래 실시되었던 술맛 테스트가 이미 1985년에 있었다.

전문가도 위스키 맛을 구별 못했다

1985년 영국의 소비자 저널인 “휘치(which)"는  전문감정사(카너서, connoisseur)들을 대상으로 술맛을 구별하는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는 블렌드 위스키, 몰트 위스키, 꼬냑 등의 세 부문에서 이루어졌다. 브랜드가 가려진 채로 이루어진 테스트에 참가한 감정가들의 과제는 맛에 따라 고급 브랜드에서 저급브랜드 순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었다. 결과를 보자.

블렌드 위스키부분에서는 코옵(Co-op)이라는 생활협동조합에서 팔고 있는 싸구려 위스키가 쟁쟁한 브랜드를 누르고 1등을 차지했다. 몰트 위스키 부문에서는 체인스토어용 저가 제품인 센즈베리가 1등을 차지했고, 고급 브랜드 글렌피디히의 “킹”이 최하위를 기록했다.
꼬냑부문에서는 브랜드간의 차이가 비교적 적어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체인스토어용 센즈베리가 선전을 해 고급 꼬냑의 대명사인 헤네시 그리고 꾸부와지에와 동점을 기록했다.


이 결과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실제로 주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감정사들에 의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본 스웨덴의 한 기자는 “위스키와 관련된 속물 근성과 비밀을 수많은 사람이 꿰뚫어버린다면 위스키업계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이 뒤로는 맥주를 이용한 비슷한 실험이 이어졌다. 결과는 앞의 것들과 대동소이해, 결국 소비자들은 술의 맛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와인의 경우는 어떠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이제 와인이다. 와인이야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또 사람들도 대개 맛을 구분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다른 술의 경우와는 다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조차도 맛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프랑스의 Brochet의 2001년도 박사학위 논문에서 밝혀졌다. Brochet는  3가지 방법으로 과연 사람들이 와인 맛을 구분할 수 있는가를 검증했다. 검증방법이 대단히 치밀했다.

첫째, 그때까지 발표된 10만건 이상의 와인 전문가들의 와인 평을 수집해, 컴퓨터로 내용 분석했다. 여기에는 와인계의 그린스펀이라는 로버트 파커의 평도 9천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로버트 파커는 그의 평 하나로 제품 가격이 15%가 왔다갔다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을 정도로 와인업계의 거물이다. 두 번째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와인 맛을 테스트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와인 맛을 보고있을 때의 뇌를 MRI로 스캔하였다.


전문가들은 와인 맛을 구별 못했다

전문가들의 평을 내용분석한 결과, 그들의 평가는 일관성이 전혀 없었고 대단히 자의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전문가를 대상으로한 와인 맛 테스트 결과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Brochet는 대단히 교묘한 방법으로 와인 맛 테스트를 실시했다. 훗날 일격을 맞았던 와인 전문가들이 이것은 사기라고 맹렬하게 비난을 퍼부었을 정도로 교묘했다.


그는 와인 전문가들에게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을 내놓았다. 와인을 맛 본 전문가들은 화이트와인을 "fresh", "dry", "honeyed",  레드와인을 "deep" "intense""spicy"이라고 평가했다.  화이트와인이나 레드와인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전형적인 단어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맛이 틀리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실 두 종류의 와인은 같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레드와인 처럼 보였던 것은 화이트와인을 식용색소로 물을 들여 빨갛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색소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것이어서 맛에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다른 실험은 더욱 황당했다. 그는 중급 보르도 와인을 두 종류의 병에 담은 채로 52명의 전문가들에게 내놓았다. 하나는 최고급인 그랑크뤼(Grand Curu)급의 병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일반 수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와인 병이었다. 물론 전문가들은 두 병의 내용물이 똑같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와인을 맛본 후 전문가들은 평가를 내렸다. 그랑크뤼 병에 담긴 와인은 “agreeable", "woody", "complex", "balanced and rounded"라는 최고의 평가를, 싸구려 와인병에 들은 와인은 ”weak", "short", "light", "faulty"라는 혹평을 내렸다. 40명의 전문가들은 싸구려 와인병에 들은 와인은 마실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단지 12명만이 싸구려 와인병에 들은 와인도 마실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와인업계의 황제, 로버트 파커도 뻥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작성한 Brochet의 박사학위 논문을 매스컴이 대서특필했다(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지만 너무 길어져 생략한다). 런던타임즈의 파리 특파원 Adam Sage기자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의심해왔던 것을 이번 프랑스의 연구자가 입증시켜주었다”라며“전문가들도 우리만큼 모른다”는 기사를 송고했고, 같은 신문의 칼럼니스트 Kate Muir는 한술 더 뜬 칼럼을 발표했다. 그녀는 로버트 파커와 유럽에서 로버트 파커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이름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그들의 평가가 모두 뻥(baloney)이었다고 직격탄을 날려버린 것이다.


