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온 기사 중 가장 깊이 있는 기사인 듯 하다.
뭐.. 강금실 전 장관이 정치를 하던 말건.. 그게 중요한건 아니라고 본다.
단지, 한 편의 잘 쓴 기사가 기분이 좋아 올린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행보는 여전히 ‘칩거’에 가깝다. 작년 7월 말 퇴임 후 그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칠 발언도 일절 하지 않았다. “너무 즐거워해서 죄송합니다”란 발언을 마지막으로 장관직을 떠난 그는 평소에 누리고 싶다던 ‘자유인의 삶’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요신문’에 그가 무용교실에서 춤을 추는 사진이 공개되었을 뿐, 그에 대한 기사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법무부장관시절의 폭발적인 인기, 또 최근의 검찰문제와 함께 강금실 전 장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여전히 뜨겁다.
“정치 입문 가능성 1%도 안 된다”
그를 잘 아는 한 문화계 인사는 “장관 취임 전보다 지인과 인맥의 볼륨이 10배 정도 늘어났지만 속내를 터놓고 사생활을 공유하는 서클은 여전히 협애한 편”이라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체의 활동을 스스로 자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같이 활동했던 이석태·백승헌·조용환 변호사 등이 그의 ‘이너서클’ 멤버로 꼽히는 가운데 화가 이현씨의 화실을 중심으로 모이는 작가 고종석, 시인 김정환·황인숙씨, 인하대 김진석 교수(철학) 등이 그가 자주 만나는 인물군이다.
지인들은 강 전 장관의 근황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강 전 장관이 ‘선배’로 깍듯이 모시며 대소사의 조언을 구하는 김정환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강 전 장관의 일은 강 전 장관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바리케이드를 쳤다. ‘미묘한 시기’에 정치적인 해석을 불러올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사생활 노출을 혐오하는 강 전 장관을 배려하는 지인의 태도다.
퇴임 후 강 전 장관의 궤적은 절제돼 있으면서도 자유분방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인은 “일생 중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시절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입맛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며 향후 정계에 입문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고도 했다.
그의 정계 입문 가능성에 주목하는 여권 친노그룹 일각의 기대는 그래서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관 시절 그가 밝힌 퇴임 후 계획은 그런 점에서 되씹어볼 가치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장관 그만두면 일단 좀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유롭게 개인생활하면서 살고 싶어요. 빚을 갚아야 하니까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거고… 그거 어느 정도 정리되면 개인 생활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소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출퇴근하는 직업 안하고 집에서 놀면서 글 쓸 생각도 좀 있고… 직업은 정말 갖고 싶지 않아요. 원래 제가 건달끼가 좀 있거든요.”
출퇴근하는 직업을 안 갖겠다는 그의 소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 변호사로 매일 출근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지평’의 놀라운 성장과 확장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덕분에 재임 시절 6억 원에 달했던 부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를 안 하겠다는 강 전 장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유력한 대권 후보 중 1인으로 꼽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4%의 선호도를 유지하며 여권의 대권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그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는 흐름이 있고 종종 개인은 그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강 전 장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선 2년 전 선호도 3~4%대는 굉장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의 선거 1년 전 지지율이 3%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세상 끝까지 걸어보고 싶다” 고백
최근 김두관 청와대 정무특보, 유시민 의원 등의 ‘강금실 띄우기’가 과연 진성성이 깃든 발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동영·김근태 두 유력주자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해석이 유력한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실패할 경우 ‘강금실 카드’가 극적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모멘텀‘이 필요한데 문제는 그 모멘텀의 제1 당사자라 할 강 전 장관이 아직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계 입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한 법조계 인사는 “자유로운 개인 강금실과 치열한 책임감을 느끼는 ‘공공의 인간’ 강금실을 동시에 꿰뚫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강 전 장관 스스로의 발언이 뒷받침한다. 그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나타난 이순신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찬양한 바 있다.
