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비참하게 살았던 천재 여성들

 히파티아 (Hypatia, 355-415)
그리스 아테네와 헬레니즘 시대 살았던 전설적인 여성 철학자, 수학자. 그리스 출신의 알렉산드리아 대학 교수 딸로 출생.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제일의 학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함. 그녀는 유창한 강연과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남자 수학자들은 몇 달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다. 뛰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히파티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학문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종교 권력이 강해진 뒤, 키릴루스 대주교는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학자들을 모두 이교도로 단정, 박해하기 시작함. 이때 히파티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잔혹한 대접을 받았는데,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운명의 그날, 거룩한 사순절 기간 중 피터가 이끄는 야만적인 폭도들은 히파티아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옷을 모두 벗기고 교회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녀의 살은 날카로운 칼에 갈가리 찢겨나갔으며 그녀의 떨리는 손은 불덩이 속에 던져졌다." 


 밀레바 마리치 (Mileva Maric, 1875-1948)
세계적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 유럽의 "비주류" 민족인 세르비아 계인데다 선천성 관절 이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수학, 물리학, 음악, 미술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시 여성이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인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 4살 연하였던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둘은 서로의 천재성에 반해 결혼을 하고,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이론을 비롯한 세계사에 길이 남을 물리학 논문 3편을 공동 저작한다. (특히 밀레바는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 이론 완성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밀레바를 멀리했고, 급기야 자신의 사촌인 엘사와 재혼하기 위해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당시 밀레바에겐 2명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아인슈타인은 아랑곳 않고 그들은 버린 채 미국으로 망명한다. 버림받은 밀레바는 이후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이슈타인이 미국에서 세계적 명성을 높여가는 동안 그녀는 초라한 동네의 피아노 강사와 수학 교사 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두 번째 아들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자신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년에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얼마 뒤 전도유망했던 이 천재 여성 학자는 73세의 초라한 노파가 돼 쓸쓸히 숨을 거둔다. 


 판위량 (潘玉良, 1895-1977)
중국 최초의 서양화가. 8살 때 부모를 잃고 아편 중독자인 외삼촌에 의해 6년 동안 키워짐. 14살에 외삼촌에 의해 기생집에 팔려감. 이곳에서 첫 손님이었던 세관 고위 공무원 판찬화(潘贊化)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판찬화는 위량을 첩으로 맞아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일깨워 줌. 이후 상하이 미술전문학교에 입학, 화가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위량은 누드화에 심취, 공중 목욕탕을 전전하며, 혹은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보며 누드화를 그린다. 그녀의 누드화는 비천한 출신이라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버리기 위한 상징이었으나, 기생 출신에 누드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엄청난 사회적 조롱과 지탄을 받는다. 상하이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남편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10여 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학계와 예술계에서 촉망받는 여류화가 겸 교수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기 출신이라는 과거가 들춰지면서 지속적인 고통을 받았고, 자신의 출신성분이 남편의 신변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파리로 돌아가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

미국의 여류 시인. 영국의 유명 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로, 오븐에 머리를 넣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자살로 유명한 시인으로 세간에 알려졌으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했던 매우 뛰어난 시인이었음. 플레이스는 이후 남성위주의 배타적 창작 환경에 의해 희생된 천재 시인으로 기록됨.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류화가. 천재적인 그림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한 여성. 7살에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됨. 14살에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 (2천 여명의 신입생 중 여학생은 겨우 30여 명이었음.) 18살에 버스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가 나 버스 손잡이를 지탱하는 쇠파이프가 가슴에서부터 골반, 허벅지를 관통하는 끔찍한 치명상을 당함. 모르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엄청난 고통을 잊기 위해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 1928년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천재 화가였던 21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끊임없이 디에고의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거듭 유산함. 디에고는 아내의 불행에도 줄기차게 바람을 피웠고, 급기야 프리다와 절친한 친누이와 애정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미칠 듯한 절망 속에 프리다는 그림에 빠져듦.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예술 활동을 벌였고, 그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 사고의 후유증으로 수 차례의 척추수술을 받았고 급기야 회저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상상키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받음. 이런 중에도 반미 공산주의 시위 및 반전 운동에 참여. 1954년 사망.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864-1943)
1864-1943. 로댕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천재 여성 조각가. 마치 조각을 위해 태어난 듯, 어린 시절부터 조각에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열정을 보였다. 19세에 로댕을 만나 그의 제자 겸 조수, 예술적 경쟁자, 그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함. 그러나 로댕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극심한 정신적 타격을 받은 까미유는 평생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소피 제르맹 (Sophie Germain, 1776-1831)
프랑스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독학으로 수학을 배워 18세기 철옹성 같았던 남녀차별의 벽을 뚫고 유럽 제일의 여성 수학자로 발돋움한 천재 여성. 당시 학계의 무시무시한 차별 속에서도 수많은 남성 학자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학 및 초고난이도의 수학 이론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함. 그러나 그녀는 조국 프랑스로부터 그 어떤 보상이나 명예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맘.

 

 

 
 에이다 백작부인 (Ada Augusta King, Lady Lovelace, 1815-1852)
영국의 대문호 로드 바이런의 친딸. 유명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백작부인이 된 상류층 여성으로,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었음. 스스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 에이다는 자신보다 먼저 컴퓨터 개발을 시작한 찰스 배비지를 도와 실제 컴퓨터 제작을 주도했으며,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이론에 대한 (수백 년이나 앞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 천재 여성은 그러나 "반항적 기질"을 잠재우기 위해 아편을 강제 복용했으며, 말년에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등 적지 않은 고초를 겪음.

 

 
진성여왕 (재위 기간 887-897)

몰락해가던 통일 신라의 51대 여왕. 당시 수많은 남자 왕위 계승자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왕이 된 왕으로, 신라 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명민한 천성과 장부 같은 골상”을 가진 성군이었음. 왕위에 오르자마자 강력한 사회보장정책으로 농민층을 안정시키려 했으며, 위홍을 시켜 신라의 유물을 보수하고 향가를 집대성하는 등 중요한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특히 6두품 출신의 최치원을 등용해 신라의 정치와 문화를 개혁하려 했으나 기득권인 진골 귀족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됨. 이후 신라를 되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으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번번이 무산. 재위기간 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남. 한반도의 마지막 여왕이 된 진성여왕은 이후 보수적인 유교 사가들에 의해 조롱거리로 전락함.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진성여왕을 근친상간과 난교를 일삼은 음탕한 여군주이자 나라를 망하게 한 요녀로 묘사함. (그러나 이는 신라 왕족 사이에 행해지던 근친 결혼에서 비롯된 이야기. 진성여왕은 자신의 숙부와 공식적인 남편 관계였고 이는 당시 신라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음.)  


 나혜석 (1896-1948)
일제시대 개화기를 살았던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 부유한 명문가의 자손이자 친일파의 아내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으나 자신의 지위와 부를 이용해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 조선 최초의 여류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파리 유학 시절 최린과의 간통 혐의, 남편의 배신 등으로 급작스럽게 몰락하기 시작함. 그는 사회적 멸시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연이어 언론에 여성 차별과 권리에 대한 파격적인 발언을 해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

 

* 덧붙이고 싶은 인물... 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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