Brochet의 연구 이후에도 비슷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실험들은 Brochet의 연구결과를 지지해주고 있었다. 결국 보통사람이나 전문가나 와인 맛을 구분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와인 맛을 구별할 줄 아는 듯이 행동한다. 또 와인에 대해 일가견을 가진 듯이 말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와인에 관한 실험들을 본다면 사람이 와인 맛을 잘 구별 못하는 것은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뻥을 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바로 브랜드와 뇌 때문이다. 사람은 특정한 브랜드의 와인을 마시면 그러한 맛이 들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고, 또 그러한 기대 대로 뇌가 반응해주는 것이다. 와인의 맛은 혀가 아니라 뇌가 보고 있었던 것이다.


Brochet는 한 인터뷰에서 인구의 2~3% 정도는 정말로 맛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주위에서 와인 맛을 구별할 줄 안다는 사람들은 아마 이 2~3%에 속할지도 모를 일이다. 2~3%에 속할 자신이 없는 와인애호가들을 위해 해외의 양식있는 전문가들은 이렇게 조언하고 있다.

"당신이 마시는 와인에 관한 한 당신만이 유일한 전문가이다. 그리고 자신이 맛있다고 느끼는 와인이야말로 가장 좋은 와인이다.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찌리릿 2007-05-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던거군요. 저 역시 술맛 구별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다들 그런거였군요.
뭔가 아는척하는 건, 심리적인 것일 뿐, 실제로 혀가 맛을 구분하는건 아니었군요.
싸구려 취향의, 고급과 저급을 구분 못하는 저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ㅋㅋ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은빛시간 2007-06-1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정확한 분석이네요..
저도 와인을 마신지 얼마 돼진 않지만..
비싼 와인이랑 싸구려 와인의 차이 그리고 어떤게 좋은 와인이냐에 대해서는
항상의문이 남았는데..
역시 자기 입맛에 맛는 와인에 최고의 와인이라는것을 알게 해주는 글이네요..
비싼 와인이 꼭 좋은와인이 아니라는것이겠죠 ^^
좋은글 잘 봤읍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이런 스승에게 배우고 이런 스승을 본받기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

그런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참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유학 시절에 쓰던 자료들 사이에서 성격책 한 권을 발견했다.

거의 새것과 다름없었는데, 앞에는 '영희에게 브루닉 신부가' 라는 영어 서명이 있었다.  오래 전 내가 유학 떠나기 바로 전날, 브루닉 신부님이 내게 선물로 주셨던 성경책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 브루닉 신부님은 나의 대학 스승님이다. 아니 단지 스승을 넘어 내 삶의 은인이시다.  신부님이 안계셨으면 나는 아예 대학에 다니지도 못했들지 모르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아니, 아리로니컬하게도)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故 장황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찿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결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했다.  어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찿아가 제발 시험만이라고 보게 해 댤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고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마치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쁜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 고.....