‘이순신의 칼은 정치적 대안을 설정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가 정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는 그를 두려워했다. 그의 칼은 온전히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 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가 이순신을 두려워했다”는 해석은 ‘세상을 끝까지 걸어보고 싶다’던 그의 내밀한 고백과 맞물려 미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한없이 복잡하면서도 한없이 단순한 강금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는 것이 지인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퇴임 후 강 전 장관은 ‘소박한 봉사 활동’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공공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관찰이다. 작년 12월 말 그는 노무현 정부의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돼 국제적인 활동에도 눈을 떴다. 올 1월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다보스 포럼)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인권대사로 정부정책을 외국에 홍보하고,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0월 14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과 독일의 민주주의, 통일과 평화’를 주제로 한·독 학술대토론회에 참석키 위해서다. 이 토론회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받은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부대 행사였다.
‘한·독 최고 지성인의 의견 및 담론 교환’이 학술회의의 목표이고 강 전 장관은 김우창·최장집·박명림 교수, 소설가 황석영·김원일씨,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치열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도 여전히 왕성한 ‘공공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10월 6일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국에서의 여성 리더십의 미래’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 리더십의 본질을 ‘기본적인 원칙을 중시하는 행위의 총체(the whole package of respecting basic fundamentals)’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으로서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 이해당사자를 참여시켰으며, 그런 자세는 ‘전례 없는(unprecedented)’는 것이었다고 자평했다. ‘낡은 조직과 인맥(old boy network)’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혁신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설정한 아젠다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의 영입 가능성을 ‘정동영·김근태 불가론’과 연결짓는 것은 분명 성급한 관측이다. 제3후보론의 중심에 강 전 장관을 상정하는 것도 아직은 레토릭에 불과한 단계다.
그러나 지난 10월 31일 강 전 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동의하면서 당을 걱정하는 분들을 영입해 신용을 쌓아야 한다”고 한 김두관 정무특보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국민적 신용’을 획득하고 있는 여권 내 주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튿날 열린우리당 친노그룹의 핵심 유시민 의원도 김 특보의 말을 거들었다. 그는 ‘강금실 영입론’에 대해 “우리당은 열려 있기 때문에 많은 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고 강 전 장관 같은 분이 참여해주신다면 당으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의 당이 그런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그의 첨언이다.
강 전 장관은 그 발언 이후 한 사석에서 냉소와 함께 상당한 불쾌감을 토로했다는 것이 한 지인의 전언이다. 올 4월 재보선 출마 가능성을 점치며 ‘강금실 차출’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군대도 아닌데 ‘차출’이라는 표현은 뭐냐”며 불쾌감을 토로했던 그다.
“난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다”
그는 사람을 물건이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강금실 카드’라는 언론의 표현에 대해서도 그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은 포커판의 숨겨진 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강금실’을 둘러싼 모든 정치적 논의들은 물거품에 불과한 것이지도 모른다. ‘정치는 싫다’는 그의 사석 발언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장관 임기중에도 자신의 대권론을 이렇게 일축한 적이 있다.
“…지금 제가 법무부장관을 하는 게 사회적 화제가 되는 것은 변화의 과도기여서 희소성 때문에 그런 거고, 앞으로는 여성 법무부 장관도 평범한 일상이 돼야겠지요. 그런데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장관도 노력하면 업무를 잘해나갈 수 있는 자리지만,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봐요. 제가 확신하는 건, 난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전후 사정 속에서 강 전 장관의 ‘고요한 처신’을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보’로 보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사람은 변한다는 세상의 이치 안에서 강 전 장관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는 지인들도 없지 않다. 그 지인은 그 이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무부장관 제의를 수락할 때도 저는 굉장히 놀랐어요. 그런데 ‘툭’하고 자신을 밀어넣듯이 장관을 한 겁니다. 강 전 장관에게는 그런 면이 있어요.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거고, 그런 생각을 실천할 힘이 있어요. 그래서 그의 행보는 아무도 모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문제는 시대가 정말로 절실하게 강금실 같은 사람을 요구하고 있느냐는 거죠.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 그는 절대로 정치를 하지 않을 겁니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