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사네요..
소주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렇게 모아놓은걸 보니 술 한잔 생각이 나는군요.. 쩝.. 월요일 아침인데...
80년대 진로소주는 요즘도 외국에 수출되는 병 모양이랑 비슷한거 같아요..
| ‘1960~2002년’ 한눈에 보는 소주 변천사 |
퇴근 길 마음 맞는 이와 한 잔 걸치는 서민들의 둘도 없는 ‘친구’ 소주 “소주 변해온 모양 보고 있으면 서민의 삶·애환 새삼 느껴진다” |
미디어다음 / 김진양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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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 아무리 피곤해도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마음 맞는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 잔이라도 걸쳐야만 한다. 1960년대의 ‘잔술’(한 잔씩 파는 소주)은 이렇듯 문득 술 생각이 간절해진 서민들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잔술이 부활했다. 소주 한 잔에 400원. 갑자기 술 한 잔이 그리워지는 사람이나 이미 거하게 마신 뒤 ‘해장’ 겸 딱 한 잔만 더 마시려는 사람, 그리고 술을 잘 못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러나 누구보다 잔술을 반가워 할 사람은 예전 선술집을 즐겨 찾던 나이 지긋한 어른신들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0개의 소주 회사가 있다. 이 회사들은 서울을 비롯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에 각각 근거지를 두고 저마다 특색 있는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소주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 소주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어오며, 각 지방에서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했다.
‘소주 수집가’ 도창종(영남일보 편집위원) 씨는 지난 20년간 소주를 수집해 왔다. 14일 그를 통해 소주의 역사를 비롯해 60~70년대 서민의 설움을 달래주던 소주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또 그런 소주들이 지금껏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아보았다.
소주는 고려시대 말(1280년) 몽고와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소주는 고급 술이었다.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 같은 ‘고급 술’ 소주가 서민들의 술로 탈바꿈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20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일반 가정에서도 소주를 만들어 마실 수 있게 됐다. 지금의 진로소주는 1924년에 처음 생산됐다.
1920년대 우리나라에는 3175개에 이르는 소주 제조업체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시대상황 탓에 이들 업체의 76% 정도는 사실상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 회사였다.
해방 뒤 1965년.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시행한 이때부터 곡물로 소주를 만드는 게 어려워졌다. 정부가 양곡 수급을 조절해 곡물 가격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증류식 소주(곡물을 발효시켜 만드는 소주)를 만들던 업체 3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 희석식 소주가 처음 등장했다.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 타피오카 등을 발효시킨 뒤 연속식 증류기에서 증류시켜 얻은 알코올에 물을 타 만든 소주를 말한다. 현재 생산되는 소주는 대부분 이 같은 희석식 소주다.
변혁기를 겪으며 1972년에 68개로 업체 수가 줄어들었던 소주업계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활기를 되찾았다. 이때부터 소주 시장이 전면 개방되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리고 전통주에 관심이 쏠리며 안동소주 등 사라졌던 증류식 소주도 다시 등장했다.
도 씨는 “요즘 소주는 대개 돌려서 따는 뚜껑이 달린 녹색 병에 들어있지만, 20년 전 소주는 그렇지 않았다”며 “소주가 변해온 모양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새삼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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