 

  약간 불그스레한 얼굴에 순진하고 맑은 큰눈, 늘 만면에 미소를 띠시던 신부님은 1학년 전공필수인 영문학 개론을 강의하셨다. 그때 나는 서양문학 최고의 고전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이며, 성경에 관한 지식 없이는

영문학을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신부님은 문학작품을 마치 무슨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온몸으로 연기하시며 강의하셨다. 프란시스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강의하실 때는 온 교실을 누비시며 정말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리고 다니셨고,<라 만차의 사람>이라는 돈키호테에 관한 연극을 소개하실때는 말을 카고 가며 창을 던지는 시늉을 하셨다.  교실 밖에서 나를 보시면 신부님은 두 팔을 벌리면서 "마라아(나의 세레명), 마리아, 사랑하는 마리아" 라고 당시 유행하던 패티 김의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신부님은 당시 우리말을 배우고 계셨지만,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시라 별로 큰 진전은 없는 듯했다.  그런데

한번은 강의를 하시다가 문득 한국말에서 제일 발음하기 힘든 두단어는 '교통순경' 과 '욕심꾸러기' 라고 하셨다. 정말 신부님의 발음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웠던지. 철없은 우리는 책상을 치며 깔깔 웃었다. 조금 머쓱해지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삶의 '교통순경'이다 교통순경이 차들이 남의 차에 방해되지 않도록 자기 차선을 따라 반칙 없이 잘 가고 있는가를 지키듯이, 문학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진정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킨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부나 권력을 좀더 차지하려는 나쁜 '욕심꾸러기'들이 많지만, 지식과사랑,그리고 꿈의 욕심꾸러기가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책을 많이 읽고 제데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라, 그리고 지식과 사랑의 욕심꾸러기들이 되어라"

 

  신부님은 성품이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온화한 분이셨지만 나는 신부님이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서강대학교에서는 체육이 대학4년 내내 교양필수 과목이었는데, 담당이신 고 교수님은 내게 그 과목을 면제해 주시지 않고 체육관까지 와서 견학을 해야 점수를 주겠다고 하셨다.  수업이 있는 본관에서 노고산 밑의 체육관까지는 꽤 거리가 멀고 부분적으로 비포장도로라 사실 내게는 그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체육'을 넘어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더 힘들었다.  게다가 눈이나 비가 올라치면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였다.  그러나 고 교수님은 그렇게 힘들게라도 견학을 하고 페이펴를 써내야 겨우 낙제 점수를 면한 D를 주곤 하셨다.

  그런데 한번은 소나기가 오는 날 체육관으로 오다가 비포장도로에서 넘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나를 보시더니 비오는 날은 오지 않아도 결석으로 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대학 3학년 되던해 여름, 일찍 찿아온 장마

때문에 세번 결석한 내게 교수님은 당신이 한 말씀을 잊으시고 내게 가차 없이 FA(서강대학교 특유의 학사 제도로 학점의 두 배수 이상 결석하면 자동으로 F 처리되는 점수)를 주셨다.

  나의 충격은 컸다. 교수님에 대한 원망, 억울함, 부당함,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F라는 굴욕적인 점수를 내 성적표에 담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또 한과목 낙제를 하면 다른 과목이 성적이 좋아도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학칙 때문에 그 학기에 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당시 영문과 과장님이시던 브루닉 신부님을 찿아갔고, 내 이야기를 들이시다가  신부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셨다. 너무나 화가 나서 얼굴은 빨개지고 말까지 더듬으셨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그건 제 잘못이 아닌데........"

그리고 나는 그때 분명히 보았다. 신부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이제 20여년이 흘렀고, 나는 2002학번 새내기들에게 그때 신부님이 당당하셨던 영문학 개론을 가르친다.  알량한 체면 때문에 나는 학생들 앞에서 신부님처럼 그렇게 재미있는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며 가르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신부님을 기억하며 새삼 생각한다. '삶의 교통순경' 인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제자들을 "지식과 사랑의 욕심꾸러기'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단 한 번이라고 진정 제자를 위해 눈물 흘린적이 있는지....

  먼 훗날 지금 내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 중에 누군가 단 한 명이라고 지금 내가 브루닉 신부님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기억해 줄는지....

 

**************************************************************************

 

이글은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님이신 장영희 교수님이 신문에 컬럼으로 쓰셨던 글입니다.

신체장애를 갖고 계시지만 항상 명랑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감성이 풍부하셔서 정말 닮고 싶은 분입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funnyhappyservic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위스 근위병... 일단 유니폼이 예술이당~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가 가장 명예로운 교황 근위병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긴 하지만, 어찌 보면 영세중립국이기에 다른 나라에서 딴지를 걸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 일이기도 할 것 같다.

자료출처: http://news.media.daum.net/foreign/others/200705/07/joins/v16648433.html?_right_TOPIC=R6

 

[중앙일보 조문규 기자]

6일 교황청 바오로 6세 홀에서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대 신병 38명이 교황과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고 있다 사진 .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켜온 것은 언제부터일까.

1506년부터 교황청을 지켜온 스위스 근위대의 위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27년 5월 부르고뉴(현재의 네덜란드,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왕 샤를 5세(Charles Ⅴ)가 로마를 침략한 '로마약탈'에서였다. 이 전투에서 근위대는 189명의 근위병 중 147명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끝까지 지켜냈다. 빨강.파랑.노랑의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 복장에 도끼 창을 든 스위스 근위대는 501년 동안 교황청을 지켜오고 있다.

근위대 신병들은 로마약탈 때 교황을 호위하다 목숨을 잃은 것을 기려 매년 5월 6일 충성 서약식을 거행한다. 서약식 때 사용하는 깃발에는 현재의 교황과 스위스 용병군단의 창설자 율리시스 2세, 그리고 사령관을 상징하는 세 개의 방패가 등장한다.

 




현재의 제복은 1548년에 제정됐다. 근위대에 입대하려면 키 174㎝ 이상, 19~30세의 용모 준수한 스위스 출신의 미혼 남자여야 한다. 또 가톨릭 신자여야 하며 수염을 길러선 안 된다. 월급은 1000달러 정도다. 적어도 2년간은 복무해야 하며 25년간 복무하는 사람도 있다. 병력은 사령관을 포함해 장교 5명, 사병 101명 규모다. 스위스는 1859년 스위스인의 외국군 입대를 법률로 금지했지만 교황청 근위대만큼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스위스는 농사지을 땅이 없는 알프스로 둘러싸인 산악지대다.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사람 뿐이었다. 그래서 스위스 사람들은 중세부터 주변국에 용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렸다. 싸우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 이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하루라도 빨리 싸움을 끝내야 돈을 벌었기에 전쟁에서도 속전속결이었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이 로마 교황청에도 알려졌다. 추기경 시절 이들 스위스 용병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5년 6월 교황청을 지키는 상비군으로 용병을 파견해줄 것을 스위스에 요청했다. 이에 15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무려 720㎞를 걸어 이듬해인 1506년 1월 22일 교황청에 도착해 임무수행에 들어갔다. 바티칸을 지키는 군대인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들의 공식명칭은 '코홀스 헬베티카(Cohors Helvetica)'이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화투가 일본에서 건너온건 알았지만. 이런 뜻이 담겨져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우리나라도 놀이문화를 좀더 활성화시켜야 할 것 같네요. 요즘은 물론 인터넷 게임이 대세이긴 하지만요.. ^^*

출처: http://news.media.daum.net/society/others/200704/25/SpoSeoul/v16503024.html?_right_TOPIC=R1

[이슈&화제] 48장 패에 담긴 ‘화투의 비밀’ 전격 공개

“쓰리고에 웃고… 피박·광박에 울고…”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의 논문 한 편이 화제다. 화투에 대해 연구·분석한 자료가 그것이다. 최근 이 논문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김 교수는 강한 왜색을 지닌 화투 패를 조명,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싶었다고 논문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월별로 각각 4매씩 총 48장으로 구성된 화투는 ‘일본 문화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은 물론 월별 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 기원의식 심지어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 있다.
<일요시사>는 김 교수의 논문을 긴급 입수해 화투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봤다.

일본 문화적 코드 “쓰리고에 웃고, 피박에 울어라”

성인들이 여가시간에 가장 즐겨하는 게임은 무엇일까. 바로 화투놀이의 하나인 ‘고스톱’일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약 70%가 화투를 즐긴다고 한다. 이쯤 되면 화투가 ‘대한민국 대표 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화투에 담긴 비밀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화투의 비밀’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는 “화투는 일본 문화의 축소판”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가 ‘고스톱 공화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며 “그러나 정작 월별로 각각 4장씩 총 48장으로 이뤄진 화투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밝힌 화투의 숨겨진 비밀은 다음과 같다.

김덕수 교수 논문 '화투의 비밀' 화제 "왜색 화투패 조명"

"세시풍속, 선호, 기원의식, 교훈 등 일본문화 축소판"

1월 송학
세칭 ‘삥’이라고 불리는 송학의 화투 문양을 보면 1/4쪽 짜리 태양, 1마리의 학, 소나무, 홍단 띠가 나온다. 태양은 신년 새해의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다. 또 소나무가 등장하는 이유는 가도마쯔 행사에 소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도마쯔는 1월을 맞이하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 일본인들이 1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다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한 행사다. 학을 의미하는 ‘츠루’가 소나무를 뜻하는 ‘마쯔’의 말운을 이은 점은 일본식 풍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월 매조
2월에 해당한 매조에는 꾀꼬리와 매화가 나온다. 일본의 매화 축제가 2월에 시작되는 이유에서다. 매화 축제는 이바라키현 미토의 가이라크 매화 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매화 공원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꾀꼬리는 ‘우구이스다니’라는 도쿄의 지명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새다.

눈에 띄는 점은 꾀꼬리가 봄철(4월 이후)이 아닌 2월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꾀꼬리와 매화가 봄의 전령사임을 노래하는 대표적 시어인 동시에 꾀꼬리의 일본어 표기인 ‘우구이스’와 매화를 뜻하는 ‘우메’간 두운을 일치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3월 벚꼿
일본의 벚꽃 축제는 3월 최고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3월의 화투 문양은 온통 벚꽃으로 가득 차 있다. 삼광의 벚꽃 밑에 그려진 것은 ‘만막’이라는 일종의 천막이다. 이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경조사 때 천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속에는 벚꽃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춘객들이 있지만, 삼광의 화투에선 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상춘객들이 화투 하단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상춘객이 만막 안에서 낮술에 취한 채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4월 흑싸리
4월 화투 문양은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흑싸리로 착각하고 있다. 흑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빗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의 색깔은 녹색이며, 가을철에 그것을 베어 햇볕에다 말리면 갈색으로 변한다.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로, 등나무는 일본 전통시의 시어로 쓰이는 여름의 상징이다. 여기에 그려져 있는 두견새 역시 일본에서 시제로 자주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새다.



5월 난초
5월 화투 문양도 난이 아니라 붓꽃이다.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 T자 모양의 막대와 3개의 작은 막대기는 각각 ‘제도용 자’와 ‘딱성냥’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T자 모양의 막대는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 만든 산책용 목재 다리며,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일본인들은 이 목재 다리를 ‘야츠하시’라고 부른다.

다리 끝에는 붓꽃을 감상하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이 있는데, 이 또한 삼광과 마찬가지로 화투 하단의 보이지 않는 1인치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6월 모란
6월 화투 문양은 모란꽃이다. 모란은 고귀한 이미지로,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꽃과 나비하면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 사회에선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쳐준다.

이에 따라 일본화에는 모란과 나비가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화에선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다.

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의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인 셈이다.

7월 홍싸리
7월 화투 문양은 싸리나무다. 싸리나무는 녹색이다. 그러나 이 문양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처리돼 있다. 이는 화투 제작자의 단순 실수로 추정된다.

여기에 멧돼지가 나오는 이유는 근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이다. 멧돼지 사냥은 종족보존을 위해 주로 수컷에만 국한돼 있었다.

8월 공산
8월 화투 문양엔 산, 보름달, 기러기 3마리가 등장한다. 이는 8월이 일본에서 ‘오츠키미(달구경)’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문화적 암호다.

검은색으로 처리된 것은 산이다. 흰색으로 처리된 부분은 하늘을 의미한다. 한국 화투엔 산에 억세 풀이 없는 반면 일본 화투엔 억세 풀이 그려져 있다. 또 한국 화투엔 홍색이나 청색 띠도 없다.

즉, 일본에서 8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추수철이기 때문에 한가롭게 시를 쓰고 낭송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시사한다.

9월 국준
고스톱꾼들은 9월 화투를 유난히 좋아한다. 9월은 일본에서 국화 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계절이다. 그 쌍피엔 ‘목숨 수(壽)’자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이는 9세기경인 헤이안 시대부터 유래된 ‘9월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를 한다’는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국화는 일본의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이를 감안하면 일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놓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권세와 부귀가 영원하기를 기원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도 보인다. 쌍피가 피와 10점짜리로 동시에 활용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은 일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10월 단풍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수사슴과 단풍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슴을 의미하는 ‘시카’와 단풍을 뜻하는 ‘카에데간’에도 말운과 두운이 일치하는데, 이것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1월 오동
오동은 가장 각광받는 화투 패다. 속칭 ‘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은 광으로도 쓸 만하고, 피 역시 오동만이 유일하게 3장이다. 오동의 광에는 닭 모가지 모양의 조류와 싹 같은 것이 등장한다. 닭 모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는 평범한 새가 아니다.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머리다. 검은색의 싹은 오동잎이다. 오동잎 역시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화폐 5백엔 주화에도 오동잎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다.

12월 비
절기상으로 12월은 추운 겨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 광을 살펴보면 낯선 선비 한 명이 양산을 받쳐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며 일어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 양산과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개구리가 왜 12월에 등장했을까. 이는 일본의 ‘오노의 전설’을 묘사한 것이다.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비 광에 등장하는 선비의 모습은 오노가 붓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머나먼 방랑길을 떠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오노는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개구리의 광경을 보고 “미물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했다고 한다.

한국 화투는 일본 화투에 나오는 이 선비의 갓 모양만 일부 변형시켰다. 또 쌍피의 문양은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피가 쌍피로 대접받는 것은 이 문에 붙어 있는 귀신을 대접한다는 의미다.

⊙ 청단·홍단’에 얽힌 일본 이야기
홍색, 길조…청색, 불운”

‘꽃들의 싸움’으로 해석되는 화투를 고안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일본인들은 화투를 일명 ‘하나후다’라고 불렀는데, 19세기말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뱃사람들에 의해 한국에 유입되면서 화투로 불리게 됐다.

그 전까지 조선에선 숫자가 적힌 패를 뽑아 우열을 겨루는 ‘수투’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일본 화투가 들어오면서부터 수투가 화투에 밀려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1년 열두 달 중 8월과 11월을 의미하는 공산과 오동을 제외한 나머지에 등장하는 청·홍색 띠는 일명 ‘단책’이라고 불린다. 일본에선 ‘하이쿠’라는 일본의 전통 시구를 적을 때 이 종이를 사용한다.

한국에선 빨간색이 사망, 공산당, 화재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일본에서의 빨간색은 쾌청한 날씨, 경사, 상서 등을 나타낸다. 홍단의 구성요소는 송학(1월), 매조(2월), 벚꽃(3월). 일본인들에게 1, 2, 3월은 매우 상서로운 달임을 시사해 준다.

또 모란(6월), 국준(9월), 단풍(10월)에는 청단이 있는데, 일본에서 청색은 우울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암시하는 색상으로 여긴다. 실제 일본에선 6, 9, 10월에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수재민들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평균적으로도 1년 중 이기간에 각종 사건·사고가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                        


⊙ 김덕수 교수는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는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일요시사 김성수 기자ㅣ스포츠서울닷컴 제휴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